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공연 보려면 서울 가야 하나…달라지는 ‘지역 문화격차’

뮤지컬 한 편을 보기 위해 서울로 가고, 유명 전시를 보려면 수도권 일정을 먼저 확인하는 일은 지역 주민에게 낯설지 않다.
공연장과 미술관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지방 도시에도 문예회관과 박물관, 공연장이 꾸준히 늘어났다. 문제는 그 안에서 어떤 공연과 전시를 얼마나 자주 만날 수 있느냐다.
문화생활의 격차는 시설의 개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집 근처에 공연장이 있어도 보고 싶은 작품이 거의 오지 않는다면 실제 문화 접근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대형 공연과 전시가 지속적으로 열리는 지역에서는 관람객이 선택할 수 있는 폭 자체가 넓다.
정부가 올해 지역 문화정책의 방향을 ‘시설 중심’에서 ‘콘텐츠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현실과 맞닿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6년 공연·전시 지역 순회 확대에 1052억원을 편성했다. 전년보다 484억원 늘어난 규모다. 국립예술단체와 뮤지컬 등 대형 우수작의 지역 순회도 기존 27건에서 60건으로 확대하고, 국립박물관의 화제성 높은 전시를 지역으로 보내는 사업도 늘릴 계획이다.
정책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문화시설을 더 지으면 지역 문화격차가 줄어들까. 아니면 이제는 좋은 콘텐츠를 실제로 지역까지 움직이게 해야 할까.
공연장은 있는데 볼 공연이 없는 문제
그동안 지역 문화정책에서는 공연장과 도서관, 박물관 같은 문화기반시설을 늘리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다뤄졌다.
생활권 안에 문화시설이 존재해야 주민이 공연과 전시를 접할 기회도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설이 갖춰졌다고 문화격차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연과 전시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무대와 객석이 있어도 수준 높은 작품을 유치할 예산과 기획 인력이 부족하면 공연장은 특정 기간에만 운영되거나 지역 행사 중심으로 사용될 수 있다.
특히 제작비가 많이 드는 대형 뮤지컬이나 유명 예술단체 공연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장기간 공연하는 것이 흥행 측면에서 유리하다.
수도권에는 잠재 관객이 많고 교통 접근성이 높으며 공연 제작사와 홍보회사, 전문인력이 집중돼 있다. 하나의 작품을 여러 지역으로 이동시키면 무대 설치와 장비 운송, 배우와 스태프의 이동·숙박 비용도 추가된다.
지역 공연 횟수가 적어지는 데는 단순히 문화계가 서울을 선호해서가 아니라 이런 산업 구조도 작용한다.
결국 지역 문화격차는 공연장 건설만의 문제가 아니라 콘텐츠 유통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숫자로도 남아 있는 지역의 차이
문화예술을 직접 관람하는 경험에서도 지역 차이는 여전히 나타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활용한 2024년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에 따르면 전국 문화예술 관람률은 63.0%였다. 반면 읍·면 지역은 52.1%로 전국 평균보다 약 11%포인트 낮았다.
소득과 연령에 따른 차이도 컸다. 월평균 가구소득 100만원 미만 계층의 관람률은 24.0%, 70대 이상은 23.1%에 머물렀다. 지역과 소득, 세대가 서로 겹치면서 문화 접근성의 격차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문화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 역시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문체부가 문화예술 분야 혁신전략을 마련하며 활용한 자료를 보면 전국 문화기반시설 가운데 수도권 비중은 36.6%였지만, 전시 활동의 56.9%가 수도권에서 이뤄졌다.
시설 비율보다 실제 전시 활동의 수도권 집중도가 훨씬 높았던 셈이다.
이 차이는 지역 문화격차의 본질을 보여준다.
문화시설의 숫자는 일정 부분 늘었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보고 싶어 하는 공연과 전시가 어디에서 열리는지는 여전히 크게 다를 수 있다.
정부가 ‘시설보다 콘텐츠’를 꺼낸 이유
2026년 문화정책에서 눈에 띄는 변화도 바로 이 부분이다.
문체부는 지역 문화격차 정책의 방향을 시설 증설보다 콘텐츠 공급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국립예술단체와 뮤지컬 등 대형 공연의 지역 순회를 늘리고, 유명 박물관 전시도 수도권 밖으로 확대한다. 문예회관뿐 아니라 유휴 전시공간과 공공·민간 박물관 등을 활용해 중소 규모 공연과 전시가 지역 곳곳을 돌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예산 역시 확대됐다.
2026년 공연·전시 지역 순회 관련 예산은 1052억원으로 전년도보다 484억원 증가했다. 문화향유 지원 정책 가운데 비교적 큰 폭의 증액이다.
지역에서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단순한 문화복지가 아니라 생활환경의 일부로 보기 시작한 셈이다.
청년 대상 문화지원에서도 지역 차이를 고려하는 방식이 등장했다.
올해 청년문화예술패스는 대상 연령을 19~20세로 확대하고, 지원액도 수도권 거주자는 15만원, 비수도권 거주자는 20만원으로 차등 적용하는 방향이 추진되고 있다. 지역에서는 공연이나 전시를 보기 위해 이동비용까지 더 많이 들어갈 수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한 번 찾아오는 유명 공연만으로 충분할까
대형 공연과 전시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은 분명 문화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유명 작품 몇 편이 일회성으로 방문한다고 지역 문화생태계가 바로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문화생활은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어릴 때부터 공연과 전시를 자주 접한 사람은 이후에도 문화 소비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보고 싶은 작품이 몇 년에 한 번씩만 찾아온다면 지역의 고정 관객층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공연을 지속적으로 유치하려면 지역에도 기획과 홍보, 무대 운영을 담당할 전문인력이 있어야 한다.
지역 관객에 대한 데이터도 필요하다. 어떤 연령층이 어떤 장르를 찾는지 파악해야 작품을 유치하고 공연 일정을 설계할 수 있다.
이 과정이 없다면 중앙에서 선정한 작품을 지역에 몇 차례 내려보내는 방식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지역 문화격차 해소의 다음 단계는 ‘서울의 좋은 콘텐츠를 지방으로 보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지역에서 작품을 만들고, 지역 예술인이 활동하며, 지역 관객이 꾸준히 소비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 예술단체를 키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올해 지역대표 예술단체 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이런 배경과 연결된다.
문체부는 2026년 지역대표 예술단체 41개를 선정해 총 145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연극과 전통예술, 클래식 음악, 무용 분야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공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역 문화정책이 외부에서 콘텐츠를 가져오는 것과 지역 내부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두 방향으로 움직이는 셈이다.
둘 가운데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유명 작품의 지역 순회는 주민이 수준 높은 콘텐츠를 가까이에서 접할 기회를 빠르게 늘릴 수 있다.
반면 지역 예술단체 육성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지역의 창작 역량과 일자리, 관객층을 함께 만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결국 문화격차를 줄이려면 ‘무엇을 볼 것인가’와 ‘누가 만들 것인가’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온라인으로 보면 지역격차가 사라질까
OTT와 온라인 공연, 디지털 전시가 빠르게 늘면서 문화의 지역격차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실제로 온라인은 거리를 크게 줄였다.
서울의 공연장에 직접 가지 않아도 공연 실황을 보고, 해외 미술관의 작품을 집에서 감상할 수 있다.
2025년 국민문화예술활동 조사에서도 매체를 이용한 문화예술 관람 경험은 72.0%로 나타났다. 직접 공연장이나 전시장에 가지 않고도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이미 일상화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온라인 경험과 현장 경험은 완전히 같지 않다.
공연장의 음향과 무대, 관객이 함께 만드는 분위기나 실제 작품의 크기와 질감을 온라인 화면에서 그대로 전달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디지털 문화의 확대가 지역 문화격차를 완전히 해결한다기보다는 새로운 접근 경로를 하나 더 제공한다고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현장에서 보고 싶은 사람에게 실제 선택권이 있어야 문화 접근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문화생활도 ‘사는 곳’에 따라 달라지는 정주 조건
지역 문화격차를 단순한 여가의 문제로만 보는 시각도 바뀔 필요가 있다.
사람이 어디에서 살 것인지 결정할 때는 일자리와 집값, 학교와 병원, 교통이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생활이 안정된 이후에는 주말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이와 어디에 갈 수 있는지, 가까운 곳에서 공연과 전시를 즐길 수 있는지도 삶의 만족도에 영향을 준다.
문체부가 과거 분석한 자료에서도 여가생활 만족도는 대도시 65.7%, 중소도시 58.6%, 읍·면 지역 54.2%로 지역 규모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지역소멸 문제를 일자리 하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직장이 있어도 생활환경이 부족하면 청년층과 가족이 장기간 머물기 어려울 수 있다.
문화는 병원이나 학교처럼 생존에 필수적인 기반시설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한 지역에서 계속 살아가고 싶게 만드는 ‘생활의 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공연장이 있느냐’에서 ‘보고 싶은 것이 오느냐’로
지역 문화정책은 이제 새로운 질문을 받고 있다.
공연장을 몇 곳 더 지었는지보다 그 공간에서 주민이 실제로 무엇을 볼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2026년 정부가 공연·전시 지역 순회 예산을 크게 늘리고 정책 방향을 시설 중심에서 콘텐츠 중심으로 전환한 것도 이런 변화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예산을 늘리는 것만으로 성공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몇 개 작품이 지역을 돌았는지보다 실제 관객이 늘었는지, 재관람이 이어졌는지, 지역 공연장의 가동률이 높아졌는지, 지역 예술인의 활동 기회가 확대됐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궁극적으로 지역 문화격차가 줄었다고 말하려면 지역 주민이 보고 싶은 공연을 찾을 때 가장 먼저 서울행 기차표부터 검색하는 상황이 달라져야 한다.
좋은 공연과 전시는 특별한 여행을 해야 만날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라,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도 일상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
지역 문화격차를 줄이는 기준도 결국 시설의 숫자가 아니라 주민이 실제로 누릴 수 있는 선택지의 숫자에서 찾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