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테크

AI 도입했더니 채용은 줄고 업무는 늘었다…직장인들이 체감한 ‘자동화의 역설’

AI 도입했더니 채용은 줄고 업무는 늘었다…직장인들이 체감한 ‘자동화의 역설’[C]더푸른미래

직장인의 절반 이상이 회사에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된 뒤 신규 채용이 줄었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AI가 업무를 덜어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일부 노동자들은 채용 축소와 구조조정 불안, 오히려 늘어난 업무량을 동시에 체감하고 있었다. AI 전환이 생산성 향상이라는 기업의 언어로만 진행될 경우, 그 비용은 노동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월 2일부터 8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업무용 챗봇이나 생성형 AI 등 AI 기술을 공식적으로 도입했거나 도입 중이라고 답한 직장인은 전체의 47.1%, 471명이었다. 이들에게 AI 도입 이후 채용이 줄었는지 묻자 52.4%가 “그렇다”고 답했다.

AI 도입이 구조조정 우려로도 이어지고 있었다. AI 기술이 도입됐다고 답한 471명 가운데 23.8%는 회사가 인력 감축이나 구조조정을 진행했거나 계획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응답은 300인 이상 기업, 월 소득 150만 원 미만, 비정규직 집단에서 특히 높게 나타났다. AI 전환의 충격이 고용 안정성이 약한 노동자에게 먼저 향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AI가 도입됐다고 해서 업무량이 줄었다는 체감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AI 도입 사업장 노동자 중 54.1%는 업무량에 “영향이 없다”고 답했고, 26.7%는 오히려 업무량이 늘었다고 응답했다. 기업은 AI를 통해 효율을 높인다고 설명하지만, 현장에서는 줄어든 인력을 보충하지 않은 채 남은 직원에게 더 많은 업무를 맡기거나, AI로 처리한 결과물을 다시 검토·수정하는 일이 늘어나는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직장갑질119는 “AI 도입으로 콜센터, 고객상담 등 대규모 사업장이면서 저임금·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곳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또 AI로 확보된 여유가 노동시간 단축이나 업무 부담 완화가 아니라 추가 업무 수행으로 전환되면, AI가 노동 강도를 높이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우려는 국내 노동시장 연구에서도 반복돼 왔다. 산업연구원은 AI 대체 가능성이 있는 국내 일자리를 327만 개로 추정했고, 이 가운데 약 60%가 전문직이라고 분석했다. AI의 충격이 단순 반복 업무나 생산직에만 머무르지 않고, 금융·정보통신·전문서비스 등 지식노동 영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의미다.

KDI도 인공지능으로 인한 노동시장 변화 보고서에서 AI 기술 도입이 직무 자동화와 일자리 대체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기업과 지역별 고용·임금에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AI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도 있지만, 전환 과정에서 어떤 노동자가 대체되고 어떤 노동자가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얻는지는 정책 설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의 불안은 이미 누적돼 있다. 직장갑질119가 앞서 실시한 조사에서도 직장인 77.9%가 AI 확산으로 노동시장 불평등이 커질 것을 걱정했고, 48.2%는 AI가 자신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20대의 일자리 대체 우려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핵심은 ‘AI가 일자리를 없애느냐’라는 단순한 질문을 넘어선다. 더 중요한 문제는 AI 도입의 이익과 비용을 누가 나누느냐다. 기업이 AI로 생산성을 높였다면 그 성과가 노동시간 단축, 임금 개선, 직무 재교육, 안전한 전환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채용은 줄고, 남은 인력의 업무량은 그대로이거나 늘어난다면 AI는 혁신이 아니라 비용 절감의 다른 이름이 된다.

정부도 AI 시대 일자리 변화 대응 논의를 시작했다. 국가AI전략위원회는 올해 3월 ‘노동 현장 AI 전환과 일자리의 미래’를 주제로 간담회를 열고, 직무 재설계와 사회안전망, 전환 교육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과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 속도에 비하면 제도 논의는 아직 느리다. 기업의 AI 도입은 이미 채용과 업무 배치, 평가 방식에 영향을 주고 있는데, 노동자 참여와 보호 장치는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AI 기본소득 같은 사후 보전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기술 변화의 결과를 나중에 보상하는 방식보다, AI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일자리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 미리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구조조정 가능성이 큰 업종과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에게는 전환 교육, 소득 보전, 재배치 기준, 해고 제한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AI는 분명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이다. 그러나 효율의 이름으로 채용을 줄이고, 남은 노동자에게 더 많은 일을 떠넘기며, 취약한 노동자부터 밀어내는 방식이라면 사회적 반발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조사 결과는 AI 전환이 기술 문제가 아니라 노동 문제이며, 기업의 생산성 전략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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