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AI가 실행도 하고 전략도 제안하는 시대, 기업은 마케팅 대행사에 도대체 무엇을 위해 돈을 지급할 것인가?

콘텐츠 제작부터 광고 집행·성과 분석까지 AI가 지원하는 시대…마케팅 대행사의 경쟁력은 작업량이 아니라 고객이 직접 확보하기 어려운 시장 역량과 검증 가능한 성과에 달렸다

마케팅 대행사의 존재 이유가 흔들리고 있다. 광고 문구를 작성하고, 블로그 콘텐츠를 제작하며, 검색광고를 운영하는 작업은 더 이상 전문업체만의 영역이 아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기업 내부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기획안과 콘텐츠, 광고 분석자료를 만들 수 있다. 과거 외부 전문가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했던 업무의 일부가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이용료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마케팅 업계는 실행보다 전략과 판단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반복적인 제작과 집행은 AI에 맡기고, 사람은 방향을 결정하는 역할로 이동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빠진 질문이 있다. AI가 실행뿐 아니라 전략 수립과 데이터 분석까지 지원한다면 기업은 왜 그 판단을 다시 외부 대행사에 맡겨야 하는가.

AI가 만든 전략이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의 전략도 언제나 정확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AI와 인간 중 누가 더 훌륭한 제안서를 작성하느냐가 아니다. 기업이 외부 대행사에 비용을 지급했을 때 내부 인력과 AI만으로 처리하는 것보다 어떤 추가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마케팅 대행사는 앞으로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고객이 직접 확보하기 어려운 역량을 제공하는 기업에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


광고 제작에서 전략 수립까지…AI가 마케팅 대행사의 업무를 잠식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마케팅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콘텐츠 제작을 넘어섰다. 미국 디지털광고협회(IAB)는 2025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AI가 미디어 계획 수립, 소비자 집단 분류, 광고 매체 선택, 성과 예측까지 지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사 대상 광고회사와 브랜드, 매체사 가운데 광고 캠페인 전 과정에 AI를 완전히 통합한 비율은 30%였다(IAB, 2025).

이는 AI가 이미 모든 마케팅 업무를 대체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광고산업의 자동화가 문구 작성과 이미지 생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업이 대행사에 의뢰하던 업무 전반에서 새로운 선택지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확인된다. IAB 유럽이 2025년 광고주와 광고회사, 광고기술 기업 등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85%가 마케팅에 AI 기반 도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주요 활용 분야는 타기팅 64%, 콘텐츠 생성 61%였다(IAB Europe, 2025).

이 수치가 곧바로 대행사 매출 감소를 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케팅 서비스의 원가 구조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콘텐츠 한 편을 만드는 데 투입되는 시간과 광고 운영에 필요한 반복 작업이 줄어들면 고객은 기존 가격의 근거를 다시 묻게 된다.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수행하기 때문에 높은 비용을 받을 수 있었던 서비스가 많았다. 이제 동일한 결과물을 훨씬 적은 인력과 시간으로 생산할 수 있다면 대행사는 무엇을 근거로 기존 수수료를 유지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실행 대행이 끝나면 판단 대행이 시작된다는 주장도 불완전하다


AI 시대의 마케팅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실행을 대신하는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판단을 대신하는 시대라는 주장이다.

일정 부분 타당하다. 광고 소재를 반복적으로 만들거나 정형화된 보고서를 작성하는 업무의 경제적 가치는 낮아질 수 있다. 반면 시장을 이해하고 고객에게 적합한 전략을 선택하는 업무는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전략과 판단이 새로운 대행사의 독점적 영역이 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AI 역시 시장자료를 정리하고 경쟁사를 비교하며 마케팅 전략의 대안을 제시한다. 광고 성과 데이터를 입력하면 예산 재배분 방안을 제안하고, 고객의 구매 경로를 분석해 개선 과제를 도출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제안은 데이터의 품질과 분석 방법에 따라 오류를 포함할 수 있다.

문제는 인간 전문가의 판단에도 같은 검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전문적인 용어로 작성한 전략보고서라고 해서 실제 사업성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마케팅 대행사가 AI보다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한다고 해도 그 설명만으로 높은 비용을 받을 수 있는 시대는 점차 어려워질 수 있다.

더구나 판단과 책임은 다른 문제다. 대행사가 광고 예산을 늘리라고 권고하더라도 최종 투자 결정을 내리는 주체는 일반적으로 광고주다. 전략이 실패하면 대행사의 전문성은 평가받겠지만 손실의 상당 부분은 광고주에게 돌아갈 수 있다.

따라서 판단 대행이라는 표현보다는 검증 가능한 의사결정 지원이 정확하다. 중요한 것은 누가 전략을 말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근거로 선택했고 무엇을 실행했으며 실제 결과가 어떠했는지다.


기업이 돈을 지급할 첫 번째 이유는 내부에 없는 시장 접근 능력이다


기업이 외부 마케팅 대행사를 활용하는 이유는 단순히 업무를 대신 처리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내부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전문인력과 기술, 특정 시장에 대한 경험, 외부 매체와의 연결망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AI는 신제품 출시 보도자료를 작성할 수 있다. 업종별 특성을 분석하고 제목과 문장을 개선하며 발표 일정까지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것과 실제 언론에 전달하고 기사화를 위한 접점을 확보하는 것은 서로 다른 업무다.

언론사의 편집 판단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각 매체의 관심 분야와 취재 관행을 이해하고 적절한 자료를 전달하는 역량에는 별도의 가치가 존재한다. 고객이 이러한 역량을 직접 구축하려면 인력과 시간, 지속적인 관계 관리 비용이 발생한다.

광고업에서도 마찬가지다. 특정 산업에서 누적한 캠페인 운영 경험과 거래 조건, 전문 매체 접근성, 유통 채널에 대한 이해는 단기간에 복제하기 어렵다. AI가 공개된 정보를 분석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기업의 현장 경험과 사업 관계를 동일하게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 거래망을 보유했다는 사실만으로 경쟁력이 영구히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광고 플랫폼과 매체가 자동화 기능을 확대하고 직접 거래를 지원하면 일부 중개 기능은 약화될 수 있다.

결국 외부 대행사의 가치는 고객이 직접 확보하기 어려운 자산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제공하는지에 달려 있다. 사람을 많이 보유했는가보다 고객이 자체적으로 같은 역량을 구축할 때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지가 경제적 판단 기준이 된다.


두 번째 이유는 결과를 검증하고 실패 원인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마케팅에서는 결과물을 생산하는 것과 사업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블로그 게시물 100건을 작성했다고 고객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광고 노출이 늘었다고 실제 구매가 발생했다는 의미도 아니다. 검색 순위가 상승하더라도 해당 검색어가 구매 가능성이 낮은 소비자를 유입시킨다면 매출 기여도는 제한적일 수 있다.

기업이 궁금해하는 것은 콘텐츠 생산량보다 사업에 미친 영향이다. 새로운 고객이 얼마나 유입됐는지, 고객 확보에 어느 정도 비용이 들었는지, 캠페인이 실제 구매에 기여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는 단순한 통계 해석 이상의 문제가 있다. 광고를 본 소비자가 구매했다는 사실만으로 광고가 구매를 유발했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존 고객의 자연스러운 재구매나 계절적 수요 증가, 경쟁사의 활동 변화도 매출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마케팅 효과를 평가하려면 가능한 범위에서 비교집단과 전환 데이터를 확보하고, 광고를 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를 추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모든 기업이 정교한 실험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측정 가능한 성과와 추정에 불과한 효과를 구분해야 한다.

AI는 이러한 분석을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데이터가 불완전하거나 추적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면 정교한 분석도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고객의 구매 과정과 사업 구조를 이해하는 작업이 중요한 이유다.

미국 IAB의 2025년 조사에서도 광고업계의 주요 AI 도입 장애 요인으로 데이터 품질과 보호, 분절된 도구의 문제가 지목됐다. 기술의 존재보다 이를 실제 업무에 연결하는 역량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앞으로 대행사는 보고서가 얼마나 화려한지보다 어떤 가설을 세우고, 어떤 실험을 진행했으며, 어떤 근거로 전략을 수정했는지 보여줘야 한다.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이유를 설명하고 다음 실행을 개선할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 이유는 기업이 직접 감당해야 할 시행착오를 줄여주기 때문이다


마케팅 대행사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할 때 지나치기 쉬운 요소가 있다. 바로 실패비용이다.

기업이 새로운 광고 채널을 도입하려면 플랫폼을 이해하고 소재를 제작하며 운영 방식을 시험해야 한다. 어느 정도 예산을 투입해야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도 처음에는 알기 어렵다. 내부 담당자가 이러한 과정을 모두 수행하면 직접적인 광고비 외에도 학습과 시행착오에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

여러 업종과 고객사를 경험한 대행사는 유사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 특정 키워드의 경쟁 강도나 고객 반응, 캠페인 운영에서 자주 발생하는 문제를 알고 있다면 초기 의사결정에 필요한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물론 다른 기업에서 성공한 전략이 새로운 고객에게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산업 특성과 브랜드 인지도, 가격 경쟁력, 소비자의 구매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검증된 운영 경험에는 가치가 있다. 기업이 직접 여러 번 실패하면서 배워야 할 내용을 외부의 전문성을 통해 더 빠르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행사가 무조건 성과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결과를 보장할 수 없는 영역에서 위험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하는지가 전문성의 기준이 된다.

좋은 대행사는 성공 가능성만 강조하지 않는다. 어떤 조건에서 전략이 실패할 수 있는지, 얼마나 손실을 감수할 것인지, 어느 시점에 중단하거나 수정해야 하는지까지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콘텐츠 제작 수수료에서 사업 기여도 중심으로…가격의 근거가 달라진다


AI의 확산은 마케팅 대행 서비스의 가격 체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존에는 콘텐츠 제작 건수와 광고 운영 기간, 투입 인력에 따라 비용을 책정하는 방식이 널리 활용됐다. 블로그 게시물 1건에 얼마, 보도자료 작성 1건에 얼마, 광고 운영비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는 형태다.

이러한 방식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콘텐츠에는 검수와 편집, 저작권 확인, 매체별 형식 조정 같은 작업이 필요하며 광고 집행에도 관리 비용이 발생한다. 고객이 직접 운영하기보다 외부에 맡기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할 수도 있다.

다만 제작물의 개수만으로 높은 가격을 정당화하기는 점차 어려워질 것이다. AI로 제작비용이 낮아진 사실을 고객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행사는 서비스의 가격 근거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콘텐츠 제작비와 광고 운영비, 전략 수립비, 외부 유통망 활용에 따른 비용을 구분하고 각각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성과에 연동한 계약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마케팅 업무를 매출이나 검색 순위 같은 지표에 직접 연결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언론홍보와 브랜드 인지도 개선처럼 효과가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거나 외부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 업무도 존재한다.

따라서 합의된 업무의 충실한 이행과 측정 가능한 성과를 구분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결과를 무리하게 보장하지 않는 계약 구조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가격의 기준은 대행사가 얼마나 많은 노동을 투입했는지에서 고객이 그 서비스를 통해 어떤 효익을 얻는지로 이동해야 한다.


마케팅 대행사의 미래는 AI를 얼마나 잘 쓰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앞으로 마케팅 대행사가 AI를 활용하는 것은 특별한 경쟁력이라기보다 기본적인 업무 능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같은 도구를 고객도 사용할 수 있고 경쟁 대행사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 사용 자체를 차별화 요소로 내세우는 전략에는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AI를 결합해 경쟁사가 쉽게 제공하지 못하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가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먼저 단순 제작과 반복 운영에 의존하는 매출 구조를 재검토해야 한다. 다음으로 특정 산업과 고객군에 대한 전문성을 축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고객에게 실제로 제공한 경제적 가치를 검증할 수 있는 업무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여기서 외부 대행사가 반드시 모든 업무를 직접 수행할 필요는 없다. 일부 작업은 고객의 AI 시스템이 담당하고, 일부는 대행사의 전문인력이 맡으며, 나머지는 광고 플랫폼과 매체의 자동화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작업했는지가 아니라 전체 과정이 고객의 목표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됐는가다.

마케팅 대행업의 미래를 실행 대행과 판단 대행으로 구분하는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AI는 실행뿐 아니라 판단을 위한 분석과 대안 제시까지 수행하기 때문이다. 반면 실제 시장에 접근하고 고객의 사업 조건을 검증하며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를 조율하는 일은 여전히 별도의 역량을 요구한다.

따라서 미래의 대행사는 단순히 사람이 더 똑똑한 판단을 제공하는 회사가 아니라, 고객이 혼자서는 얻기 어려운 결과를 더 낮은 총비용으로 만들어내는 조직이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기업이 마케팅 대행사에 돈을 지급하는 이유는 명확해질 수밖에 없다.

직접 운영할 때보다 비용이 적게 들거나, 더 빠르게 목표를 달성하거나, 시행착오를 줄이거나, 내부에서 확보하기 어려운 시장 자원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고객이 대행사를 계속 이용할 경제적 이유는 약해진다.

AI는 마케팅 대행사를 일시에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행사가 고객에게 판매해 온 노동과 전문성의 가치를 다시 평가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제 마케팅 대행사의 경쟁력은 무엇을 대신해 주느냐가 아니라, 고객이 비용을 지급한 뒤 무엇을 추가로 얻게 되느냐에 달려 있다.

AI가 실행하고 전략까지 제안하는 시대에 기업이 구매하려는 것은 더 많은 작업도, 더 화려한 제안서도 아니다. 고객이 내부 역량만으로 얻기 어려운 실질적인 사업 가치다.

그 가치를 입증하지 못하는 대행사가 설 자리는 점차 좁아질 것이다.


자료: 미국 디지털광고협회(IAB), State of Data 2025: The Now, The Near, and The Next Evolution of AI for Media Campaigns(2025); IAB Europe, Impact of AI on Digital Advertising Report(2025); IAB, Generative AI Playbook for Advertising(2025).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