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성공을 결정하는 것은 재능보다 끈기인가…‘그릿’ 이론이 설명하지 못한 것들
–앤절라 더크워스의 2013년 TED 명강연이 던진 질문…6만6807명 연구 종합분석이 드러낸 끈기의 효과와 성공을 둘러싼 환경의 역할
성공한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했는지 물으면 재능과 노력, 기회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뛰어난 지능이나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 유리하다는 설명도 있고, 평범한 사람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성공의 원인을 개인이 지닌 능력과 태도에서 찾으려 했다.
그런데 실제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반드시 더 높은 성취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던 학생이 이후에는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두드러지지 않았던 사람이 오랜 시간 노력한 끝에 전문성을 확보하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심리학자들은 지능과 성격, 동기, 환경이 성취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는 이 가운데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능력에 주목했다. 그는 열정과 끈기를 결합한 개념인 ‘그릿(Grit)’을 제시했고, 2013년 TED 강연을 통해 이 이론을 세계적으로 알렸다.
더크워스의 메시지는 이해하기 쉬웠다. 뛰어난 재능만으로 성공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장기적인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추구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교육과 기업 경영, 자기계발 분야에서 폭넓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그릿 이론이 널리 알려진 이후 학계에서는 다른 질문이 등장했다. 끈기가 성공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더라도, 그 관계가 실제로 얼마나 강한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릿이 성실성과 구별되는 새로운 심리적 특성인지도 논쟁의 대상이 됐다.
2007년 더크워스 연구진이 발표한 최초 연구에서는 그릿이 여러 성취 지표의 차이를 평균 약 4%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2017년 발표된 메타분석에서는 88개 독립 표본의 참가자 6만6807명을 종합한 결과, 그릿과 성과 사이에 중간 정도의 관련성이 확인됐다. 그러나 그릿 전체가 성실성과 충분히 구별되는 독립적인 성격 특성인지는 의문이 제기됐다.
두 연구를 함께 살펴보면 성공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 끈기는 성취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특성이지만, 성공을 설명하는 유일한 열쇠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개인의 끈기를 강조하는 사회가 성공에 필요한 자원과 기회의 차이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같은 노력을 기울여도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개인의 태도와 환경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뉴욕의 중학교 수학교사가 발견한 성적의 차이
더크워스는 2013년 TED 강연에서 자신의 교직 경험을 소개했다. 경영 컨설팅 분야에서 일하던 그는 뉴욕의 공립학교에서 7학년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게 됐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높은 성적을 받는 학생과 어려움을 겪는 학생의 차이가 단순히 지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일부 학생은 내용을 빠르게 이해했지만 꾸준히 공부하지 않았다. 반면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더라도 반복해서 문제를 풀고 학습을 지속하는 학생도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더크워스가 학업 성취에서 비인지적 특성의 역할을 연구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그는 심리학 연구를 통해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성향을 측정하고자 했다. 연구 대상에는 학생뿐 아니라 미국 육군사관학교 생도와 철자 대회 참가자 등이 포함됐다.
더크워스가 정의한 그릿은 장기적인 목표에 대한 열정과 인내다. 여기서 열정은 순간적으로 강하게 느끼는 흥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중요한 목표를 유지하는 경향을 포함한다.
끈기 역시 단순히 오래 버티는 행동과 구별된다. 실패와 어려움이 발생하더라도 목표에 필요한 노력을 지속하는 태도에 가깝다.
예를 들어 음악가가 전문적인 연주 능력을 얻기 위해 오랜 기간 연습한다고 가정해 보자. 단기간에 높은 성과를 얻기 어렵더라도 필요한 기술을 반복해서 훈련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재능과 함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장기적인 활동이 그릿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방향이 잘못된 목표를 수정하지 않고 계속 추구하는 행동은 효율적인 성취 전략과 다를 수 있다.
그릿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단순한 인내심과 장기적 목표를 위한 노력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2007년 최초 연구에서 실제로 확인된 것은 무엇인가
더크워스는 크리스토퍼 피터슨, 마이클 매슈스, 데니스 켈리와 함께 2007년 학술지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그릿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성인과 대학생, 육군사관학교 생도, 미국 전국 철자 대회 참가자 등을 대상으로 그릿과 성취의 관계를 분석했다. 연구에서는 학력 수준과 대학 성적, 군사훈련 과정의 잔류 여부, 철자 대회 성적 등 여러 지표가 사용됐다.
그 결과 그릿 점수는 성취 지표와 일정한 관련성을 보였다. 높은 그릿을 가진 사람이 일부 장기적 과제에서 더 좋은 결과를 보이거나 목표를 계속 추구하는 경향이 관찰된 것이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릿의 설명력은 제한적이었다.
연구진은 그릿이 성취 지표의 차이를 평균 약 4% 설명한다고 보고했다. 이는 그릿이 성공의 4%를 만들어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통계적으로 측정한 성취 결과의 변동 가운데 그릿 점수와 관련된 부분이 평균적으로 그 정도였다는 뜻이다.
나머지 차이는 연구에서 직접 측정하지 않았거나 통계모형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여러 요인과 관련될 수 있다. 지능과 교육환경, 경제적 자원, 건강, 기회 등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지만, 4%라는 수치만으로 나머지 96%의 구체적인 원인을 확정할 수는 없다.
또한 연구진은 그릿이 지능지수와 뚜렷한 정적 관계를 보이지 않는 반면, 성격 특성 가운데 성실성과는 높은 관련성을 가진다고 보고했다.
그릿이 지능과 별개의 측면을 측정할 수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지능이 성공에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원래 연구 역시 지적 능력이 다양한 전문 분야의 성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기존 연구를 인정하고 있다. 그 위에 장기적인 노력을 지속하는 성향이 추가적인 설명력을 가질 수 있는지 검토한 것이다.
따라서 그릿 연구를 재능보다 노력이 언제나 중요하다는 증거로 이해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연구가 보여준 것은 재능과 별개로 장기적인 노력의 지속성이 일부 성취 결과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육군사관학교와 철자 대회에서 그릿이 주목받은 이유
더크워스 연구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례 가운데 하나는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의 생도들이다.
웨스트포인트는 입학 과정에서 학업 능력과 신체적 역량, 리더십 등을 평가한다. 입학 이후에도 강도 높은 교육과 훈련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이곳에서 누가 훈련을 지속하고 누가 중도에 이탈하는지는 연구자에게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다.
2007년 연구진은 두 기수의 웨스트포인트 생도들을 대상으로 그릿과 초기 훈련과정의 잔류 여부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그릿은 일부 잔류 결과를 예측하는 데 기여했다. 입학 당시의 성취 능력이 우수하더라도 강도 높은 훈련을 지속할 수 있는지는 다른 특성과 관련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웨스트포인트에서 훈련을 지속했다는 사실이 이후 모든 군사적 성과나 사회적 성공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에서 측정한 결과는 구체적인 훈련과정의 잔류 여부와 관련된다.
전국 철자 대회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그릿이 주목받았다. 높은 수준의 철자 실력을 갖추려면 오랜 기간 단어를 학습하고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연구진은 그릿이 높은 참가자들이 더 많은 준비를 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경향을 분석했다. 이러한 결과는 지속적인 노력이 전문적인 기술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해석과 연결된다.
다만 두 사례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참가자들은 이미 상당한 선발 과정을 통과했거나 특정 목표를 위해 준비해 온 집단이라는 점이다.
웨스트포인트 생도는 일반적인 청소년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 전국 철자 대회 참가자 역시 높은 수준의 관심과 준비 경험을 가진 학생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성취와 잔류를 설명하는 요인이 일반적인 노동시장이나 모든 교육환경에서도 동일한 크기의 효과를 보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릿 연구의 가치를 평가하려면 연구가 이루어진 환경과 측정한 결과를 구분해야 한다.
6만6807명을 분석하자 그릿 이론에 균열이 생겼다
그릿이 교육과 자기계발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이후 연구자들은 기존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증하기 시작했다.
마커스 크레데와 마이클 타이넌, 피터 함스는 2017년 학술지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그릿 연구에 관한 메타분석을 발표했다. 논문은 2016년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됐다.
연구진은 88개 독립 표본에서 얻은 584개 효과크기를 분석했다. 전체 참가자는 6만6807명이었다.
연구 목적은 그릿이 성과와 지속성, 성실성, 인지능력 등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종합적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분석 결과 그릿과 성과 및 잔류 사이에는 중간 정도의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그릿이 전혀 의미 없는 특성이라는 결론은 아니었다. 그러나 성공을 강력하게 예측하는 독립적인 성격 특성이라는 주장에는 제약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그릿의 구성 방식이었다.
더크워스의 그릿 개념은 노력의 지속성과 관심의 일관성이라는 두 요소를 포함한다. 하나는 어려움이 발생해도 목표를 향한 노력을 지속하는 성향이다. 다른 하나는 장기적으로 관심과 목표를 유지하는 성향이다.
메타분석에서는 두 요소의 예측력이 동일하지 않았다. 노력의 지속성은 관심의 일관성보다 성과를 더 잘 예측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그릿 전체는 기존 성격 연구에서 사용하는 성실성과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나타냈다. 이는 그릿이 기존의 성격 개념과 얼마나 구별되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그릿을 별도의 상위 성격 특성으로 구성하는 방식이 자료에서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렇다고 노력의 지속성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연구에서는 노력의 지속성이 성실성을 통제한 이후에도 학업 성과의 차이를 일부 추가로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그릿에 관한 논의를 더욱 구체적으로 만든다.
성공에 필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추상적인 표현보다 어떤 목표를 위해 어떤 노력을 얼마나 지속하는지가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릿이라는 개념 자체의 독창성에는 논쟁이 남아 있지만, 지속적인 노력이 성취와 관련된다는 사실까지 부정된 것은 아니다.
오래 버티는 능력과 제대로 노력하는 능력은 다르다
그릿 이론을 실생활에 적용할 때 발생하기 쉬운 오해는 노력의 지속기간 자체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오랫동안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은 성실하고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평가받기 쉽다. 반대로 중간에 진로를 바꾸거나 목표를 포기한 사람은 끈기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목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 언제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업이 장기간 적자를 기록하고 시장의 수요도 감소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사업을 계속 유지하는 결정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손실을 확대할 수도 있다.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을 탐색하거나 사업 모델을 변경하는 선택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기존 목표를 수정했다고 해서 반드시 끈기가 부족하다고 평가할 이유는 없다.
교육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학생이 특정 과목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반복적인 학습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방법으로 계속 공부해도 성과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학습 방법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된 접근법을 오래 지속하는 것과 자신의 약점을 찾아 개선하는 노력은 다르다.
전문적인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더욱 중요해진다. 단순히 시간을 많이 투입하는 것만으로 높은 수준의 숙련을 보장할 수는 없다.
효과적인 연습에는 수행 결과에 관한 정보와 구체적인 개선 목표, 충분한 피드백이 필요할 수 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더라도 오류를 수정하지 못하면 성과가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더크워스 등이 참여한 연구는 심리적 개입이 학습자의 의도적 연습 참여와 성취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검토했다. 연구진은 연습의 중요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경험하는지가 학습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살펴봤다.
이러한 연구는 노력을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과 행동의 과정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가 여전히 타당한지 검토하고, 성과를 개선할 수 있도록 방법을 바꾸는 능력도 필요하다.
끈기가 성공에 기여하려면 방향을 조정하는 판단력과 결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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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할 수 있는 환경이 다르면 끈기의 효과도 달라진다
개인의 노력은 성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노력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학생은 조용한 공부 공간과 충분한 학습자료, 부모의 지원을 확보하고 있다. 다른 학생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과 생계를 위한 활동을 병행해야 할 수 있다. 두 학생의 성취에 차이가 발생하더라도 그 원인을 의지나 끈기의 차이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직업의 세계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교육 기회와 인적 네트워크, 자본 접근성, 지역 노동시장에 따라 서로 다른 경로를 경험할 수 있다.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초기 자본과 시장 진입 조건, 산업의 성장성에 따라 성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환경적 요인은 개인의 노력이 실제 성취로 연결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그릿을 측정하는 연구와 그릿을 높이기 위한 정책은 구분해야 한다. 그릿 점수가 높은 사람이 더 좋은 성과를 얻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학생에게 끈기를 가르치면 성적이 반드시 오른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상관관계는 원인과 결과를 확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높은 그릿이 성취에 기여할 수도 있지만, 이전의 성공 경험이 자신감을 높이고 장기적인 노력을 지속하도록 만들었을 수도 있다. 안정적인 환경이 꾸준한 노력을 가능하게 했을 가능성도 있다.
2017년 메타분석 연구진이 그릿 향상 개입의 효과에 신중한 평가를 내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릿과 성과 사이의 관계는 관찰되지만, 그릿을 직접 변화시켜 성과를 높일 수 있는지는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교육 현장에서는 종종 개인의 태도를 강조하는 방식이 선호된다.
학생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그러나 학습환경을 개선하거나 교육 자원의 격차를 줄이는 일에는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할 수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직원에게 열정과 끈기를 요구하는 일보다 업무에 필요한 자원과 적절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더 복잡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그릿은 성취를 돕는 심리학적 개념이 아니라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설명으로 사용될 위험이 있다.
누군가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실패의 원인이 개인의 판단에 있을 수도 있지만, 통제하기 어려운 환경적 조건에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공을 설명하는 이론은 성공한 사람의 태도뿐 아니라 비슷한 노력을 기울이고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조건까지 살펴봐야 한다.
교육은 학생의 끈기를 평가하기보다 끈기가 작동할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릿 이론이 교육 분야에서 관심을 받은 이유는 성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인지적 특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시험 성적과 지능검사 결과는 학생의 일부 능력을 보여줄 수 있지만 장기적인 학습 과정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학생이 어려움에 어떻게 대응하고, 목표를 설정하며, 실패 이후 학습을 지속하는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을 교육에 적용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그릿 점수를 학생의 우열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한다면 원래 연구의 의미가 왜곡될 수 있다. 설문을 통해 측정한 성향은 특정 상황에서의 행동을 완전하게 예측하지 못하며, 학생의 환경과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끈기를 높이는 일이 교육의 목표가 된다고 해서 학생에게 언제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라고 요구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학습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 학생에게 반복해서 노력하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진단하고 적절한 학습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
목표가 지나치게 높거나 학습 과정이 비효율적이라면 계획을 수정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성공적인 교육은 학생에게 의지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이 실제 성취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학습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며 학생의 수준에 맞는 과제를 구성하는 일이 중요하다. 실패를 경험했을 때 원인을 분석하고 다음 시도를 설계할 기회도 필요하다.
여기서 끈기는 교육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 학습을 지속하기 위한 여러 조건 가운데 하나로 이해해야 한다.
지속적인 학습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학생이 어떤 상황에서도 현재의 목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서로 다르다.
교육은 학생이 노력하는 능력뿐 아니라 노력할 가치가 있는 목표를 판단하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인가, 성과를 개선하는 사람인가
그릿의 문제는 기업의 인사관리에서도 생각해 볼 만하다.
기업은 일반적으로 높은 성과를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직원을 원한다.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고 실패에도 쉽게 좌절하지 않는 태도는 조직의 성과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직원의 끈기가 기업의 성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업 환경이 달라지면 기존 전략을 수정해야 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거나 소비자의 수요가 변하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업무방식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기존 목표를 고집하는 행동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면 조직은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성과가 낮은 사업을 지속할지 중단할지 판단하는 과정에서는 인내심과 합리적인 철수 결정의 균형이 중요하다.
이미 투입한 비용이 크다는 이유로 사업을 계속 유지하려는 행동은 매몰비용의 오류와도 연결될 수 있다. 과거의 투입 비용보다 앞으로 기대되는 성과와 위험을 기준으로 결정해야 하지만, 기존의 노력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심리가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에서 필요한 끈기는 무조건적인 버티기와 다르다.
장기적인 목표에 대한 책임감을 유지하면서도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지속적으로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기존 계획을 수정하고 다른 전략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한 역량이다.
인사평가에서 끈기를 강조하려면 평가 기준 역시 구체적이어야 한다.
직원이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보다 어떤 문제를 해결했으며, 실패 이후 어떤 개선을 이루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장시간 근무를 끈기와 동일시하거나 업무 부담을 견디는 능력을 성과의 핵심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개인의 노력은 중요하지만 조직이 제공하는 자원과 관리체계도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필요한 인력과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직원의 의지만 강조한다면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그릿을 기업 경영에 적용한다면 개인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방식보다 지속적인 개선이 가능한 조직을 만드는 방향이 더 생산적일 수 있다.
성공한 사람의 공통점만 살펴보면 놓치는 것들
성공 연구에는 중요한 방법론적 문제가 존재한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만 조사하면 성공에 기여한 요인과 단순히 그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특징을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성공한 기업가들이 대부분 오랫동안 사업을 지속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를 근거로 오래 버티면 성공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실패한 기업가 가운데에도 오랫동안 사업을 지속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특성이라면 그 특성만으로 성공을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성공의 원인을 이해하려면 성공한 집단뿐 아니라 비슷한 조건에서 다른 결과를 경험한 집단도 비교해야 한다.
그릿 연구에서도 이러한 원칙이 중요하다.
높은 성과를 얻은 사람이 그릿 점수도 높다는 사실만으로 그릿이 성공의 원인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실제 성취 과정에서 지능과 교육 기회, 이전의 경험, 사회적 지원 등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함께 분석해야 한다.
또한 성공을 무엇으로 정의하는지도 중요하다.
학업 성적과 직업적 지위, 소득, 사회적 기여, 삶의 만족은 서로 다른 성취 지표다.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다른 영역에서도 높은 성과를 얻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더크워스의 최초 연구에서 사용한 성취 지표 역시 구체적인 교육과 훈련, 경쟁 상황과 관련돼 있었다. 그러한 결과를 인간의 삶 전체에 대한 성공 공식으로 확장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사회가 성공한 사람의 행동을 지나치게 일반화하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경험과 환경을 충분히 살펴보지 못할 수 있다.
장기적인 노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노력의 결과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공을 설명할 때 필요한 것은 하나의 특성을 찾아내는 일보다 그 특성이 어떤 조건에서 효과를 발휘하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그릿이 남긴 교훈은 ‘끝까지 버텨라’보다 복잡하다
앤절라 더크워스가 2013년 TED 강연에서 제기한 질문은 여전히 중요하다.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 언제나 높은 성취를 이루는 것은 아니며, 장기적인 노력이 전문성의 형성과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연구가 축적되면서 그릿을 바라보는 시각은 더욱 정교해졌다.
2007년 최초 연구에서는 그릿이 여러 성취 지표와 관련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다만 그릿의 평균 설명력은 제한적이었다. 2017년 대규모 메타분석에서는 노력의 지속성이 중요한 요소로 나타났지만, 그릿 전체가 성실성과 충분히 구별되는 새로운 특성인지는 논쟁이 제기됐다.
이러한 결과는 그릿 이론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릿을 성공의 절대적인 공식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정확한 조건과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성공을 위해서는 재능이 필요할 수 있다. 그 재능을 발전시키려면 지속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노력의 방식이 적절하지 않거나 목표를 추구할 기회가 제한돼 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여기서 성공에 관한 더 중요한 질문이 등장한다.
우리는 개인에게 얼마나 오래 노력했는지를 묻고 있는가. 아니면 그 사람이 노력할 수 있는 조건과 성과를 개선할 기회를 충분히 갖고 있었는지도 함께 살펴보고 있는가.
이 두 질문은 서로 다른 사회적 관점을 반영한다.
첫 번째는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개인의 태도에서 찾는다. 두 번째는 개인의 노력과 그 노력이 작동하는 환경의 관계를 함께 검토한다.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끈기는 중요한 덕목일 수 있다. 그러나 끈기를 강조한다는 이유로 교육과 노동,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환경의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개인의 노력까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성공에 필요한 자원을 충분히 제공받더라도 이를 활용해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개선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결국 재능과 끈기, 환경을 서로 대립하는 조건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이들은 실제 성취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
성공에 가까워지는 방법은 무조건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분명히 이해하고, 노력의 결과를 검토하며, 필요한 경우 방법과 목표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노력에 정당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교육과 사회적 기회를 마련하는 일도 함께 필요하다.
더크워스의 그릿 이론이 남긴 중요한 공헌은 지능과 재능만으로 성취를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를 제기한 데 있다. 그러나 그릿만으로도 성취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후속 연구가 보여준 중요한 결과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에게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말하기 쉽다. 그러나 오래 노력했음에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경험까지 살펴볼 때 성공의 조건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릿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끈기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도, 그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도 아니다. 지속적인 노력이 언제 성과로 이어지고 언제 다른 판단이 필요한지 구분하는 것이다.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능력은 분명히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 능력의 가치는 얼마나 오래 버텼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배우고 개선했으며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를 통해 평가해야 한다.
성공을 결정하는 단 하나의 심리적 특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릿 역시 성공의 여러 조건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개인에게 필요한 것은 끈기를 갖추는 일과 함께 자신의 목표를 검토하고 노력의 방향을 개선하는 능력이다. 사회에 필요한 것은 그러한 노력이 실제 기회와 성취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다.
성공은 개인이 얼마나 강하게 버텼는지에 관한 이야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노력할 이유가 있었는지, 노력할 기회가 주어졌는지, 그리고 그 노력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존재했는지까지 살펴봐야 한다.
그것이 그릿 열풍 이후 우리가 성공에 관해 던져야 할 더 정확한 질문이다.
자료: Angela Lee Duckworth, ‘Grit: The Power of Passion and Perseverance’, TED Talks(2013); Duckworth, A. L. et al., ‘Grit: Perseverance and Passion for Long-Term Goal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2007); Credé, M., Tynan, M. C. and Harms, P. D., ‘Much Ado About Grit: A Meta-Analytic Synthesis of the Grit Literatur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2017); Eskreis-Winkler, L. et al., ‘Using Wise Interventions to Motivate Deliberate Practi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2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