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대 대통령 선거는 세대와 성별이라는 교차점 위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심층적인 균열의 지도를 펼쳐 보였다.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은 정권교체라는 기존의 정치 프레임에 그치지 않고, 세대적 갈망, 지역적 경험, 계층적 분노가 교차한 복합적 결과물이었다. 특히 40대와 50대 유권자층이 압도적으로 이재명을 지지한 반면, 20대 남성 유권자층의 이반은 정치 지형의 새로운 리스크 요인을 드러냈다. ‘이재명 시대’는 이 다양한 군상의 욕망과 불안을 어떻게 수렴할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이번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이재명 후보에게 지지를 보낸 40~50대 유권자들은 단지 진보 정권의 재집권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IMF 외환위기, 노사 구조조정, 부동산 폭등과 맞닿아 살아온 ‘한국 자본주의의 직면자’들이다. 이재명이라는 ‘흙수저’ 출신의 실용주의 정치인은 이들에게 유신정권 이후 줄곧 반복되어온 관료주의 정치의 피로를 돌파할 수 있는 대안적 리더십으로 비춰졌다. 말하자면 ‘능동적 생존자’들의 선택이었다.
이 세대는 대체로 국정 운영의 연속성과 현실적 변화 가능성을 동시에 따진다. 그래서 형식적 도덕보다 실질적 개혁을, 추상적 담론보다 지역 균형과 복지 정책 같은 구체적 어젠다에 반응한다. 이재명의 기본소득 공약, 지방 균형 발전 비전, 디지털 전환 정책 등은 이들의 체감적 경험과 맞물려 두터운 지지로 이어졌다.
반면, 동일한 20대에서도 남녀 간 표심은 극명하게 갈렸다. 20대 여성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과반의 지지를 보냈으나, 20대 남성은 오히려 극우로 분류되던 김문수 전 의원이나 이준석 신당에 더 많은 표를 던졌다. 이는 단순한 젠더 감정의 대결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청년층은 자신들이 마주한 불평등의 단면은 고용불안, 부동산 진입장벽, 정치 엘리트와의 괴리감 속에서 ‘정치적 개입’을 보다 능동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20대 남성의 보수 이동은 단순히 성별 갈등의 산물이 아니라, 변화된 남성 정체성, 가부장 체제의 해체 이후 생겨난 ‘역차별’ 감정의 정치적 반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그들이 이준석과 김문수를 선택한 것은 정권교체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자기 서사의 단절과 소외에 대한 저항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고령층에서는 여전히 보수 진영이 강한 영향력을 보였다. 가난을 이겨낸 역사의 산증인이자, 산업화의 든든한 주축이 된 세대답게 이들은 안정과 지속성을 가장 강하게 요구한다. 그들에게 진보는 아직도 ‘낯선 실험’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과거에 머문 감정이라기보다는 불안한 노년의 복지망과 연계된 현실적 선택에 가깝다. 이재명 정부가 고령층을 위한 복지 정책에 구조적 전환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이들의 비용 기반된 보수 지지는 지속될 것이다.
이러한 세대·성별 간 균열을 단순히 수직적 대립 혹은 갈등으로 진단할 수는 없다. 오히려 각기 다른 ‘상처’를 가진 집단들이 자신의 미래 욕망을 투사할 수 있는 정치적 담론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실용주의 중도라는 포지션을 유지함과 동시에, 세대 간 ‘인식의 간극’을 메우는 소통 전략 예컨대, 청년 재정 개혁, 주거기본법 제정, 노동 연대의 디지털화에 힘을 더해야 하는 이유다.
정책의 외피를 벗겨보면, 사회 통합은 결국 ‘공정의 재정의’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자격과 특권이 아니라, 기회의 공정이라는 ‘질서’를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21대 대선은 새로운 시대 변화의 초입이다. 유권자의 투표는 단순히 정당을 선택함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다음 국면에서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를 말하는 ‘증언’이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앞에 놓일 과제는 많지만, 분명한 것은 갈라진 민심을 치유하고 ‘공정한 전환’의 서사를 만들어갈 수 있을 때만이 진정한 ‘이재명 시대’가 열린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표심의 풍경을 넘어, 그 안에 깃든 ‘삶의 목소리’들을 듣고 정책으로 응답해야 할 시간이다.
※ 본 칼럼은 2024 대선 데이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정치평론이며, 특정 정당 및 인물에 대한 정치적 지지나 비판을 위한 목적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