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자동차 관세 협상, 합리적 선택의 한계를 직시해야
미국이 일본산 자동차에 부과하던 관세를 대폭 낮춘 반면 한국산 자동차에는 여전히 높은 수준의 관세가 유지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 일본 경쟁사보다 불리한 조건에 놓였다. 문제는 미국이 요구하는 투자 조건이 과도할 뿐 아니라 우리 경제 전반의 안정성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협상을 서두른다고 해서 반드시 합리적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합리적 판단의 한계’를 인정하고, 단기적 손익을 넘어 장기적 국익을 지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은 한국 측이 약속한 3500억달러 투자와 관련해 △2029년까지 단기간 내 집행 △대출이나 보증이 아닌 현금 직접 투자 △투자처는 미국이 결정 △투자 이익의 대부분을 미국이 가져가는 구조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히 불공정한 조건을 넘어 우리 외환시장 안정성 자체를 위협한다. 외환보유액과 자본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막대한 달러를 단기간에 조달한다면 원화 가치 폭락과 금융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합리적 경제 판단은 항상 제약 속에서 이루어진다. 모든 대안이 완벽하게 유리할 수는 없으며, 최선이 아니라 차선과 차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때가 많다. 지금 상황에서 섣부른 타결은 미국 시장 내 관세 부담을 줄여주는 대신, 한국 경제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대가를 치르게 될 위험이 있다. 반대로 협상이 지연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기업들의 부담이 크겠지만, 불합리한 조건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첫째, 협상 시한에 쫓겨 성급히 결론을 내지 말고, 조건의 불합리성을 국제무대에서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둘째, 기업과 긴밀히 소통해 단기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미국 측과의 외교 협상을 통해 관세 문제와 별도로 통화스와프 등 금융안정 장치를 병행 요구해야 한다.
합리성은 때로 한계적이다. 당장의 손익 계산에 매몰되면 오히려 장기적 국익을 해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급한 타결이 아니라, 불리한 선택지를 피하면서도 국가경제의 근간을 지킬 수 있는 냉철한 협상력이다. 국익을 위한 인내와 절제가 지금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