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인데 왜 다시 종이와 필름을 찾을까…젊은 세대의 ‘불편한 취미’

사진을 찍으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두고 굳이 필름카메라를 든다. 원하는 음악을 몇 초 만에 찾을 수 있는데 LP판을 골라 턴테이블에 올린다. 메모는 휴대전화가 더 빠르지만 종이 노트를 펴고 손으로 일기를 쓴다.
뜨개질과 자수, 스크랩북, 종이책, 레코드판처럼 한동안 낡은 취미로 여겨졌던 것들도 다시 젊은 세대의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다.
기술이 불편해서 벌어진 현상은 아니다.
오히려 인공지능(AI)이 글과 그림을 만들고 알고리즘이 볼 것과 들을 것을 대신 골라주는 시대가 되면서, 일부 젊은층이 의도적으로 반대편을 찾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빠르고 편리한 것 대신 시간이 걸리는 것, 화면 속 결과물 대신 손에 잡히는 것, 추천받는 대신 직접 고르는 경험을 선택하는 것이다.
2026년 국내에서도 이런 흐름은 뚜렷해지고 있다. 올해 소비문화 전망에서는 짧은 영상과 AI 콘텐츠에 둘러싸인 젊은층이 손을 직접 쓰거나 몸을 움직이는 비디지털 취미와 오프라인 공간을 찾는 현상이 주요 생활 변화로 꼽혔다.
사진은 무한대로 찍을 수 있는데 왜 필름을 살까
필름카메라는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불편한 점이 많다.
필름 한 통에 찍을 수 있는 사진 수가 정해져 있고, 촬영한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도 없다. 현상과 인화에는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 사진이 흔들리거나 빛이 잘못 들어가도 되돌릴 방법이 없다.
그런데 바로 그 불편함이 매력이 되고 있다.
2026년 7월 공개된 필름사진 시장 분석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필름카메라 이용자 약 4,200만 명 가운데 18~30세가 35%를 차지한 것으로 추산됐다. 필름사진 관련 온라인 검색 역시 이전보다 크게 증가했고, 일회용 카메라 판매도 다시 늘어나는 흐름을 보였다.
젊은 이용자에게 필름카메라는 옛날 기술을 체험하는 물건만은 아니다.
사진 한 장을 찍기 전에 구도를 한 번 더 보고, 정말 남기고 싶은 장면인지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스마트폰과 다른 경험을 준다.
스마트폰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십 장을 더 찍으면 된다. 필름에서는 셔터 한 번에 비용이 든다.
사진을 적게 찍는 대신 한 장을 찍는 과정에 더 오래 머무르게 되는 셈이다.
음악도 ‘재생’보다 ‘고르는 시간’을 다시 찾는다
음악 역시 비슷하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수천만 곡 가운데 원하는 음악을 즉시 들을 수 있다. 사용자가 특별히 찾지 않아도 알고리즘이 취향을 분석해 다음 곡을 추천한다.
LP는 정반대다.
음반을 꺼내고 먼지를 닦고 턴테이블 위에 올린 뒤 바늘을 내려야 한다. 한 곡을 건너뛰는 것도 휴대전화 화면을 누르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2025년 바이닐 음반 매출이 10억 달러를 넘어섰고, 젊은 세대가 실물 음반 시장의 중요한 소비층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서울에서도 종로와 을지로 등의 오래된 음반가게와 레트로 공간을 찾는 젊은층이 늘고 있다. 2026년 6월 현지 취재에서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이용자들이 LP와 오래된 전자기기, 낡은 공간이 주는 촉감과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경험을 찾는 모습이 소개됐다.
음악만 듣는 것이 목적이라면 스트리밍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럼에도 음반을 고르고 표지를 보고 매장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까지 음악 경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AI가 글을 써주는 시대에 손으로 다시 쓰는 이유
종이에 글을 쓰는 문화도 다시 눈에 띈다.
일기와 필사, 다이어리 꾸미기, 스크랩북처럼 손을 오래 써야 하는 활동이다.
2026년 취미 관련 검색 흐름에서는 저널링과 스크랩북, 사진앨범 만들기, 자수와 수선처럼 결과물이 실제 물건으로 남는 활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공개된 Pinterest 취미 트렌드에서도 직접 만들고 고치고 기록하는 활동이 두드러졌다.
특히 AI가 문장을 다듬고 요약하며 글까지 만들어주는 시대가 되면서 손글씨는 효율성과는 전혀 다른 가치를 갖게 됐다.
직접 한 문장을 옮겨 쓰면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바로 그 시간이 중요한 사람도 있다.
짧은 영상처럼 몇 초 만에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지 않고 한 문장에 오래 머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더 빨리 끝내기 위한 기술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일부 취미는 오히려 일을 천천히 하는 방법으로 선택되고 있다.
‘알고리즘이 고르지 않은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들
아날로그 취미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화면을 오래 보는 생활에 대한 피로도 있다.
스마트폰을 열면 뉴스와 영상, 음악, 쇼핑 상품까지 알고리즘이 끊임없이 다음 선택지를 내놓는다.
사용자는 무언가를 찾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당 부분은 플랫폼이 추천한 콘텐츠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방식이다.
2026년에는 이런 생활 방식에 대한 반작용을 가리켜 ‘스크롤링 백래시’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스마트폰과 끊임없는 온라인 접속에 피로를 느끼는 사람들이 화면 밖 활동과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다시 찾는다는 의미다.
북미와 유럽의 13~39세를 조사한 2026년 젊은층 트렌드 조사에서도 오프라인 경험과 빈티지 기술, 인쇄매체, 손으로 하는 취미에 대한 관심이 별도 흐름으로 다뤄졌다.
한국의 2026년 소비 트렌드 분석에서도 짧은 영상 중심의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피로가 커지면서 손글씨나 신체 활동처럼 직접 감각을 쓰는 취미가 안정감과 성취감을 주는 활동으로 주목받는다고 분석했다.
뜨개질과 자수가 다시 젊어진 이유
뜨개질이나 자수처럼 과거에는 중장년층의 취미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활동도 달라지고 있다.
2026년 미국에서는 바느질과 자수, 철공, 조류 관찰, 보드게임 등 이른바 ‘할머니 취미’로 불리던 활동을 젊은층이 새롭게 즐기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취미에는 공통점이 있다.
완성까지 시간이 걸린다.
실수를 하면 손으로 다시 고쳐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결과물이 남는다.
하루 종일 이메일과 문서, 메시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결과물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작은 머플러나 자수 한 조각을 완성하는 경험은 전혀 다른 종류의 성취감을 줄 수 있다.
완성품 자체보다 “내가 직접 만들었다”는 과정이 소비되는 것이다.
혼자 하는 취미 같지만 사람을 만나게도 한다
아날로그 취미는 개인적인 활동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을 오프라인으로 모으는 역할도 한다.
필름카메라는 사진 산책과 현상 모임을 만들고, 뜨개질은 공방과 동호회로 이어진다. LP를 좋아하는 사람은 음반점이나 레코드페어를 찾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독립서점과 북페어를 방문한다.
2026년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아날로그 사진을 주제로 한 행사가 열려 전시와 강연, 필름사진 촬영 프로그램 등이 진행되기도 했다. 필름사진이 개인의 취미를 넘어 사람을 직접 만나게 하는 문화적 공간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례다.
온라인에서도 사람은 연결된다.
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같은 물건을 보고 대화하는 경험은 다르다.
서울의 오래된 음반가게와 빈티지 공간을 찾는 젊은층에게도 물건을 사는 행위만큼 그 장소에 가는 경험 자체가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날로그 유행도 결국 스마트폰에서 발견한다
흥미로운 점은 아날로그 취미가 디지털 세계와 완전히 단절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필름카메라와 뜨개질, 다이어리 꾸미기를 발견하는 곳도 상당 부분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유튜브다.
아날로그 가방 안에 종이책과 노트, 카메라를 넣어 다니는 모습이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하고, 완성한 뜨개 작품과 스크랩북을 다시 사진으로 찍어 온라인에 올린다.
2026년 초 일부 국가에서는 ‘아날로그’를 다룬 틱톡 콘텐츠가 빠르게 늘었고 관련 검색도 증가했다.
따라서 이를 ‘디지털을 버리고 과거로 돌아가는 운동’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디지털을 사용하는 시간과 사용하지 않는 시간을 스스로 구분하려는 움직임에 가깝다.
불편함 자체가 새로운 선택지가 됐다
아날로그 취미가 모두 오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유행이 커지면서 오래된 카메라와 LP 가격이 오르고,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새로운 상품이 만들어지는 현상도 나타난다. 디지털 소비에 지친 사람이 결국 또 다른 소비시장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런 흐름을 단순한 복고 유행으로만 보기도 어렵다.
지금 아날로그를 찾는 젊은 세대 상당수는 LP가 일상이었던 시대도, 필름카메라만 있던 시대도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아날로그는 그리운 과거라기보다 처음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일 수 있다.
사진을 찍고 며칠 뒤 결과를 확인하는 기다림, 한 면이 끝날 때까지 LP를 듣는 시간, 손으로 한 줄씩 써 내려가는 기록은 디지털 기술이 제거해온 과정들이다.
AI가 무엇이든 더 빨리 만들고 알고리즘이 다음 선택까지 대신해주는 시대에, 오히려 자신의 손을 쓰고 시간을 들여야만 완성되는 일이 하나의 문화적 선택지가 되고 있다.
편리함이 부족해서 아날로그를 찾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너무 편리해진 시대라서 불편함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