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Meta·OpenAI가 대학 밖 학교를 만든다…실리콘밸리의 새 인재 실험
a16z, 4200만달러 규모 ‘Horowitz Andreessen Academy’ 출범
2027년 첫 기수 50명…학위·학점 없이 프로젝트와 기업 현장 중심
Google·Meta·Nvidia·OpenAI·Palantir 등 10개 기술기업 창립 파트너 참여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대학과 취업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교육기관이 등장한다. 세계적인 벤처캐피털 Andreessen Horowitz(a16z)가 Google과 Meta, OpenAI, Nvidia, Palantir 등 주요 기술기업들과 함께 고등학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별도의 교육기관을 만든 것이다.
9월 22일 공개된 ‘Horowitz Andreessen Academy’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운영되는 전일제 대면 교육기관으로, 2027년 9월 약 50명의 첫 기수를 받을 예정이다. 첫 과정은 1년 동안 무료로 운영되며 현재 정규 대학으로 인가받지 않은 상태여서 학위나 대학 학점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학생이 직접 만든 프로젝트와 기업 현장 경험, 기술업계 네트워크를 교육 성과로 삼는다.
a16z는 이 학교를 만들기 위해 3500만달러를 투자하고,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전체 4200만달러의 자금을 조성했다. 학교 운영은 a16z와 별도의 영리 교육회사 형태로 이뤄지며 Udemy 공동창업자인 Gagan Biyani가 최고경영자를 맡는다.
실리콘밸리가 대학을 비판한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부 창업자가 대학 중퇴를 권하는 수준을 넘어 벤처캐피털과 빅테크가 직접 교육기관을 만들고, 학생 선발부터 교육과정, 기업 현장 경험까지 연결한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르다.
10개 기술기업이 창립 파트너로 참여
Horowitz Andreessen Academy의 창립 파트너에는 Anduril, Anthropic, Coinbase, Google, Meta, Nvidia, OpenAI, Palantir, Replit, Stripe 등 10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 기업들은 단순히 후원사로 이름을 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컴퓨팅 자원과 하드웨어를 제공하고, 일부 교육과정을 함께 만들며 기업 현장에서 학생들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Co-op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학교 측은 이 밖에도 40개 이상의 기업이 채용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배우는 장소도 교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에 마련되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동시에 실리콘밸리 기술기업에서 실제 팀과 함께 일하는 시간이 포함된다. 학교 측은 이를 기존 대학과 부트캠프의 중간 형태가 아니라, 직접 프로젝트를 만들고 기업에서 일하는 경험을 교육의 중심에 두는 별도의 모델로 설명한다.
첫 기수 학생에게는 5만달러 이상의 AI 컴퓨팅 크레딧과 5000달러 규모의 여행·연구비도 제공될 예정이다. 단순히 AI 사용법을 배우는 수준을 넘어 실제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만들어보는 데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성적보다 ‘무엇을 만들었는가’를 본다
학생 선발 방식도 일반 대학과 차이가 있다.
지원자는 고등학교 졸업장이나 이에 준하는 학력을 2027년 8월까지 갖춰야 하며, 고교 졸업 예정자뿐 아니라 대학 재학 중인 학생도 지원할 수 있다. 다만 고등학교 졸업 이후 정규 대학에 2년을 초과해 재학한 학생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학교 측이 가장 강조하는 기준은 ‘proof of work’, 즉 실제로 무엇을 만들어봤는가다.
지원자는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나 제품, 연구, 커뮤니티, 콘텐츠, 행사 등 결과물을 보여주는 포트폴리오를 제출해야 한다. 학교 성적표와 시험점수도 받지만 선발 과정에서는 학생이 교실 밖에서 무엇을 시도했고 결과를 만들어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고 설명한다.
지원 과정에서 AI 사용도 허용된다. 학교 측은 아이디어를 시험하고 작업 속도를 높이는 데 AI를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자기소개와 경험을 AI에게 대신 작성하게 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AI를 사용했는지 여부보다 AI를 이용해 실제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겠다는 취지다.
이는 AI 시대에 인재를 평가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실험이기도 하다.
기존 대학 입시는 성적과 시험점수, 추천서 등 과거의 학업성과를 중심으로 평가한다. Horowitz Andreessen Academy는 여기에 결과물을 만드는 능력과 프로젝트 실행 경험을 더 강하게 반영한다.
숙제와 시험 대신 ‘Pursuits·Courses·Co-ops’
교육과정은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Pursuits’로 학생이 스스로 선택한 프로젝트다. 창업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거나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고, 관심 있는 주제를 깊이 파고드는 작업이 여기에 포함된다.
두 번째는 ‘Courses’다. 전통적인 대학처럼 한 학기 동안 같은 과목을 듣는 방식보다 짧고 집중적인 수업을 운영한다. 학교 측은 창업자가 직접 영업하는 방법과 B2B 시장진입 전략, 스토리텔링, 조직문화, 회사 설립, 지분구조, 금융, 투자유치 등을 교육과정에 포함한다고 밝혔다.
세 번째는 ‘Co-ops’로 기술기업에서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이다.
학생들은 제휴기업의 팀 안에서 제품과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경력을 쌓을 수 있다. 다만 학교가 모든 학생의 Co-op 자리나 취업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참여 기업의 일반적인 면접 절차도 통과해야 한다. 유급 여부 역시 기업마다 달라질 수 있다.
학교 측은 이 세 가지 요소를 통해 학생이 졸업장 대신 실제 결과물이 담긴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나가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학을 없애자’는 학교는 아니다
이번 발표가 공개되면서 미국에서는 이를 ‘대학 대안’으로 보는 시각이 빠르게 확산했다.
실제로 Academy는 고등학교 졸업 후 4년제 대학에 진학할 학생을 주된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운영진은 일반 대학 전체를 대체하려는 모델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학교 공식 FAQ는 대부분 학생에게 대학이 여전히 좋은 선택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미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고 기술기업과 창업환경 안에서 더 빠르게 경험을 쌓고 싶은 일부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CEO Gagan Biyani도 이번 프로그램을 기존 대학 자체를 부정하는 시도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창업을 원하는 18세가 곧바로 회사를 차리거나, 반대로 4년 동안 대학에만 머무르는 두 가지 선택 사이에 새로운 경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교육 방식은 기존 대학과 상당히 다르다.
강의실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시간을 줄이고 프로젝트와 실무를 늘리며, 학위보다 포트폴리오와 네트워크를 교육 결과로 내세운다. 기술기업이 교육과정에 직접 참여한다는 점도 전통적인 대학과 구분된다.
왜 지금 이런 학교가 등장했나
배경에는 AI가 기술산업의 입문 방식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는 판단이 있다.
과거에는 소프트웨어를 만들려면 상당한 수준의 프로그래밍 지식과 개발인력이 필요했다. 현재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코드를 작성하거나 데이터를 분석하고, 제품의 초기 버전을 빠르게 만드는 일이 쉬워지고 있다.
a16z는 Academy 설립 발표에서 인터넷이 ‘무엇이든 알 수 있는 시대’를 만들었다면 AI는 ‘무엇이든 만들어볼 수 있는 시대’를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식을 배우는 것보다 지식을 이용해 실제 결과물을 만드는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주장이다.
이런 관점은 학생 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학생에게 AI를 금지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AI와 컴퓨팅 자원을 이용해 새로운 제품이나 연구물을 만들게 한다. 1인당 5만달러 이상의 컴퓨팅 크레딧을 제공하는 것도 이런 방향과 연결된다.
AI가 대학 교육의 도구로 들어가는 것을 넘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까지 바꾸는 실험인 셈이다.
빅테크가 직접 인재 공급망에 들어왔다
이번 Academy에서 더 눈에 띄는 부분은 학교 이름보다 참여기업이다.
Google과 Meta, Nvidia, OpenAI, Anthropic, Palantir, Stripe 등은 현재 AI와 클라우드, 반도체, 방산기술, 금융기술 분야를 대표하는 기업들이다.
이 기업들이 교육 후원에 그치지 않고 커리큘럼 제작과 컴퓨팅 제공, Co-op 과정까지 참여한다는 것은 실리콘밸리가 인재를 채용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의미다.
기존에는 대학이 학생을 교육하면 기업이 졸업생을 채용했다.
Academy에서는 기업이 교육 과정부터 참여하고 학생들이 실제 업무환경을 경험한 뒤 채용시장으로 진입한다. 교육과 채용 사이의 거리가 훨씬 짧아지는 구조다.
특히 AI 분야에서는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대학 교육과 현장 수요의 시간차가 커질 수 있다. 새로운 모델과 개발도구가 몇 달 단위로 바뀌는 상황에서 4년짜리 정규 교육과정을 수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기업이 교육과정에 직접 들어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화려한 참여기업 명단이 곧 취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Academy는 학생이 Google이나 OpenAI, Meta 등에 취업할 수 있다고 보장하지 않으며, Co-op 자리 역시 자동으로 제공하지 않는다. 참여기업에서 근무하려면 각 회사의 일반적인 면접과 선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학교 역시 현재 정식 대학으로 인가받지 않았다.
첫 기수 학생은 대학 학위나 이전 가능한 학점을 받을 수 없고, 연방정부 학자금 지원이나 대출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없다. 대신 자신이 만든 프로젝트와 업무 경험을 보여주는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과정을 마치게 된다.
학생이 감수해야 할 비용도 있다.
첫 기수의 수업료는 무료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생활하는 주거비와 식비 등은 기본적으로 학생이 부담해야 한다. 학교가 안내한 숙소 비용은 공동 거주형이 월 1600~1800달러, 1인실은 월 2300~2600달러 수준이다. 일부 학생에게는 필요에 따라 생활비 지원이 제공될 수 있다.
따라서 무료 프로그램이라는 표현만으로 실제 참여비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28년부터는 ‘엘리트 대학 수준’ 수업료 검토
무료 과정은 첫 기수에 한정된다.
Academy는 2028년부터 2년제 정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필요한 규제 승인을 받을 계획이다. 승인이 이뤄질 경우 수업료는 미국 명문 사립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할 방침이다.
Fortune은 운영진 설명을 토대로 향후 연간 수업료가 약 6만~9만달러 수준이 될 가능성을 전했다. 현재 미국 주요 사립대학의 등록금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부분은 Academy가 단순한 비영리 인재육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새로운 교육사업 모델을 시험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운영주체 역시 비영리 재단이 아닌 영리회사다. a16z는 학교 설립을 주도하고 투자했지만 직접 운영하지 않으며, Academy 자체가 독립적인 교육기업으로 운영된다.
실험이 성공한다면 기술기업과 벤처캐피털이 교육산업 자체를 새로운 시장으로 바라볼 가능성도 있다.
대학이 갖고 있는 것과 Academy가 없는 것
그렇다고 새로운 교육모델이 기존 대학보다 우월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정규 대학은 기술교육뿐 아니라 학문적 기초와 사회과학, 인문학, 연구방법론, 다양한 구성원과의 공동생활 등 여러 기능을 수행한다. 학생이 4년 동안 관심분야를 바꾸고 새로운 학문을 탐색할 수 있는 시간도 제공한다.
Horowitz Andreessen Academy는 이와 다른 방향을 택했다.
기술산업과 창업에 관심이 분명한 학생을 선발하고, 좁은 기간 안에 프로젝트와 기업 경험을 집중적으로 제공한다.
따라서 두 모델은 같은 교육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제공한다기보다 목표 자체가 상당히 다르다.
Academy 역시 이를 인정하고 있다. 학교 측은 대다수 학생에게 대학이 좋은 선택이며 자신들의 모델은 이미 만들고 실행하는 경험을 가진 특정 학생에게 더 적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리콘밸리는 다시 ‘학위’보다 ‘실력’을 시험한다
실리콘밸리에는 이전부터 대학 밖에서 인재를 발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Peter Thiel이 만든 Thiel Fellowship은 젊은 인재에게 대학을 떠나 창업하거나 연구하도록 지원했고, Y Combinator는 스타트업 창업자를 단기간에 집중 육성하는 방식으로 큰 영향력을 만들었다.
Horowitz Andreessen Academy는 두 모델 사이에 있다.
창업 아이디어 하나에만 집중하는 액셀러레이터도 아니고, 대학처럼 학위를 제공하는 교육기관도 아니다. 학생에게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하게 하고 기업 현장에서 일하게 하면서 기술산업 진입 경로를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TechCrunch는 이를 Y Combinator와 Thiel Fellowship, 직업교육 모델이 결합된 형태로 평가했다.
AI가 이 모델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만든 것도 중요한 변화다.
과거에는 학생 혼자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만드는 데 많은 기술과 자본이 필요했지만, AI 도구를 이용하면 비교적 적은 인력으로도 제품과 서비스의 초기 형태를 구현할 수 있다.
학습과 생산의 경계가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의 경쟁 상대가 대학만은 아닌 시대
Horowitz Andreessen Academy는 아직 학생 한 명도 배출하지 않았다.
첫 수업은 2027년 9월 시작되며, 이 프로그램을 마친 학생들이 실제로 창업이나 취업에서 어떤 성과를 보일지도 아직 알 수 없다. 2028년 계획된 2년제 프로그램도 규제 승인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이 학교의 성공 여부를 지금 판단하기는 이르다.
다만 Google과 Meta, Nvidia, OpenAI, Anthropic, Palantir 등 현재 AI 산업의 핵심기업들이 창립 단계부터 참여했다는 사실은 가볍게 보기 어렵다.
기업들은 더 이상 대학에서 인재가 배출되기만 기다리지 않고 직접 교육과정과 실무경험을 만드는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a16z가 3500만달러를 넣고 전체 4200만달러 규모의 교육회사를 만든 것도 같은 흐름에 있다.
AI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학생이 숙제를 ChatGPT로 하는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어떤 학생을 뽑아야 하는지, 학위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기업은 언제부터 인재육성에 참여해야 하는지까지 질문이 넓어지고 있다.
202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는 50명 규모의 작은 학교는 그 변화의 초기 실험 가운데 하나다.
이 실험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한 가지 변화는 이미 나타났다.
AI 시대에 대학이 경쟁해야 할 상대는 더 이상 다른 대학만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