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

3조5000억원 거의 다 썼다…지원금이 만든 소비는 ‘진짜 새 소비’였을까

정부가 지급한 고유가 피해지원금의 사용 기한이 31일 자정 종료된다. 신용·체크카드로 지급된 지원금 3조5492억원 가운데 지난 18일 오전 8시 기준 3조4542억원이 사용돼 소진율은 이미 97.3%에 달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돈은 빠르게 시장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경제적 효과를 판단하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더 해야 한다.

지원금으로 결제된 3조4542억원이 모두 지원금 때문에 새롭게 발생한 소비일까.

정부가 현금성 또는 쿠폰 형태의 지원을 할 때마다 정책 효과를 둘러싼 논쟁이 반복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급된 돈이 빠르게 사용됐다는 사실과 그만큼 새로운 소비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는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지역 상권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골목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공개된 97.3%라는 수치는 어디까지나 지원금의 사용률이다. 해당 지원금이 실제 소비를 얼마나 추가로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별도의 실증 분석은 아직 필요하다.


지원금 1만원을 쓰면 소비도 1만원 늘어날까


예를 들어 한 가구가 원래 이번 주 식료품 구입에 10만원을 사용할 예정이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가구가 정부에서 받은 지원금 5만원을 식료품 결제에 사용했다면 지원금 사용액은 5만원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해당 가구가 원래 쓸 예정이던 돈을 지원금으로 대신 결제했을 뿐이라면 전체 소비가 5만원 늘어난 것은 아니다.

지원금 덕분에 외식을 한 번 더 하거나 평소 미뤄두었던 물건을 구입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부분이 정책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추가 소비다.

경제학에서는 정부 이전지출 가운데 얼마만큼이 추가 소비로 이어졌는지를 판단할 때 한계소비성향(MPC) 같은 개념을 활용한다.

따라서 정책 효과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지원금이 얼마나 빨리 사용됐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기존 소비를 얼마나 대체했고, 실제 추가 소비는 어느 정도 만들어냈는지를 구분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시행된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이를 살펴볼 수 있는 대규모 사례를 제공했다.

2025년 7월부터 11월까지 지급된 민생회복 소비쿠폰 규모는 총 13조5220억원이었다. 올해 들어 한국은행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등이 카드 결제 데이터 등을 활용한 분석 결과를 내놓으면서 현금성 소비지원 정책이 시장에서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자료가 축적되고 있다.


13조5000억원 소비쿠폰, 전액이 추가 소비는 아니었다


한국은행이 지난 6월 발표한 분석은 지원금 사용액과 추가 소비의 차이를 비교적 명확하게 보여준다.

한국은행은 2025년 민생회복 소비쿠폰 가운데 신용카드로 지급된 약 9조1000억원을 분석한 결과, 사용 가능 사업장의 추가 매출 증가 효과를 약 2조8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재정투입액 대비 약 30.9%가 사용처의 추가 매출로 연결됐다는 의미다. 분석 방법에 따라 효과 추정치는 16.1~39.8% 범위로 나타났다.

소비쿠폰 사용처 한 곳당 월평균 매출 역시 쿠폰을 사용할 수 없는 사업장보다 약 2.91% 더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효과는 특히 지급 초기 집중됐으며 장기간 지속되기보다 단기적인 소비 촉진 효과가 강하게 나타났다.

소비자 조사에서도 비슷한 특징이 관찰됐다.

한국은행이 추정한 소비쿠폰의 한계소비성향은 0.20이었다. 소비쿠폰으로 사용한 금액 가운데 약 20%가 쿠폰이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새로운 소비였다는 의미다.

나머지는 기존에 계획됐던 소비를 쿠폰으로 대체하거나 저축 등 다른 자금 운용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정부가 10만원을 지급했다고 소비가 반드시 10만원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소비지원 정책을 평가할 때 지급액과 사용률만으로 효과를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분석 방법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오는 이유


흥미로운 점은 같은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분석했는데도 연구기관에 따라 효과의 크기가 다르게 추정됐다는 사실이다.

행정안전부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의뢰한 연구에서는 총 13조5200억원 규모의 소비쿠폰 가운데 5조8600억원이 소상공인 순매출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지급액의 43.3%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카드 지급분을 기준으로 추산한 30.9%와 차이가 난다.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단정할 문제는 아니다.

분석 대상과 카드 데이터의 범위, 비교집단 설정, 정책이 없었을 경우의 소비를 어떻게 추정했는지 등 연구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연구 모두 소비지원 정책이 소상공인과 지역 소비에 일정한 추가 효과를 냈다는 방향 자체는 확인하면서도, 지급된 돈 전부가 새로운 소비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차이를 이해해야 수조원 규모의 소비지원 정책을 단순히 성공과 실패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평가하는 오류를 피할 수 있다.


왜 사용처와 사용기한을 제한할까


정부가 현금 대신 일정한 사용기한과 사용처를 둔 쿠폰이나 카드 포인트 형태를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금을 지급하면 가구는 돈을 저축하거나 빚을 갚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가계 재무상태 개선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당장의 소비를 늘리는 효과는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 있다.

반면 사용기한을 정하면 일정 기간 안에 돈을 써야 하기 때문에 소비를 앞당기는 효과가 생긴다.

사용처를 지역 소상공인 중심으로 제한하면 정책 자금이 대형 유통기업이나 해외 온라인 플랫폼 대신 지역 음식점과 소매점, 서비스업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높아진다.

실제로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분석에서는 지난해 소비쿠폰에 따른 소상공인 순매출 증가분 가운데 49.6%가 음식점과 종합소매업, 무점포소매업, 음식료품·담배 소매업 등 생활밀착형 업종에서 발생했다.

한국은행 분석에서도 소비지원 효과는 식품·의류와 음식점, 여가용품점 등 생활과 가까운 업종에서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다. 수도권보다 비수도권의 효과가 높게 나타났다는 점도 주목된다.

소비지원 정책의 효과는 결국 돈을 얼마 지급하느냐뿐 아니라 누구에게, 어디에서, 언제까지 사용하도록 설계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셈이다.


저소득층에 지급할수록 소비 효과 커질 가능성


지원 대상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도 중요하다.

한국은행 조사에서는 소득이 낮을수록 소비쿠폰의 한계소비성향이 높아지는 경향이 확인됐다.

소득이 높은 가구는 지원금을 받아도 기존 소비를 대체하거나 남은 현금을 저축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반대로 소득이 낮고 소비 여력이 부족한 가구는 지원금이 들어왔을 때 미뤄왔던 소비를 실제로 늘릴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같은 규모의 재정을 투입하더라도 지급 대상을 정교하게 설정하면 소비 진작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전 국민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과 취약계층이나 소비 여력이 부족한 가구에 집중 지원하는 방식 가운데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인지도 이런 데이터를 토대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정책의 목적이 생활 안정인지, 소비 진작인지, 소상공인 지원인지에 따라서도 최적의 설계는 달라진다.

한 가지 정책으로 세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하려 하면 오히려 효과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골목상권에는 효과 있어도 장기 경기부양은 별개


소비지원금의 또 다른 특징은 효과가 빠르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소비쿠폰의 매출 증가 효과가 1·2차 지급 모두 초기 집중됐으며 비교적 단기간 지속됐다고 분석했다. 이를 두고 경기 부진기에 빠르게 소비를 끌어올리는 단기 처방에는 적합하지만 구조적인 경기 회복 수단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지역 음식점이 한두 달 매출 증가를 경험하더라도 소비자의 소득 자체가 지속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면 지원금이 끝난 뒤 소비는 다시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다.

결국 장기적인 내수 회복에는 임금과 고용, 자영업 생산성, 가계소득 증가 같은 경제의 기초 체력이 함께 개선돼야 한다.

소비지원 정책은 그 과정에서 급격한 경기 위축을 막는 완충장치가 될 수 있지만 경제 성장 자체를 대신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97.3% 사용률 뒤에서 봐야 할 숫자


31일 종료되는 고유가 피해지원금의 카드 지급액 3조5492억원 가운데 97.3%가 이미 사용됐다는 사실은 정책 집행 측면에서는 상당히 높은 소진율이다.

하지만 경제정책 평가에서 다음 단계는 이제부터다.

그 돈 가운데 얼마가 기존 소비를 대신했고, 얼마가 추가 소비를 만들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어느 지역과 업종에서 매출 증가 효과가 컸는지, 저소득층의 생활비 부담을 얼마나 완화했는지도 분석해야 한다.

고유가 피해를 줄이는 것이 정책의 첫 번째 목적이었다면 소비 진작 효과만으로 성공 여부를 판단해서도 안 된다. 가계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얼마나 줄였는지 역시 별도의 평가 대상이다.

지난해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여러 실증연구가 보여준 결론은 비교적 분명하다.

정부가 돈을 지급하면 소비는 늘어날 수 있다. 사용기한과 지역·업종 제한을 두면 골목상권으로 소비를 유도하는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지급된 돈 전부가 새로운 소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수조원 규모의 지원 정책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숫자는 ‘얼마를 지급했는가’나 ‘몇 퍼센트를 사용했는가’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그 재정이 없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소비를 얼마나 새롭게 만들어냈는가. 그리고 그 효과가 정책에 투입된 국민의 재정 부담에 비해 충분했는가.

3조5000억원이 거의 모두 사용된 지금, 경제적으로 더 중요한 질문은 바로 그 지점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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