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잘할수록 인간 판단·관계 역량 수요는 늘었나…채용공고와 한국 기업조사로 본 ‘휴먼엣지’
김난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진의 ‘트렌드 코리아 2027’이 2026년 9월 30일 출간되면서, AI가 확산할수록 오히려 ‘인간다운 능력’의 값이 오르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다시 커졌다. 지금까지 확인된 자료를 종합하면 답은 단순한 찬반이 아니다. 기업들이 인간 판단·관계 역량을 더 중시하는 흐름은 분명히 보이지만, 그 수요가 노동시장 전반에서 일괄적으로 커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특히 AI와 함께 일하는 직무에서 의사소통, 협업, 리더십, 모호한 상황의 판단 같은 역량은 더 자주 요구되지만, 동시에 일부 사무·지원 직무에서는 관련 역량 수요가 상대적으로 약해질 조짐도 함께 관찰된다.
핵심은 ‘사람다움’ 자체보다 어떤 종류의 사람다움이 남고, 무엇이 새로 비싸지는가에 있다. 현재까지의 원자료는 인간 역량의 가치가 통째로 상승했다기보다, AI가 잘 못하는 영역에 가까운 판단·조정·설명·설득·관계 형성의 값이 선택적으로 높아지고 있음을 가리킨다. 반대로 규칙화가 쉬운 사무 지원, 반복적 정보 처리, 표준화된 커뮤니케이션은 AI의 영향을 더 직접 받는다.
채용공고는 기술보다 ‘함께 일하는 능력’도 함께 찾고 있다
온라인 채용공고를 분석한 OECD 2024년 보고서는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에서 많이 요구되는 역량으로 관리·비즈니스 역량을 먼저 제시했다. 프로젝트 관리, 재무, 행정·사무 처리 같은 역량이 여기에 포함된다. 같은 보고서는 이런 직종에서 감정·인지·디지털 역량을 한 가지 이상 요구하는 공고 비중이 시간 흐름에 따라 상승했다고 봤다. AI가 늘수록 순수 기술 인력만 찾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조직 안에서 운영하고 연결할 사람을 함께 찾는다는 뜻에 가깝다.
한국을 다룬 OECD 후속 보고서도 비슷한 결론을 제시한다. AI 전문기술을 요구하는 채용공고는 창의적 문제 해결, 사회적 기술, 사람·프로젝트 관리 역량을 함께 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AI 관련 일자리가 코딩 능력만으로 닫히지 않고, 비기술 인력과의 협업과 설명 책임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AI를 다루는 사람’보다 ‘AI를 조직의 일로 바꾸는 사람’에 더 가까워진 셈이다.
글로벌 기업 설문과 플랫폼 데이터에서도 같은 흐름이 반복된다. 세계경제포럼의 ‘미래 일자리 보고서 2025’는 기업들이 핵심 역량으로 꼽은 상위권에 분석적 사고, 회복탄력성, 리더십과 사회적 영향력, 공감과 경청을 올렸다. 링크드인 이코노믹그래프의 2025년 보고서에서는 2024년 가장 수요가 높았던 역량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제시됐다. 다만 이런 자료는 플랫폼 이용자가 많은 전문직·화이트칼라 영역의 변화를 더 잘 잡는다는 한계가 있다. 노동시장 전체의 보편 법칙이라기보다, 먼저 변하는 구간의 신호로 읽는 편이 안전하다.
한국 기업 조사에선 ‘업무 대체’보다 ‘역량 재조합’이 먼저 나타났다
한국 자료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대규모 일자리 소멸보다 직무 안쪽의 재편이다. OECD와 한국노동연구원이 정리한 2024년 한국 기업 조사에 따르면, AI를 도입한 기업의 56.5%는 AI가 직무 전체가 아니라 기존 일자리 안의 특정 과업을 대체했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현재 과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역량의 종류가 늘었다고 답한 기업은 32.2%, 요구 수준이 높아졌다고 답한 기업은 38.3%였다. 기술이 사람을 통째로 밀어내기보다, 사람이 맡는 일의 조합을 바꾸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특히 관계·조정 역량과 맞닿은 변화가 확인된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 기업들은 AI 도입 뒤 팀원 간, 관리자와의, 팀 간 커뮤니케이션 빈도가 줄었다기보다 늘었다고 응답한 비율이 더 높았다. AI가 정보를 더 빨리 만들수록, 그 결과를 누가 해석하고 어떤 선택을 할지 조율하는 회의와 설명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AI가 초안을 만들고 사람이 최종 결정을 맡는 구조가 자리 잡을수록 이런 현상은 더 뚜렷해질 가능성이 있다.
직무 사례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OECD의 한국 사례 연구에서 변호사, 의사, 웹툰 창작자는 문서 초안 작성, 진단 보조, 시각화 같은 업무에서 AI의 효율성을 인정했지만, 전략적 의사결정과 대인 커뮤니케이션, 창의적 과정은 아직 충분히 대체되지 않는다고 봤다. AI가 잘하는 일과 사람이 마지막까지 붙드는 일이 분리되면서, 인간의 판단과 관계 형성 능력이 남는다는 주장에는 이 정도까지는 근거가 있다.
그렇다고 ‘인간 역량 수요가 전부 오른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여기서 곧바로 휴먼엣지의 전면 상승을 결론내리면 과장에 가깝다. 같은 OECD 계열 연구에서도 상반된 신호가 나온다. 온라인 공고 전체를 보면 AI 노출 직종에서 협업, 독창성, 디지털 기본도구 관련 수요가 커졌지만, 사업체 패널로 보면 AI 노출이 큰 사업장에서는 관리, 인지, 감정, 커뮤니케이션 역량 수요가 상대적으로 약해지기 시작했다는 결과가 제시됐다. 총수요는 오르더라도 특정 사업장에서는 AI가 중간관리·지원 업무를 표준화하면서 사람에게 요구하던 일부 능력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중소기업의 생성형 AI 조사에서도 상승폭이 가장 큰 역량은 데이터 분석·해석, 프로그래밍·코딩이었다. 사회적 기술이 중요해진다는 설명은 맞지만, 실제 기업이 가장 먼저 체감하는 부족분은 기술·분석 쪽일 수 있다는 얘기다. 비기술 역량만으로는 부족하고, 인간적 역량이 값어치를 가지려면 AI 결과를 검토하고 수정하고 책임질 최소한의 디지털 이해력이 함께 붙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임금 연구를 봐도 비슷한 결론이 나온다. 데이비드 데밍의 연구는 장기적으로 사회적 기술 집약도가 높은 직업에서 고용과 임금이 더 빠르게 늘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것은 주로 미국의 장기 추세를 설명하는 결과다. 오늘의 한국 채용시장에서 같은 폭의 임금 프리미엄이 그대로 나타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더구나 최근 AI 도입은 직무별로 속도와 방식이 크게 다르다. 고객 응대, 영업, 관리, 기획처럼 사람 사이 조정 비용이 큰 일에서는 휴먼엣지가 강해질 수 있지만, 표준화된 문서 처리나 지원 업무에서는 오히려 요구 수준이 낮아질 여지도 남아 있다.
지금 확인되는 결론은 ‘사람다움의 프리미엄’이 아니라 ‘사람다움의 선별적 재평가’다
따라서 ‘인간 판단·관계 역량에 대한 기업 수요가 늘었나’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답은 이렇다. 늘어난 부분이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적 능력이 한꺼번에 비싸진 것은 아니다. AI가 강한 정보 처리와 초안 작성의 바깥에서, 불완전한 정보를 해석하고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며, 여러 사람을 설득하고 협업시키는 역량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반면 반복적 지원 업무에 묶인 일부 역량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7’의 문제 제기는 이 점에서 부분적으로 현실을 짚는다. 다만 노동시장이 실제로 보상하는 것은 추상적인 인간미가 아니라, AI를 끼고도 성과를 내게 만드는 판단력과 관계 역량의 조합이다. 앞으로 기업 수요를 가를 기준은 ‘AI냐 사람이냐’보다 ‘AI를 활용해 더 나은 설명과 조정, 책임 있는 결정을 만들 수 있느냐’에 가까워지고 있다.
자료: 김난도 외, 트렌드 코리아 2027(2026); OECD,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changing demand for skills in the labour market(2024); OECD,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Labour Market in Korea(2025); World Economic Forum, Future of Jobs Report 2025(2025); LinkedIn Economic Graph, Work Change Report(2025); 한국고용정보원, [계간] 2026 여름호 고용이슈(2026-08-31); David J. Deming, The Growing Importance of Social Skills in the Labor Market(2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