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기후

강해진 엘니뇨, 더는 자연현상만이 아니다…기후위기가 키운 ‘재난 증폭기’

-갈라파고스 산호 1000년 기록 분석…최근 변동성 산업화 이전보다 36.5% 높아

-가뭄·홍수·산불 넘어 곡물 가격과 공급망 압박…한국도 선제 대응 필

적도 태평양의 수온 변화로 발생하는 엘니뇨는 오랫동안 자연적인 기후현상으로 설명돼 왔다. 그러나 최근 강한 엘니뇨가 잇따르는 배경에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뜨거워진 지구가 엘니뇨의 강도와 변동성까지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미시간대학교 줄리아 콜 교수 연구팀은 갈라파고스 제도의 산호에 기록된 지난 1000년간의 해수면 온도를 복원했다. 연구 결과 최근 40년간 동태평양 엘니뇨·남방진동의 변동성은 산업화 이전보다 36.5% 높았다. 연구 결과는 27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자연적인 기후 변동만으로 설명될 가능성이 작다고 봤다. 최근의 급격한 강화 시점이 지구 평균기온 상승과 겹쳤고, 12개 기후모델의 산업화 이전 모의실험 범위도 넘어섰기 때문이다. 엘니뇨가 지구를 일시적으로 덥게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온난화된 지구가 다시 엘니뇨를 키우는 상호 증폭 구조가 형성됐다는 의미다.

산호에 남은 1000년의 바다 기록

엘니뇨는 적도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고 대기 순환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통상 2~7년 주기로 발생하며 전 세계의 강수와 기온, 바람에 영향을 준다. 반대 현상인 라니냐는 같은 해역의 수온이 평년보다 낮아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엘니뇨와 라니냐를 합쳐 엘니뇨·남방진동, 즉 ENSO라고 한다. ENSO는 해마다 달라지는 세계 기후의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발생 위치는 태평양이지만 가뭄과 홍수, 산불, 폭염, 한파를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동안 기후변화가 엘니뇨를 강화하는지는 과학계의 주요 쟁점이었다. 관측 장비를 이용한 해수면 온도 기록은 기간이 짧고, 엘니뇨 자체의 자연 변동도 크기 때문이다. 최근 수십 년간 강한 엘니뇨가 발생했더라도 이것이 온난화의 영향인지 장기간 이어진 자연 변화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연구진은 관측자료의 시간적 한계를 산호로 보완했다. 산호 골격에 포함된 화학성분은 산호가 성장할 당시의 해수면 온도를 반영한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산호의 성장층을 분석하면 과거 바다의 온도 변화를 계절 단위로 재구성할 수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동태평양 ENSO 변화를 관찰하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주변 바다가 뚜렷하게 따뜻해져 산호에 강한 수온 신호가 남는다. 연구진은 살아 있는 산호와 화석 산호의 고해상도 지화학 자료를 결합해 약 1000년간의 해수면 온도 기록을 복원했다.

최근 40년, 과거와 다른 변동성

분석 결과 엘니뇨 변동성은 지난 1000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일정한 범위 안에서 움직였다. 변화가 두드러지기 시작한 시점은 산업화가 본격화된 19세기 후반 이후였다.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 사용이 늘면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와 지구 평균기온이 함께 상승한 시기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변화가 가팔라졌다. 최근 40년의 ENSO 변동성은 산업화 이전 1000년보다 36.5% 높았으며, 20세기 전체와 비교해도 16% 이상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미시간대학교·2026년). 강한 엘니뇨가 더 자주 발생하면서 변동 폭을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산호 기록을 중앙태평양 자료와 다른 고기후 복원자료에 대조했다. 이어 12개 기후모델이 재현한 산업화 이전의 자연 변동 범위와 비교했다. 최근의 변화는 자연적인 외부 요인과 기후시스템 내부 변동만으로 만든 모의실험 범위를 넘어섰다.

다만 이번 연구가 엘니뇨의 모든 특성이 일관되게 강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ENSO는 발생 위치와 지속 기간, 동반 강수, 바람의 변화가 사건마다 다르다. 일부 단기 관측자료에서는 뚜렷한 강화 경향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연구도 있어 장기 기록과 현대 관측자료를 지속해서 대조할 필요가 있다.

이번 연구가 보여준 것은 동태평양의 수온 변동 폭이 최근 이례적으로 커졌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1000년 동안 드물었던 변화가 지구온난화와 함께 나타났다는 데 주목했다. 엘니뇨를 과거와 동일한 규모와 빈도로 반복되는 자연현상으로 전제하기 어려워졌다는 판단이다.

뜨거운 지구와 엘니뇨의 상호 증폭

엘니뇨가 발생하면 따뜻한 바닷물이 적도 동태평양으로 확장된다. 바다에서 대기로 방출되는 열이 늘면서 지구 평균기온도 일시적으로 상승한다. 강한 엘니뇨가 나타난 해와 그다음 해에 세계 기온 기록이 경신되는 사례가 많은 이유다.

문제는 출발점인 바다 자체가 과거보다 뜨거워졌다는 데 있다. 온실가스로 지구 에너지 불균형이 커지면서 해양은 지구에 추가로 축적된 열의 대부분을 흡수해 왔다. 높은 기본 수온 위에서 엘니뇨가 발생하면 해양과 대기의 온도 편차도 더 극단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지구온난화와 엘니뇨는 원인과 결과가 한 방향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온난화가 ENSO 변동성을 키우고, 강해진 엘니뇨가 다시 세계 평균기온과 극한기상의 위험을 높이는 순환 구조다. 한 번의 엘니뇨가 끝나더라도 해양에 축적된 장기적인 열은 남는다.

세계기상기구는 2026년 8~10월 강한 엘니뇨가 빠르게 발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중모델 평균에 따르면 해당 기간 적도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 편차는 약 2.9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WMO·2026년). 정점은 11월 무렵 나타날 가능성이 제시됐다.

WMO는 같은 기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평년보다 높은 기온을 예상했다. 지역별 강수는 엘니뇨의 전형적인 영향을 따라 일부 지역에서 증가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가뭄 위험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양의 인도양 쌍극자도 함께 발달할 가능성이 있어 인도양 주변의 강수 불균형이 확대될 수 있다.

기후현상이 식량·물가 위험으로 전환

엘니뇨의 파장은 기온과 강수량에 머물지 않는다.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강수 부족은 쌀과 설탕, 팜유 생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호주와 남미의 가뭄은 밀과 대두, 옥수수 공급을 압박하고 해수 온도 변화는 페루 연안의 멸치 어획량을 흔들 수 있다.

한 지역의 생산 감소는 국제 곡물가격과 사료비, 가공식품 가격으로 전달된다. 여러 주요 산지가 동시에 피해를 보면 수입국은 가격 상승과 물량 확보 문제를 함께 겪는다. 기후 충격이 식량시장과 해운, 보험, 에너지시장으로 확산되는 구조다.

한국은 곡물 자급률이 낮아 해외 기후 충격에 민감하다. 국내에서 평년 수준의 농산물을 생산하더라도 국제 곡물과 사료 가격이 오르면 축산물과 유제품, 외식물가가 영향을 받는다. 팜유와 원당, 커피, 코코아 등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도 생산지 기상에 따라 가격 변동이 커질 수 있다.

엘니뇨가 한반도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계절과 발생 양상에 따라 달라진다. 겨울철 기온과 강수, 여름철 대기 순환에 일정한 경향을 만들지만 모든 엘니뇨가 같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특정 재난을 엘니뇨 하나로 단정하기보다 발생 확률과 피해 규모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야 한다.

정부의 대응도 재난 발생 뒤 복구하는 방식에서 사전 위험관리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국제 곡물 수급과 주요 생산국의 강수 전망, 해수면 온도, 수출 제한 가능성을 통합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비축물량 조정과 수입선 다변화, 취약계층 식품 지원도 기후정보와 연계할 필요가 있다.

예측 정확도보다 중요한 조기 행동

계절 기후전망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엘니뇨의 강도를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하더라도 어느 지역에 언제 얼마만큼의 비가 내릴지는 달라질 수 있다. 서로 다른 기후현상이 동시에 발생하면 지역별 영향은 더 복잡해진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대응을 미룰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기후예측의 목적은 미래를 완벽하게 맞히는 데 있지 않다. 가뭄이나 홍수 위험이 평년보다 높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피해가 커지기 전에 자원과 정책을 배치하는 데 있다.

농업에서는 파종 시기와 품종, 관개용수 배분을 조정할 수 있다. 수자원 분야에서는 저수지 운영과 광역 용수 공급계획을 점검해야 한다. 보건 분야는 폭염과 감염병, 영양 불안에 취약한 인구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

민간기업에도 계절전망은 공급망 정보가 된다. 식품기업은 원료 산지와 재고를 분산하고, 유통기업은 품목별 가격 급등 가능성을 점검할 수 있다. 금융과 보험업계는 농업 손실과 자연재해 위험을 상품 설계와 자산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온실가스 감축이 엘니뇨 위험관리의 출발점이다. 적응정책은 이미 발생한 위험의 피해를 줄이지만 해양에 축적되는 열 자체를 막지는 못한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지 않으면 강한 엘니뇨와 극한기상이 겹치는 위험도 계속 커질 가능성이 있다.

자연변동을 전제로 만든 정책 바꿔야

기후정책과 재난관리 체계는 과거의 기상 통계를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 댐과 배수시설, 농업용수, 방재시설도 일정한 범위 안에서 기후가 변동한다는 전제에 의존한다. 엘니뇨의 변동성이 커진다면 이 기준 자체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과거 30년 평균을 정상기후로 정하고 그 범위를 벗어난 현상을 예외로 취급하는 방식은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의 이상기후가 일회성 예외가 아니라 새로운 위험 범위가 될 수 있어서다. 시설 기준과 식량비축, 보험요율, 재난예산에도 변화하는 기후 조건을 반영해야 한다.

이번 연구는 모든 엘니뇨 재난을 기후변화 탓으로 돌리는 근거가 아니다. 개별 사건의 원인은 해양과 대기, 지형, 지역 환경이 복합적으로 결정한다. 연구가 제시한 핵심은 인간이 높인 지구의 기본 온도가 자연적인 기후 진동의 폭까지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엘니뇨는 사라지지 않으며 인류가 만들어낸 현상도 아니다. 달라진 것은 엘니뇨가 작동하는 지구의 조건이다. 더 뜨거워진 바다와 대기에서 같은 자연현상이 더 큰 피해를 만들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대응은 자연현상과 인위적 변화를 분리해서 보는 데 머물 수 없다. 자연적인 엘니뇨 위에 온실가스가 만든 추가 위험이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강해진 엘니뇨는 기후변화가 평균기온만 높이는 문제가 아니라 지구 기후시스템의 변동성까지 바꾸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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