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IT 허브의 체급 변화…AI·R&D 품은 GCC, 984억 달러 시장으로 성장

인도의 IT 산업 지형이 다시 바뀌고 있다. 한때 글로벌 기업의 비용 절감형 아웃소싱 거점으로 인식됐던 인도는 이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개발, 금융기술,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핵심 기술 기지로 올라서고 있다. 그 중심에는 글로벌 기업 역량센터, GCC가 있다.
최근 Nasscom과 Zinnov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내 GCC 수는 2026회계연도 기준 2,117개로 늘었고, 전체 매출은 984억 달러에 근접했다. 고용 규모도 230만 명을 넘어섰다. 1년 사이 100개가 넘는 신규 센터가 추가됐다는 점은 글로벌 기업들이 인도를 단순 운영 지원 거점이 아니라 장기적인 기술 전략 거점으로 보고 있다는 신호다.
GCC는 다국적 기업이 특정 국가에 세우는 내부 기술·운영 조직이다. 과거 인도 GCC의 주된 역할은 고객 지원, 회계 처리, IT 유지보수, 백오피스 업무에 가까웠다. 그러나 최근에는 성격이 달라졌다. 글로벌 금융사, 유통기업, 제조사, 반도체 기업들이 인도에서 AI 모델 개발, 클라우드 전환, 데이터 분석, 사이버보안, 제품 엔지니어링, 플랫폼 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인도 조직이 본사의 지시를 처리하는 실행 부서에서, 글로벌 제품과 서비스를 함께 설계하는 기술 파트너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인재 규모다. 인도는 대규모 공학 인력과 영어 기반 업무 환경을 갖추고 있어 글로벌 기업이 기술 조직을 빠르게 확장하기 쉽다. 둘째는 비용 구조다. 미국과 유럽에서 개발자, 데이터 과학자, AI 엔지니어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기업들은 더 효율적인 기술 거점을 찾고 있다. 셋째는 AI 전환 압박이다. 생성형 AI 도입이 기업 전반의 과제가 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단기간에 AI·데이터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지역을 필요로 한다.
특히 AI는 인도 GCC의 역할을 크게 바꾸고 있다. 기업들은 단순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도 조직을 통해 내부 데이터 플랫폼을 정비하고, 고객 행동을 분석하며, 신제품 개발에 필요한 알고리즘을 실험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리스크 관리와 사기 탐지, 유통업에서는 수요 예측과 공급망 최적화, 제조업에서는 품질 관리와 디지털 트윈 개발 등이 GCC의 주요 업무로 떠오르고 있다.
인도 입장에서는 GCC 성장이 IT 서비스 산업의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있다. 전통적인 IT 아웃소싱 모델은 외부 고객의 프로젝트를 수주해 수행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GCC는 글로벌 기업이 인도 안에 직접 고급 기술 조직을 구축하는 모델이다. 이는 안정적인 고용과 장기 투자를 만들 수 있고, 현지 인력에게 글로벌 제품 개발 경험을 제공한다. 인도 기술 인재가 단순 개발 인력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의 핵심 의사결정 과정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다만 성장의 그림자도 있다. GCC가 빠르게 늘어나면 고급 기술 인력 확보 경쟁이 심해지고, 벵갈루루, 하이데라바드, 푸네, 첸나이 같은 주요 IT 도시의 임금과 사무공간 비용이 상승할 수 있다. 중소 IT 서비스 기업은 대형 글로벌 기업과 인재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또한 GCC가 글로벌 경기 변화에 민감하다는 점도 리스크다. 본사 차원의 비용 절감이나 구조조정이 발생하면 인도 내 조직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 흐름은 인도 IT 산업의 체급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도는 더 이상 “값싼 개발 인력의 나라”라는 낡은 이미지에 머물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들이 AI와 데이터, 클라우드, 제품 연구개발 기능을 인도에 배치하면서 인도는 세계 IT 공급망의 후방 지원지가 아니라 기술 전략의 전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984억 달러에 이른 GCC 시장 규모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글로벌 기업이 미래 기술을 어디에서 만들고, 어떤 인력과 함께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인도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뜻이다. AI 경쟁이 심화될수록 인도 GCC의 역할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인도 IT 산업의 다음 성장은 외주 개발의 확대가 아니라, 글로벌 기업 내부의 기술 두뇌를 얼마나 많이 품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