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생명

쉬어도 피곤한 사람들… 도시가 만든 만성피로의 덫

서울의 아침은 빠르다. 출근 시간 전부터 도로는 막히고, 지하철은 밀려든다. 수많은 사람의 호흡이 뒤엉키고, 엔진 소음이 도심을 흔든다. 사람들은 말한다. “살아 있으니까 피곤한 거지.” 그러나 이 피로는 더 이상 ‘정상적인 삶의 일부’로 치부하기 어렵다. 도시의 구조 자체가 인간의 생명 리듬을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가 2024년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 직장인의 64.8%가 “일상적인 피로가 6개월 이상 지속된다”고 답했다. 의료적 기준으로는 이미 ‘만성피로 증후군’ 범주에 속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히 ‘업무 과중’으로 보지 않는다. 도시의 소음, 미세먼지, 조명, 수면 부족, 불규칙한 식사와 이동 시간 전체가 하나의 복합적 피로 생태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연구팀은 도심 생활자의 혈중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농촌 거주자보다 평균 1.6배 높다고 밝혔다. 특히 “하루 평균 통근시간이 1시간 이상인 경우”, 스트레스 반응이 수면 중에도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이를 “24시간 각성 사회”라고 표현한다. 밤에도 꺼지지 않는 불빛, 소음, 알림음이 인간의 생체 시계를 교란시키고, 몸은 쉴 틈 없이 경계 상태를 유지한다.

이처럼 도시는 인간을 ‘긴장 속의 생명체’로 만든다. 문제는 이 피로가 축적되어도 즉각적인 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증상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진행된다. 불면, 소화불량, 면역력 저하, 집중력 저하가 이어지고, 결국 우울과 불안으로 확산된다. 고려대 의대 연구진은 “도시 근로자의 만성피로군 중 41%가 정신건강 질환 위험군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최근에는 도심 소음이 단순한 불쾌감이 아니라 심혈관계 질환의 직접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연구도 늘고 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65데시벨 이상의 생활소음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고혈압 발생 위험이 1.4배 높았다. 전문가들은 “소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공격으로, 신체의 교감신경계를 장시간 흥분 상태로 만든다”고 설명한다.

이런 ‘도시형 피로’는 근본적으로 환경이 생명을 압박하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본래 일정한 리듬 빛과 어둠, 움직임과 휴식속에서 회복하도록 설계돼 있다. 하지만 도시는 그 주기를 빼앗는다. 낮에도 인공조명이 쏟아지고, 밤에도 불빛이 꺼지지 않는다. 생체 시계는 혼란에 빠지고, 세포는 회복 신호를 놓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근로자의 피로 누적이 생산성 저하뿐 아니라 사고 위험을 2.5배 높인다”고 경고한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손실이다. 도시가 지속가능하려면, 인간의 생리적 회복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도시 회복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서울시는 2025년부터 ‘야간조명 완화 구역’을 지정해 0시 이후 상업지역 간판조명을 단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또한 공원·녹지 확충, 저소음 교통망 도입 등 도시환경 차원의 ‘생명 복원 정책’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인식 변화다. 피로는 자랑이 아니다. 오래 버티는 능력은 건강의 증거가 아니라, 경고의 신호다. 도시가 우리를 지치게 한다면, 이제는 도시 속에서 어떻게 회복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만성피로의 반대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리듬의 회복’이다. 몸이 신호를 보낼 때 귀 기울이는 것, 잠깐의 정적을 허락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도시에서 생명을 지키는 최소한의 저항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제호 : 시대의눈 주소 : 경기 파주시 와동동 1431(운정역HB하우스토리시티) 321호 대표전화 : 070-4792-7720 팩스 : 02-701-0585 등록번호 : 경기,아52805 발행·편집인 : 최창호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현주 발행일 : 2017-01-13 등록일 : 2017-01-13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