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죽으면 그 주변을 돌던 행성의 운명도 끝나는 것일까.
태양과 비슷한 별은 수명을 다할 때 거대한 적색거성으로 부풀어 오른 뒤 바깥층을 벗어던지고, 중심부만 남은 백색왜성이 된다. 이 과정에서 가까운 행성은 삼켜지거나 궤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수십억 년 뒤 태양계 역시 피할 수 없는 변화다.
그런데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별의 죽음을 견디고 살아남은 거대행성의 대기를 직접 들여다봤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국제 연구진은 백색왜성 WD 1856+534 주변을 도는 외계행성 WD 1856 b를 제임스웹으로 관측해 메탄을 포함한 탄화수소와 에어로졸의 존재를 확인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 7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행성의 질량을 목성의 약 4.3~10.9배 범위로 추정하고, 실제 방출 온도가 약 390~412K에 이른다는 결과도 얻었다.
이번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백색왜성 주변에서 행성 하나를 확인했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 이 행성이 놓여 있는 위치와 온도는 별이 죽은 뒤에도 행성계가 수십억 년 동안 계속 움직이고 재편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구 크기의 죽은 별 옆을 목성급 행성이 돈다
WD 1856+534는 이미 핵융합을 끝낸 백색왜성이다.
백색왜성은 태양 정도 질량을 가진 별이 생애 마지막 단계에서 외부 가스를 방출한 뒤 남기는 뜨거운 핵이다. 질량은 상당하지만 크기는 지구와 비슷한 수준까지 줄어든다.
WD 1856 b는 바로 이 작은 별 주변을 매우 가까이 돌고 있다.
NASA에 따르면 현재 행성과 백색왜성 사이의 거리는 지구와 태양 거리의 약 50분의 1 수준이다. 네이처 논문에서는 현재 궤도의 반지름을 약 0.02천문단위로 제시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이 생긴다.
백색왜성이 되기 전의 별은 훨씬 컸다. 별이 적색거성 단계로 팽창했을 때 지금 행성이 돌고 있는 이 위치까지 행성이 접근해 있었다면 살아남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WD 1856 b는 어떻게 현재의 자리에 있게 됐을까.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행성이 아닐 가능성
연구진이 주목하는 설명 가운데 하나는 ‘늦은 궤도 이동’이다.
WD 1856 b가 처음부터 백색왜성 바로 옆에서 돌았던 것이 아니라, 훨씬 먼 곳에서 살아남은 뒤 별이 백색왜성이 된 다음 안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행성계에 여러 행성이 존재할 경우 서로의 중력이 장기간 작용하면서 특정 행성의 궤도가 매우 길쭉해질 수 있다. 행성이 중심별 가까이 반복해서 접근하면 조석력으로 궤도 에너지를 잃고, 결국 더 작고 둥근 궤도에 정착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바로 이런 ‘고이심률 이동’이 WD 1856 b의 현재 위치를 설명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중요한 것은 이 이동이 별이 백색왜성이 된 직후가 아니라 훨씬 나중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행성의 현재 온도가 그 단서를 제공했다.
예상보다 너무 뜨거웠다
WD 1856 b는 별에서 받는 빛만 고려하면 약 160K 수준의 평형온도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제임스웹 관측을 이용해 연구진이 추정한 행성의 실제 유효온도는 약 390~412K였다. 섭씨로 환산하면 대략 117~139도 수준이다. 예상보다 크게 높은 온도다.
게다가 이 행성계의 나이는 약 100억 년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오래된 거대행성이라면 내부 열도 상당히 식었어야 한다.
연구진은 행성이 과거 어느 시점에 다시 가열됐다고 판단했다.
가장 유력한 설명은 궤도가 크게 찌그러진 상태에서 백색왜성 가까이 접근하는 과정에서 강한 조석력이 작용했고, 그 에너지가 행성 내부를 데웠다는 것이다.
이른바 ‘열적 리셋’이다.
행성이 수십억 년 동안 식은 뒤 궤도 변화 과정에서 다시 가열됐다면 현재 측정되는 높은 온도를 설명할 수 있다.
별이 죽고 수십억 년 뒤에도 행성계는 움직일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행성의 재가열 시점이다.
연구진은 행성의 현재 질량과 온도, 거대행성 냉각모델을 종합해 WD 1856 b가 백색왜성 단계에 들어선 뒤 약 30억~55억 년이 지난 시점에 큰 가열 사건을 겪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는 행성계가 별의 죽음과 동시에 안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중심별이 적색거성에서 백색왜성으로 변하면서 상당한 질량을 잃으면 주변 행성들의 궤도도 변한다. 이전에는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중력 균형이 흔들리고, 수십억 년 뒤에 행성끼리 상호작용하면서 대규모 궤도 변화가 시작될 수도 있다.
우리가 보는 행성계는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 아주 긴 시간에 걸쳐 계속 변하는 역동적인 시스템인 셈이다.
별이 죽은 뒤에도 행성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제임스웹은 행성 대기에서 메탄도 찾아냈다
이번 관측은 궤도 역사뿐 아니라 WD 1856 b의 대기까지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봤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연구진은 제임스웹의 근적외선분광기 NIRSpec을 사용해 약 0.5~5마이크로미터 영역의 투과 스펙트럼을 분석했다.
행성이 백색왜성 앞을 지나갈 때 일부 별빛은 행성 대기를 통과한다. 대기 속 분자는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스펙트럼에 고유한 패턴을 남긴다.
분석 결과 메탄이 포함된 탄화수소의 신호가 나타났고, 대기 중에는 에어로졸도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메탄 농도는 약 7%로 추정됐다.
이는 단순히 ‘행성이 존재한다’는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별의 죽음 이후에도 남아 있는 행성의 화학적 특성을 연구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백색왜성 주변 행성의 대기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행성이 별보다 커서 오히려 관측에 유리했다
WD 1856 b 관측에는 독특한 장점도 있었다.
백색왜성은 크기가 지구 정도로 작지만 WD 1856 b는 목성과 비슷한 크기의 거대행성이다. 따라서 행성이 별 앞을 지나는 동안 별빛의 절반 이상을 가릴 수 있다. NASA는 이 특성 덕분에 대기를 통과한 빛의 변화를 매우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일반적인 외계행성계에서는 별이 행성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행성이 가리는 빛의 비율이 작다.
하지만 백색왜성은 상황이 반대다.
중심별이 극단적으로 작기 때문에 행성 대기에 의한 미세한 파장 변화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앞으로 백색왜성 주변의 더 작은 행성을 연구할 때도 중요한 장점이 될 수 있다.
태양도 결국 백색왜성이 된다
WD 1856 b의 이야기가 특별히 흥미로운 이유는 먼 미래의 태양계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태양은 현재 약 46억 년 된 별이다. 앞으로 약 50억 년이 지나면 중심부의 수소 연료가 고갈되면서 적색거성 단계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태양의 크기는 현재보다 크게 팽창한다.
수성과 금성은 사라질 가능성이 높고, 지구 역시 생존 여부가 불확실하다. 설령 지구가 물리적으로 삼켜지지 않더라도 훨씬 이전에 높은 태양 복사 때문에 현재와 같은 환경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반면 목성이나 토성처럼 멀리 있는 행성들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태양이 외부 가스를 방출하고 백색왜성으로 변하면 태양계의 질량 분포도 크게 달라진다. 행성들의 궤도는 지금보다 바깥쪽으로 이동하고, 장기간의 중력 상호작용으로 안정성이 변할 가능성도 있다.
WD 1856 b는 이런 과정이 실제 다른 행성계에서 어떻게 진행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연 실험실인 셈이다.
그렇다고 미래의 목성이 태양 가까이 이동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WD 1856 b의 모습을 그대로 태양계 미래에 적용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태양계의 행성 질량과 궤도 구조는 WD 1856 행성계와 다르다. 목성이나 토성이 미래의 백색왜성 태양 근처로 이동한다는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 관측이 말해주는 것은 보다 일반적인 가능성이다.
중심별이 죽은 이후에도 행성계의 역학적 변화가 끝나지 않을 수 있고, 일부 행성은 예상하기 어려운 궤도 이동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 관측되는 백색왜성 주변의 행성이나 소행성 잔해는 별이 죽기 전의 행성계를 역으로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별의 죽음 이후 행성계에는 무엇이 남는가’라는 질문이 새로운 외계행성 연구 분야로 자리 잡고 있는 이유다.
백색왜성은 죽은 별이 아니라 행성계의 기록보관소다
천문학에서 백색왜성은 오랫동안 별 진화의 마지막 단계를 연구하는 대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주변 행성계의 역사를 연구하는 대상으로 가치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많은 백색왜성 대기에서는 철과 마그네슘, 칼슘 같은 무거운 원소가 발견된다. 강한 중력 때문에 이런 물질은 빠르게 가라앉아야 하므로, 주변 소행성이나 행성 잔해가 백색왜성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된다.
이 잔해의 성분을 분석하면 과거 그 행성계에 존재했던 암석형 천체가 어떤 물질로 만들어졌는지를 알아낼 수도 있다.
여기에 WD 1856 b처럼 살아남은 거대행성의 대기까지 분석할 수 있게 되면 백색왜성은 별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대상에서, 사라진 행성계 전체의 역사를 복원하는 장소로 의미가 확대된다.
행성계의 ‘끝’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우리는 흔히 별의 탄생과 죽음을 하나의 시간표처럼 생각한다.
별이 태어나고, 행성이 만들어지고, 별이 늙어 적색거성이 된 뒤 백색왜성이 되면 그 행성계도 끝난다고 보기 쉽다.
WD 1856 b는 그런 단순한 그림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중심별은 이미 죽었지만 행성은 살아남았다. 살아남는 데 그치지 않고 수십억 년 뒤 궤도가 크게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다시 뜨거워졌다. 지금도 백색왜성 바로 옆을 돌면서 대기를 유지하고 있다.
제임스웹이 확인한 메탄과 높은 온도는 그 긴 역사를 복원하는 단서다.
이번 연구는 먼 미래의 태양계가 정확히 어떤 모습이 될지를 예언하지는 않는다.
대신 훨씬 중요한 사실 하나를 보여준다.
별이 죽어도 행성계의 이야기는 바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십억 년이 지나도 중력은 행성의 위치를 바꾸고, 살아남은 세계의 운명을 다시 써 내려갈 수 있다.
그리고 약 50억 년 뒤 태양이 적색거성을 거쳐 백색왜성으로 변한 뒤에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태양계의 일부는 예상보다 훨씬 긴 ‘후기 역사’를 이어가고 있을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