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는 부족하다는데 공장은 사람이 없다…한국 경제 ‘인력 미스매치’의 역설
한국 노동시장은 모순적인 두 장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취업 경쟁이 치열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고, 안정적인 일자리에 지원자가 몰리는 현상도 반복된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제조업과 농축산업, 어업을 중심으로 사람을 구하지 못해 외국인력에 의존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사회적 인식과 사람이 부족하다는 산업 현장의 호소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같은 불균형은 올해 외국인력 도입 규모에서도 확인된다.
정부는 2026년 고용허가제(E-9) 외국인력 도입 규모를 8만명으로 정했다.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늘었던 외국인력 수요가 일정 부분 해소되고 제조·건설업의 빈 일자리도 감소했다는 점을 반영해 전년보다 규모를 조정했지만, 여전히 상당한 수준의 외국인력이 국내 산업현장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moel.go.kr)
특히 올해 3회차 신규 고용허가 규모 1만2630명 가운데 제조업 배정 인원은 9020명으로 전체의 70%를 넘었다. 농축산업 1906명, 어업 1196명, 건설업 394명, 서비스업 114명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moel.go.kr)
한국 제조업의 인력 부족 문제가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산업 구조의 중요한 문제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취업난과 구인난이 함께 존재하는 이유
경제 전체에서 일자리가 부족하다면 기업들은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노동시장은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구직자가 원하는 일자리와 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 사이에 조건과 위치, 임금, 숙련 수준이 맞지 않으면 실업과 인력 부족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노동시장에서는 ‘미스매치’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수도권에 거주하는 대졸 청년이 사무직이나 전문직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지방 산업단지의 생산직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해도 두 수요가 곧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직업의 종류가 다르고 근무 지역이 다르며, 필요한 기술과 기대 임금도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중소 제조업체의 경우 교대근무와 물리적으로 힘든 작업환경,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복지 수준, 지방 근무 등의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람을 뽑고 싶어도 지원자가 부족하고, 구직자 입장에서는 일자리가 있어도 선택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노동시장의 문제는 단순히 ‘일자리 몇 개가 있느냐’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어디에 어떤 일자리가 있고,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으며, 구직자가 그 일자리를 선택할 조건이 갖춰져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제조업 외국인력 의존도가 높은 이유
올해 3회차 E-9 배정 규모에서 제조업 비중이 높은 것은 이런 구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E-9 고용허가제를 이용하는 사업주는 원칙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기 전에 일정 기간 내국인을 먼저 구하려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올해 3회차 고용허가 신청 역시 7일간 내국인 구인 노력을 거친 뒤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moel.go.kr)
그럼에도 상당수 사업장이 외국인력을 신청한다는 것은 내국인 채용만으로 인력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운 현장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특히 중소 제조업은 대기업과 비교해 임금과 복지, 근무환경 경쟁에서 불리한 경우가 많다.
수도권과 대기업으로 구직자가 몰리면서 지방의 중소기업은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생산 주문이 있어도 일할 사람이 없어 설비를 충분히 돌리지 못하거나, 기존 직원의 연장근무에 의존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외국인력이 이 빈자리를 채우면서 국내 제조업의 생산을 지탱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정부가 올해 제도를 손질하면서 비수도권 제조업의 외국인 고용 한도를 확대하는 방향을 추진한 것도 지역 인력난을 고려한 조치다. 정부는 2026년 전체 비전문 외국인력 도입 규모를 E-9과 계절근로 E-8 등을 포함해 약 19만1000명 수준으로 잡았다. (moel.go.kr)
지역소멸과 제조업 인력난은 연결돼 있다
외국인력 문제는 노동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 인구 감소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청년 인구가 수도권으로 이동하면 지방 산업단지 주변에서는 기업이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진다. 기업의 인력난이 심해지면 생산시설을 다른 지역이나 해외로 옮길 가능성이 커지고, 지역의 일자리가 줄어들면 다시 청년들이 떠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외국인 노동자가 지역 제조업의 부족한 인력을 채우면 공장이 유지되고 지역 소비와 주거 수요가 생기는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외국인력 정책은 단순한 노동력 공급을 넘어 지역 산업을 유지하는 수단으로도 의미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비수도권 제조업에 외국인 고용 한도를 확대하려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단순히 전국적으로 사람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과 특정 업종에서 인력 부족이 더욱 심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인구 구조를 고려하면 이 문제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면서 전체 노동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제조업과 농어촌이 필요한 인력을 국내 인구만으로 충당하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금만 올리면 해결될까
인력난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주장은 임금을 높이면 사람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기업이 더 높은 임금과 나은 근무조건을 제공하면 구직자가 해당 일자리를 선택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중소기업이 임금을 크게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납품단가와 원자재 가격, 에너지 비용, 생산성 등 기업의 수익 구조가 함께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건비만 크게 높이면 경영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특히 가격 결정력이 약한 중소기업은 비용 증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도 쉽지 않다.
근무환경 문제도 있다.
제조업 현장의 자동화가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반복 작업이나 야간근무, 위험도가 높은 공정이 존재한다. 이런 일자리의 매력을 높이려면 단순한 임금 인상뿐 아니라 자동화 투자와 작업환경 개선, 근무시간 조정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결국 인력 부족 문제는 기업 한 곳의 채용 전략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다.
외국인력이 늘수록 새로운 과제도 커진다
외국인력이 산업현장의 부족한 노동력을 채운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면 산업 안전과 노동권 보호, 숙소와 의료, 언어교육, 지역사회 적응 같은 새로운 과제가 함께 커진다.
사업장 이동과 임금 체불, 산업재해 같은 문제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도 중요하다.
외국인력 정책이 단순히 부족한 사람 수를 채우는 방식으로만 운영될 경우 기업에는 단기적인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기업이 외국인력을 값싼 노동력으로만 인식하면 자동화와 생산성 향상, 근무환경 개선 투자가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따라서 외국인력 확대와 동시에 기업의 생산성 개선을 유도하는 정책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사람이 부족한 공정을 자동화하고, 숙련도가 필요한 업무는 교육을 통해 전문인력을 키우며, 외국인 노동자가 장기간 숙련을 축적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방식이다.
문제는 일자리 숫자가 아니라 ‘연결’이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앞으로 중요한 질문은 단순히 일자리를 몇 개 더 만들 것이냐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일부 산업에서는 일자리가 있는데도 사람이 오지 않고 있다.
반대로 구직자는 많지만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간극을 줄이려면 산업과 교육, 지역정책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지역 대학과 산업단지를 연결해 현장에 필요한 기술을 교육하고, 청년이 지방에서 일해도 주거와 생활에서 불이익을 느끼지 않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중소기업 역시 임금뿐 아니라 근무환경과 경력 개발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외국인력 정책도 같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국내 인력으로 채우기 어려운 산업의 공백을 보완하면서 동시에 해당 산업의 생산성과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정부가 올해 E-9 외국인력 도입 규모를 8만명으로 잡은 사실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 뒤에는 사람이 필요한 산업과 일을 찾는 사람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가 숨어 있다.
청년은 일자리가 없다고 말하고, 공장은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두 말이 동시에 사실일 수 있다는 점이 지금 한국 노동시장이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문제다. 앞으로의 고용정책 역시 일자리의 숫자를 늘리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과 산업, 지역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