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2,000조 시대…한국인은 왜 다시 대출을 늘렸나
-2분기 가계신용 25.9조원 증가하며 2,019.8조원 기록…주택과 자산시장으로 향한 대출, 금리 상승기 가계 부담 변수로
한국의 가계신용이 처음으로 2,000조원을 넘어섰다. 단순한 숫자의 앞자리가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최근 몇 달간 대출 증가 속도가 다시 빨라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2,019조8천억원으로 전분기보다 25조9천억원 증가했다. 이 가운데 가계대출은 1,891조3천억원으로 24조9천억원 늘었고, 신용카드 할부 등을 포함한 판매신용은 128조5천억원으로 9천억원 증가했다.
문제는 2,000조원이라는 숫자 자체보다 빚이 다시 빠르게 늘어나는 시점과 방향이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에 대한 기대가 살아나는 동안 가계는 다시 레버리지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금융당국은 증가 속도를 낮추기 위해 대출 관리 강도를 높이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를 단순히 “빚이 너무 많다”는 경고로만 보면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 지금 더 중요한 질문은 누가 빚을 내고 있으며, 그 돈이 어디로 향하고 있고, 자산가격이 움직일 때 그 위험이 누구에게 집중되는가다.
한 분기에 25.9조원…대출 증가 속도가 다시 빨라졌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폭은 비교적 제한적이었다.
금융위원회 집계를 보면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1월 1조4천억원, 2월 2조9천억원, 3월과 4월 각각 3조5천억원 늘었다. 그러나 5월 증가폭은 9조3천억원으로 뛰었고, 6월에도 8조3천억원 증가했다. 7월에는 6조2천억원으로 증가폭이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연초와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다.
7월만 보면 주택담보대출이 3조5천억원, 신용대출 등을 포함한 기타대출이 2조7천억원 증가했다. 특히 기타대출 가운데 신용대출 증가액은 2조원이었다.
증가 속도가 5월 이후 뚜렷하게 높아졌다는 뜻이다.
대출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가계가 위험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경제활동 규모가 커지고 소득과 자산이 함께 늘어난다면 부채도 어느 정도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처럼 이미 가계부채 규모가 큰 경제에서는 증가 속도가 다시 가팔라질 때 금융시장과 소비에 미칠 영향을 함께 봐야 한다.
집을 살 때 빚을 쓰는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한국 가계부채에서 가장 큰 축은 여전히 주택이다.
주택가격이 높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계가 소득만으로 주택을 구입하기 어렵고, 매수 과정에서 장기간의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문제는 집값 상승 기대가 강해질 때다.
주택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 가계는 “지금 사지 않으면 더 비싸질 것”이라는 판단을 하기 쉽다. 이때 대출은 미래 소득을 앞당겨 자산을 구입하는 수단이 된다.
대출이 주택 수요를 늘리고, 늘어난 수요가 다시 가격 상승 기대를 자극하면 부채와 자산가격이 서로 영향을 주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금융당국이 최근 가계대출을 부동산시장과 따로 보지 않는 이유다. 금융위원회는 7월 가계대출 증가폭이 6월보다 줄었다고 평가하면서도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신용대출까지 함께 늘었다
최근 흐름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주택담보대출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5월 기타대출은 5조3천억원, 6월 3조8천억원, 7월에도 2조7천억원 증가했다. 7월 신용대출만 2조원 늘었다.
신용대출이 증가하는 이유는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생활자금 수요가 늘었을 수도 있고 주택구입 과정에서 부족한 자금을 보충했을 수도 있다. 주식 등 금융자산 투자와 연결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신용대출 증가를 ‘빚투’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러나 자산가격 상승기에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이 동시에 증가한다면, 가계가 자기자본보다 더 큰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기 위해 레버리지를 확대하고 있는지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빚을 내 자산을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가계부채는 금융안정 문제인 동시에 자산격차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두 가구가 각각 1억원의 현금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 가구가 대출을 더해 5억원짜리 주택을 사고 집값이 10% 오른다면 주택가격 상승액은 5천만원이다. 반면 대출을 받을 수 없거나 위험을 피하기 위해 현금을 그대로 보유한 가구는 같은 자산가격 상승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레버리지는 자산가격 상승기에 자기자본 수익률을 크게 높여주는 도구다.
그러나 가격이 반대로 움직이면 손실 역시 커진다.
5억원의 자산이 10% 떨어지면 5천만원의 평가손실이 발생하지만 대출 원금은 줄어들지 않는다. 소득이 감소하거나 금리가 높아지면 이자 부담까지 동시에 커진다.
그래서 부채를 이용한 자산형성은 상승기에는 계층 간 자산격차를 확대하고, 하락기에는 차주의 재무건전성을 빠르게 악화시키는 양면성을 갖는다.
‘2,000조원이 위험선인가’라는 질문에는 답이 없다
가계신용이 2,000조원을 넘어섰다고 해서 바로 금융위기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 규모와 가계소득도 함께 변하기 때문에 부채의 절대 금액만으로 위험 여부를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부채가 소득에 비해 어느 정도인지, 대출자의 상환능력이 충분한지, 변동금리 대출이 얼마나 되는지, 부채가 특정 소득계층에 얼마나 집중됐는지 등이다.
같은 5억원을 빌렸더라도 안정적인 고소득 가구와 소득 변동성이 큰 가구의 위험은 전혀 다르다.
주택담보가 충분하고 원리금을 감당할 소득이 있다면 금융기관이 입을 직접 손실 위험은 제한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금융안정에 문제가 없다고 해서 경제적 부담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빚이 많은 가계는 금리가 오르거나 소득이 줄면 소비를 먼저 줄이는 경향이 있다. 외식이나 여행, 의류, 내구재 소비를 줄여 원리금 상환에 더 많은 돈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계부채가 커질수록 금리 변화가 내수경기에 미치는 영향도 커질 수 있다.
금리가 낮아질 거라 믿고 빌렸다면 상황은 더 복잡하다
대출의 위험은 금리의 방향과도 밀접하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기준금리를 기존 2.50%에서 2.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금리가 오르면 신규 대출자는 더 높은 이자를 부담하고, 변동금리 차주는 기존 대출의 이자 부담이 점차 늘어날 수 있다.
대출을 받을 당시 향후 금리 하락을 기대했다면 예상과 다른 환경을 맞게 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 수억원의 대출에서 금리가 1%포인트만 달라져도 연간 이자 부담은 수백만원 차이가 날 수 있다.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동안에는 이 정도 비용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가격이 정체되고 소득 증가도 느려지면 부담의 성격이 달라진다.
그래서 부채 문제의 핵심은 현재 이자를 낼 수 있느냐만이 아니다.
금리와 소득, 자산가격이 동시에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였을 때도 버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가계대출을 무조건 막는 것도 답은 아니다
가계부채 관리가 어렵다는 것은 대출을 단순히 줄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출 규제를 지나치게 강화하면 소득은 있지만 자산이 부족한 청년이나 무주택자가 주택을 구입하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반대로 규제를 지나치게 완화하면 자산을 이미 보유한 사람이 추가 대출을 이용해 더 많은 자산을 사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결국 정책은 ‘얼마나 빌렸는가’뿐 아니라 ‘상환할 능력이 있는가’를 중심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소득 대비 과도한 대출을 제한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DSR 규제가 대표적인 이유다.
다만 대출규제만으로 주택 수요의 근본 원인을 없애기는 어렵다.
주택가격 상승 기대와 특정 지역으로의 수요 집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금융만 조이면 대출 수요가 다른 금융권으로 이동하거나 현금이 많은 계층에 유리한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
금융정책과 주택 공급, 세제, 지역정책을 함께 봐야 하는 이유다.
빚의 총량보다 ‘돈의 목적’을 봐야 한다
모든 부채가 경제에 나쁜 것은 아니다.
교육을 받고 사업을 시작하거나 실거주 주택을 마련하는 데 사용하는 대출은 미래의 소득이나 생활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기업이 생산설비를 만들기 위해 돈을 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계도 미래를 위해 일정 수준의 부채를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부채가 생산적인 소득 증가보다 기존 자산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될 때다.
경제 전체의 생산능력이 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더 많은 돈을 빌려 같은 집을 높은 가격에 사고판다면 자산가격과 부채는 함께 커지지만 경제의 기초체력이 같은 속도로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가계부채를 볼 때 “2,000조원이 많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돈이 주거 안정에 사용됐는지, 소비를 버티기 위한 생계자금인지, 투자자산을 확대하기 위한 레버리지인지까지 봐야 한다.
가계부채의 진짜 위험은 상승기가 끝난 뒤 드러난다
자산가격이 계속 오르고 고용과 소득이 안정적일 때는 부채가 큰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다.
담보가치가 높아지고 대출을 갚기 어려워져도 자산을 팔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험은 이 조건들이 동시에 바뀔 때 나타난다.
주택과 주식 가격이 떨어지고, 금리는 높은 수준에 머물며, 경기 둔화로 소득까지 줄어든다면 가계는 소비를 크게 줄이거나 자산을 매각해야 할 수 있다. 다수의 가계가 같은 행동을 하면 자산가격 하락과 경기 위축이 서로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금융당국이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목적은 대출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상승기에 과도한 레버리지가 쌓이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하는 데 있다.
2,019조8천억원이라는 숫자는 그 자체로 위기의 신호도, 안전하다는 증거도 아니다.
하지만 올해 2분기에만 가계신용이 25조9천억원 늘었고 5월 이후 월별 대출 증가폭도 크게 확대됐다는 사실은 분명 살펴봐야 할 변화다.
한국 가계가 다시 빚을 늘리고 있는 지금 중요한 것은 어느 순간 2,100조원에 도달하느냐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어난 부채를 감당할 만큼 소득이 함께 증가하는지, 그리고 그 빚이 또 다른 자산가격 상승을 따라가는 데 사용되고 있지는 않은지다.
가계부채의 위험은 숫자가 커질 때보다, 빚을 내지 않으면 자산시장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믿음이 사회 전체에 자리 잡을 때 더 커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