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의힘, 기득권의 그림자와 결별 없이 미래 없다

정치의 맥

[사설]국민의힘, 기득권의 그림자와 결별 없이 미래 없다

6·3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유권자들의 강력한 경고를 마주했다. 형식은 패배였지만, 본질은 정치 본연의 책임을 묻는 냉정한 심판이었다. 보수 정당으로서의 뿌리를 따지자면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가장 참혹한 패배라는 평가가 무겁게 다가온다. 그간 자주 인용되어온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자조조차, 이번에는 촌철살인의 민심 앞에서 명분을 잃었다.

국민의힘은 이번 대선에서 극우로 치우친 프레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재임 중 비상계엄 검토 논란을 일으켰던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 그를 둘러싼 친윤 세력에 대한 단절 없는 연계는 민심의 판단 기준이 되기에 충분했다. 형식적으로만 세대 교체를 언급하고, 실제론 과거의 권력 패러다임을 반복 재생산한 ‘정치의 퇴행성’은 치명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이재명의 미래’보다 ‘국민의힘의 과거’를 더 두려워했다.

이런 과거회귀적 정치 구도는 후보 선정 과정에서 그대로 노출됐다. 국민의힘이 자당의 대선 후보로 김문수 전 지사를 내세운 선택은 전체 유권자를 향한 메시지라기보다는 강성 지지층을 만족시키려는 정치적 코드 맞추기에 가까웠다. ‘김문수 카드’로 즉각 반등을 꾀하지 못하자 급기야 새벽 시간, 전광석화처럼 한덕수 전 총리로 후보 교체를 밀어붙이는 모습은, 공당의 후보 결정 과정을 피선거인의 전략이 아닌 ‘비상대실’ 수준의 즉흥적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유권자들은 질문했다.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단일화를 통한 반(反) 이재명 구도를 강화하는 데만 집중했으며,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두려움과 거부의 정치에 기반한 ‘상대적 정당성’뿐이었다. 그러나 이는 미래를 향한 희망이 아닌 ‘과거와의 결별이 없는 반복’이었고, 결국 투표장은 냉철하게 이를 거부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해야 하는 일은 뼈를 깎는 자기 해체 수준의 쇄신이다. 반성과 혁신이라는 진부한 프레임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를 감행해야 한다. 우선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 정리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2022년 대선 승리와 동시에 당을 ‘윤석열 정치의 주기권 구조’로 편입시킨 전략은 궁극적으로 정당성을 훼손시켰다. 대통령에게 당이 예속되는 구조는 건전한 보수정당의 생명을 위협하는 암세포와 같다. 윤 전 대통령의 퇴장 이후, 그 그림자 안에서 여전히 파생되는 2선 정치, 비공식 권력자들의 개입은 반드시 철폐되어야 할 ‘정치 독소조항’이다.

또한, 국민의힘은 보수의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재정립이 필요하다. ‘작은 정부’ ‘자유시장’ ‘안보 우선’이라는 구호는 한 세기 전 여성의 투표권 수준으로 낡은 슬로건이 되어가고 있다. 복지국가의 전환과 지속가능한 성장, 기후 위기 대응과 같은 글로벌 의제가 정치적 변곡점으로 부상한 현 시점에서, 제1야당의 정강정책이 90년대 레퍼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지속가능한 정당으로서의 존립도 위태롭다. 그 한계는 이번에 20~30대 중도층의 확고한 이반으로 여실히 드러났다.

이번 대선은 단순 패배가 아니다. 해묵은 정치관성, 수직적 공천 구조,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폐쇄적 정당운영에 대한 유권자들의 종합적 평가였다. 더 이상 국민의힘이 윤핵관이나 계파 정치에 기대어 버텨볼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유권자들은 정당이 국가 비전을 책임지고 혁신적으로 제시하길 원한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여전히 지도부 교체 여부를 둘러싸고 친윤-비윤의 프레임에 함몰되어 있다. 제 식구 감싸기식 사과, ‘텃밭 챙기기’ 선에서의 정비만으로는 민심을 돌릴 수 없다.

앞으로 대한민국 보수의 생존을 위해, 국민의힘은 다음과 같은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첫째, 2030 세대와 여성 유권자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한 새로운 메시지를 창출해야 한다. 둘째, 특정 인물의 정치적 명망이 아닌 실질적인 시스템 정당으로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 셋째, 지역정당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국 정당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유권자가 예측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보수를 만들지 않는 이상, ‘개헌 저지선’이 아니라 ‘소멸 벼랑 끝’의 위기는 현실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 정치는 지금 보수의 재정의라는 중대한 교차로에 서 있다. 국민의힘은 과거의 권력과 결별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책임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대선을 ‘최대 격차의 패배’가 아니라 ‘마지막 경고’로 남기게 될 것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Back To Top
제호 : 시대의눈   주소 : 경기 파주시 와동동 1431(운정역HB하우스토리시티) 321호 대표전화 : 070-4792-7720    팩스 : 02-701-0585    등록번호 : 경기,아52805    발행·편집인 : 최창호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현주  발행일 : 2017-01-13    등록일 : 2017-01-13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