오는 7월, 금융당국이 예고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규제가 본격 시행된다. 모든 총대출액이 1억 원 넘는 대출자까지 DSR 규제가 확대 적용되며, 실질적인 ‘대출 옥죄기’의 최종 레벨에 다다른 셈이다. 대출 여력이 줄어드는 현실 속에 시중은행들의 대응은 분명한 온도차를 드러내며, 이른바 막차 탑승객을 모으기 위한 ‘마지막 승부’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대출을 푸는 방식에서조차 엇박자를 보이며 국민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일각에선 ‘규제 역풍’을 걱정하고, 다른 한편은 ‘공급 유도’를 향한 금융당국 묵인의 신호로 해석한다. 정책이 기업 논리에 종속되는 금융시장의 자화상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 “여유 있을 때 받아두세요” … 은행 점포가 다시 ‘영업 창구’ 되다
최근 서울, 경기권 시중은행 일부 지점에서는 상담을 받으려면 며칠 전부터 대기 예약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DSR 3단계 시행 전 ‘신속하게 더 많은’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 때문이다.
현장 직원들은 소비자에게 조용히 말한다. “지금 해두셔야 합니다. 7월부터는 어려울 수 있어요.” 사실상 대출 문이 닫히기 전에 미리 대출을 받아두는 ‘선점 심리’가 과열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발맞춰 일부 은행은 비대면 특판 대출상품을 출시하거나, 고정금리 상품에 한해 DSR 적용을 늦추는 꼼수를 시도하고 있다. 반면, 다른 은행은 자체적으로 규제 시점을 앞당겨 이미 신규 대출을 사실상 중단하거나, 심사를 극도로 강화한 상태다.
즉, 정책 시행 전 은행들마저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규제 과도기’가 이제는 국민을 향한 실험장이 되고 있는 셈이다.
🧩 은행의 ‘선심성 대출’, 누구를 위한 유예인가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은 이런 현상이 되레 금융당국의 정책 목표를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 DSR은 총부채의 원리금 상환 가능성을 가늠하여 무분별한 신용팽창을 억제하고, 서민의 장기적 채무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다.
그러나 은행들이 이 규제가 시행되기 전 특정 대출상품을 앞당겨 조기 집행하고, 불안심리를 자극하여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메시지를 퍼뜨리는 것은 정작 DSR의 본래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다. 조기에 수익을 실현하려는 기업적 이익이 규제의 도입 취지를 우회하고 있는 셈이다.
🤔 금융규제, ‘합리’가 아니라 ‘속도’만 강조될 때
이번 사태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을 준다. 규제의 단계적 적용이라는 ‘속도 조절’이 오히려 시장에 오판(誤判)을 낳고, 은행이 자의적으로 규제를 ‘미루는 쇼핑몰 창고 대방출식 이벤트’로 삼을 경우, 정책의 효과는 왜곡된다. 금융소비자는 보호받지 못하고, 은행의 위험은 사회로 전가된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금리 동결을 장기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택담보대출은 2024년 하반기를 앞두고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금리가 안정세에 접어든 것보다, 규제 직전 ‘무리한 대출’이 과열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가계부채 총량은 더욱 증가하고, 금융사고 리스크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 IMF나 BIS가 경고해 온 한국 경제의 ‘부채 과잉 구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 수요자 중심 금융정책으로 전환해야
정부는 은행의 자율적인 판단과 불필요한 개입을 줄이겠다는 원론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정책 공백과 시행의 유연성이 은행들에게 룰 회피의 구실을 제공하고 있으며, 피해는 고스란히 금융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기계적 기준’에 의한 일괄규제가 아니다. 오히려, 대출 수요에 대한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예컨대 △세대별·소득별 맞춤형 DSR 도입, △무주택 실수요자에 대한 비율 산정 예외 조치, △고정금리 유도와 상환 속도 가이드라인 제시 등은 보다 진보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금융을 ‘기업의 수익 모델’에서 ‘통제 가능한 공공재’로 전환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July is coming. 그리고 수많은 금융 소비자들은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맹목적인 시장 신호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정부는 기술적 규제 도입을 넘어서, 시장 커뮤니케이션의 주체로서 정책 방향을 명확히 밝히고, 혼란을 정제할 책임이 있다.
대출은 선택이 아니라 필요다. 그러나 그 필요를 볼모로 삼을 때, 금융의 ‘책무’는 퇴색한다. 시중은행들의 엇갈린 목소리는 결국 오늘날 자본 순환의 맨 밑바닥에서 누가 가장 취약한 존재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지금 필요한 건 ‘막차 탑승’이 아니라 ‘안전한 도착지 설계’다. 그러한 설계는 소비자 중심, 사회 안정을 위한 진보적 금융정책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