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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제품보다 ‘내가 조립한 물건’…소비자가 제품을 직접 설계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물건을 고를 때 색상과 크기, 가격을 비교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이미 완성된 제품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최근에는 이 소비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본체와 손잡이, 덮개, 수납부품, 장식과 기능을 따로 고른 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제품을 완성하는 소비가 늘고 있다. 텀블러와 가방, 가구, 스마트기기 액세서리처럼 일상에서 자주 쓰는 물건을 중심으로 이런 흐름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단순히 스티커를 붙이거나 키링을 다는 ‘꾸미기’와도 조금 다르다.

제품을 구매한 뒤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구매 단계에서부터 구성요소를 직접 선택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소비자는 완성품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제품의 최종 형태를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한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소비시장에서 주목받는 개인화 수요와 맞닿아 있다. 같은 브랜드를 사용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완전히 같은 제품을 쓰기보다 자신의 취향과 생활방식이 반영된 물건을 원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꾸미기’에서 ‘조립하기’로 바뀌는 소비


개인화 소비 자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휴대전화 케이스를 바꾸고 가방에 키링을 달거나 운동화 색상을 직접 조합하는 방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개인화의 범위가 제품 외부 장식에서 구조 자체로 확대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가방을 고를 때 본체 디자인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랩과 수납 포켓, 파우치 등을 따로 고를 수 있고, 텀블러도 본체와 뚜껑, 손잡이와 각종 액세서리를 조합해 사용하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가구 역시 비슷하다.

소파나 수납장을 하나의 완성품으로 구입하기보다 공간 크기에 따라 모듈을 추가하거나 빼면서 형태를 바꿀 수 있는 제품이 늘고 있다.

제품을 처음 구입할 때 최종 형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면서 계속 바꿀 수 있다는 점이 과거 소비와 다른 부분이다.

이런 흐름은 ‘내 취향에 맞춘다’는 감성적 요소뿐 아니라 실제 생활공간 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다는 실용성과 연결된다.


왜 소비자는 완성된 제품에 만족하지 않을까


개인화가 강해지는 배경에는 소비환경의 변화가 있다.

과거 대량생산 시장에서는 같은 제품을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가격과 품질, 브랜드 인지도가 구매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였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과 사회관계망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소비자는 훨씬 많은 제품을 비교하게 됐다.

같은 디자인과 같은 브랜드를 사용하는 사람을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됐고, 자신의 취향을 제품을 통해 표현하려는 욕구도 커졌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물건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된다.

직접 조합한 가방이나 책상, 텀블러를 사진과 영상으로 공유하고 다른 사람이 만든 조합을 참고한다. 제품 구매가 단순한 소비 행위를 넘어 자신을 보여주는 활동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브랜드 입장에서도 이런 행동은 중요하다.

소비자가 자신이 만든 조합을 온라인에 공유하면 제품 자체가 자연스럽게 새로운 콘텐츠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화는 소비자의 취향과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기업도 완제품 하나보다 ‘조합 가능한 부품’을 판다


모듈형 제품은 기업의 판매 방식도 바꾼다.

완제품 하나를 판매하는 구조에서는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한 뒤 일정 기간 다시 구매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본체와 여러 부품을 따로 판매하면 구매 이후에도 추가 소비가 발생할 가능성이 생긴다.

처음에는 기본 구성만 구입했다가 이후 새로운 색상의 부품이나 다른 기능을 가진 액세서리를 추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 하나를 판매하는 대신 하나의 ‘제품 생태계’를 만드는 전략이다.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이미 익숙한 방식이기도 하다.

기기 자체뿐 아니라 케이스와 스트랩, 충전장치, 주변기기가 하나의 시장을 형성한다. 최근에는 이런 방식이 생활용품과 패션, 가구 영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같은 기본 제품을 활용하면서도 다양한 조합을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수십 종류의 완제품을 각각 생산하는 대신 몇 개의 핵심 부품을 조합해 다양한 제품처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 효율과 소비자 선택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나만의 제품’이라는 감각이 구매를 부른다


개인화 소비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세상에 하나뿐인 제품인가보다 소비자가 그렇게 느끼느냐다.

기본 부품 자체는 대량생산된 제품이라도 색상과 형태, 액세서리를 조합하면 수많은 경우의 수가 만들어진다.

소비자는 그 가운데 자신이 직접 선택한 결과를 하나의 개인화된 제품으로 받아들인다.

이 과정 자체가 구매 만족도를 높일 수도 있다.

매장에서 완성품을 고를 때보다 자신이 부품을 하나씩 선택하면 제품에 대한 관여도가 높아지고, 완성한 뒤에는 자신이 만든 물건이라는 애착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최근 브랜드들이 온라인에서 제품 조합을 미리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거나 매장에서 직접 부품을 고르게 하는 것도 이런 경험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소비에서 결과만큼 과정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1인가구와 작은 집도 모듈형 제품을 키운다


모듈형 소비의 확산은 개인 취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주거공간의 변화도 영향을 준다.

1인가구와 소형가구가 늘면서 한정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문제가 중요해졌다. 이사를 하거나 가족 구성원이 달라질 때마다 가구 전체를 바꾸는 것보다 필요한 부분만 추가하거나 분리할 수 있는 제품이 더 실용적일 수 있다.

책상과 수납장, 소파처럼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제품에서 모듈형 설계가 활용되는 이유다.

작은 집에서는 하나의 가구가 여러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처음에는 작은 크기로 사용하다가 필요할 때 수납공간을 추가하거나 구성요소를 바꿀 수 있다면 공간 변화에 대응하기 쉬워진다.

‘나답게 꾸민다’는 감성적 욕구와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쓴다’는 현실적인 필요가 동시에 작용하는 셈이다.


제품을 오래 쓰게 할까, 더 많이 사게 할까


모듈형 제품은 환경 측면에서도 두 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가진다.

긍정적인 측면은 제품 전체를 버리지 않고 고장 난 부분이나 필요한 구성요소만 교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구의 한 부분이 파손됐을 때 전체 제품을 새로 사지 않고 해당 모듈만 바꿀 수 있다면 제품 수명을 늘릴 수 있다.

전자제품에서도 배터리나 특정 부품을 쉽게 교체할 수 있다면 폐기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모듈형 구조가 새로운 소비를 계속 유도하는 장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새로운 색상과 한정판 부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면 소비자는 아직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추가 액세서리를 반복적으로 구매할 수 있다.

본체를 바꾸지는 않지만 주변 부품 소비가 계속 증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듈형 제품이 지속가능한 소비로 이어지는지는 제품 설계와 기업의 판매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교체와 수리가 쉽도록 만든 제품인지, 아니면 계속 새로운 부품을 구매하게 만드는 구조인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수리할 권리’와도 연결되는 제품 설계


제품을 부품 단위로 나누는 방식은 최근 세계적으로 논의되는 ‘수리할 권리’와도 연결될 수 있다.

제품이 하나의 완전히 밀폐된 구조로 만들어지면 일부 부품이 고장 나더라도 전체 제품을 교체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반대로 배터리나 부품을 쉽게 분리하고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하면 소비자가 제품을 더 오래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전자제품의 수리 가능성을 높이고 부품 공급을 확대하려는 규제가 강화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듈형 설계가 단순한 디자인 유행을 넘어 제품의 수명과 자원 사용 방식까지 바꿀 가능성이 있는 이유다.

다만 생활용품 시장에서 확산되는 개인화 모듈과 수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산업적 모듈 설계는 목적이 다를 수 있다.

모든 모듈형 제품을 곧바로 친환경 제품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브랜드 충성도도 ‘제품’에서 ‘시스템’으로


모듈형 소비가 확대되면 소비자가 브랜드를 선택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과거에는 제품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브랜드로 옮기기가 비교적 쉬웠다.

하지만 본체와 여러 부품을 구매해 하나의 조합을 만들어놓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미 가지고 있는 부품과 호환되는 제품을 계속 구매하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소비자가 자사 브랜드 안에서 지속적으로 소비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제품 하나에 대한 충성도보다 하나의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문제는 호환성이다.

같은 브랜드 안에서만 부품이 호환되고 다른 회사 제품과는 연결되지 않는다면 소비자의 선택권이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모듈형 제품이 개인화의 자유를 넓히는 동시에 특정 브랜드 생태계 안에 소비자를 묶어두는 전략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소비자는 이제 ‘무엇을 살까’보다 ‘어떻게 만들까’를 고른다


완성된 물건을 고르는 소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제품은 앞으로도 완제품 형태로 판매될 것이다.

하지만 일부 생활용품과 패션, 가구 시장에서는 소비자가 제품 설계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이 점점 더 자연스러워질 가능성이 있다.

이 변화에서 주목할 것은 물건의 형태보다 소비자의 역할이다.

과거 소비자는 기업이 만든 제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기업이 제공한 여러 구성요소 가운데 자신의 생활방식과 취향에 맞는 조합을 만들어내는 역할까지 맡는다.

기업 역시 하나의 완성된 상품을 제시하는 대신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부품과 조합의 범위를 설계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화와 편의성, 제품 수명이라는 장점이 생길 수 있지만 지나친 액세서리 소비와 브랜드 종속이라는 새로운 문제도 따라온다.

결국 모듈형 소비가 보여주는 변화는 단순히 키링이나 색상을 고르는 유행이 아니다.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살 것인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사용할 제품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할 것인가”까지 선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완제품을 고르는 시대에서 조합을 고르는 시대로.

소비시장의 다음 경쟁은 가장 많은 제품을 진열하는 데서가 아니라, 소비자에게 얼마나 많은 ‘나만의 조합’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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