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

“현금은 안 됩니다”…만원짜리 현금 들고도 물건을 못 사는 이유

카페 계산대에 만원짜리 지폐를 내밀었는데 직원이 “현금은 받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무인매장에서는 카드나 모바일결제만 가능하고, 키오스크에도 현금을 넣는 곳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지갑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꺼내는 일이 익숙해졌고, 카드 한 장만 있어도 거의 모든 소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금만 가진 사람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어린이나 고령층, 외국인처럼 카드 발급이나 모바일결제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현금 없는 매장’은 단순한 결제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소비 자체가 막히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까지도 ‘현금 사용 선택권’을 별도 정책 과제로 알리고 있는 이유다. 한국은행은 현금 사용 선택권을 소비자가 지급수단을 고를 때 현금을 배제당하지 않는 것으로 설명하며, 고령층과 어린이, 외국인 등 일부 계층이 현금 없는 환경에서 소비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금은 법정통화인데 왜 안 받아도 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지폐와 동전은 법정통화인데, 매장이 현금 결제를 거절해도 괜찮은 걸까.

한국은행법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발행한 은행권과 주화는 법화로서 모든 거래에 통용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통용’은 현금이 유효한 지급수단이라는 뜻이지, 모든 사업자가 거래를 시작하기 전부터 반드시 현금을 결제수단으로 받아야 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한국은행도 이 점을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법정화폐에 통용력이 있다고 해서 모든 상거래가 반드시 현금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니며, 거래 당사자가 사전에 결제 방식을 정하는 상황과 이미 채권·채무 관계가 생긴 뒤 대금을 지급하는 상황은 구분해야 한다는 취지다.

따라서 카페나 음식점이 주문 전에 ‘카드 결제만 가능’하다고 분명히 알리고 소비자가 이를 알고 주문했다면, 단순히 현금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위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소비자가 이미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한 뒤 결제 단계에서 갑자기 현금이 안 된다고 통보받는 상황은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거래 조건을 언제, 어떻게 알렸는지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현금을 받지 않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도 있다


사업자 입장에서 현금 없는 매장은 편리한 점이 많다.

현금함을 관리할 필요가 없고, 거스름돈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하루 영업이 끝난 뒤 현금을 세거나 은행에 입금하는 과정도 줄어든다.

도난 위험이 낮아지고, 직원이 현금을 잘못 주고받거나 계산이 맞지 않는 문제도 줄일 수 있다.

대중교통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현금 없는 운영이 확대됐다.

한국은행이 소개한 서울 시내버스 사례를 보면 현금 승객 비중이 매우 낮아진 데다 현금함 유지비, 안전사고 위험, 거스름돈 반환 과정에서 생기는 지연 등이 현금 없는 버스 확대의 배경으로 꼽혔다. 서울에서는 2023년 당시 현금 없는 버스가 102개 노선, 약 1,800대까지 늘었고 대전도 전체 노선으로 확대 운영했다.

가게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금을 거의 쓰지 않는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사업자가 현금 결제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커진다.

이런 흐름만 보면 현금 없는 매장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처럼 보인다.


문제는 ‘현금만 쓸 수 있는 사람’이 남아 있다는 것


모든 사람이 카드와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고령층 가운데 일부는 모바일결제 사용이 익숙하지 않고, 어린이는 본인 명의 신용카드를 갖기 어렵다. 국내에 단기간 체류하는 외국인도 국내 결제망과 연결된 카드나 모바일결제 수단이 없을 수 있다.

신용카드 발급 자체가 어려운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 결제수단 선택지가 카드와 모바일결제로만 좁아지면 단순한 불편을 넘어 생활에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한국은행이 ‘현금 사용 선택권 보장’을 강조하는 핵심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금 사용 감소가 빠르게 진행될수록 ATM과 은행 지점 등 현금에 접근할 수 있는 창구가 줄고, 다시 현금을 이용하기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2026년 6월 실시한 ‘화폐사랑 콘텐츠 공모전’에서도 주제 가운데 하나로 ‘현금 사용 선택권 보장’을 선정했다. ‘현금 접근성 개선’도 별도 주제로 포함됐다. 현금 이용자의 문제가 이미 끝난 논의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뜻이다.


카드만 받는 매장은 정전되면 어떻게 될까


현금 없는 매장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결제망 자체에 대한 의존이다.

카드와 모바일결제는 대부분 통신망과 전산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통신장애가 발생하거나 카드사 전산망에 문제가 생기면 평소에는 몇 초면 끝날 결제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되거나 모바일결제 앱에 장애가 생겨도 마찬가지다.

현금은 이런 상황에서 별도의 통신망 없이 결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평소 현금 이용률이 낮더라도 재난이나 대규모 통신 장애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일정 수준의 현금 결제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특히 식료품점이나 약국, 교통처럼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분야는 카페나 일부 무인매장과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어떤 매장이든 반드시 현금을 받아야 한다는 문제와 사회 기반시설에서 최소한의 현금 결제 가능성을 남겨야 한다는 문제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현금 없는 사회가 꼭 ‘현금이 사라진 사회’는 아니다


한국의 지급결제 환경은 이미 빠르게 바뀌었다.

편의점에서 몇천 원을 결제할 때도 카드를 쓰고, 길거리에서 물건을 살 때도 계좌이체나 간편결제를 이용한다.

온라인 주문이 일상화되면서 현금을 직접 건넬 상황 자체도 줄었다.

하지만 현금 사용량이 줄어드는 것과 현금 사용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현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둘의 차이가 크지 않아 보이지만, 현금을 주된 결제수단으로 쓰는 사람에게는 매장 문턱이 달라진다.

그래서 일부 국가와 도시에서는 특정 업종이나 오프라인 매장에 현금 수납 의무를 두는 방안도 논의돼 왔다. 탈현금화가 편리함과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일부 소비자를 시장에서 밀어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사용하는 표현도 ‘현금 사용 의무’가 아니라 ‘현금 사용 선택권’이다.

카드와 모바일결제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필요할 때 현금을 사용할 수 있는 길까지 함께 남겨두자는 취지에 가깝다.


무인매장이 늘수록 결제 방식은 더 중요한 정보가 된다


현금 없는 매장이 늘면서 사업자에게도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현금 결제가 불가능하다면 소비자가 주문하기 전에 이를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는 점이다.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모두 끝낸 뒤 결제 단계에 가서야 현금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소비자는 다시 주문을 취소해야 한다.

반대로 매장 출입구나 주문 화면 첫 단계에서 ‘카드·모바일결제 전용’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준다면 소비자는 다른 매장을 선택하거나 결제수단을 준비할 수 있다.

결제 방식도 가격이나 영업시간처럼 매장을 이용하기 전에 알아야 할 정보가 된 셈이다.

현금 없는 매장의 문제는 결국 ‘현금을 많이 쓰느냐 적게 쓰느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누군가에게 카드는 가장 편한 결제수단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현금이 가장 확실한 결제수단일 수 있다.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이 있어도 물건을 살 수 없는 매장이 등장하는 시대에, 결제 기술의 발전만큼 중요해진 것이 소비자가 어떤 수단으로 돈을 낼지 선택할 수 있는 범위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