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단백질 다시 만든다…tRNA가 여는 희귀질환 공통 치료
잘못된 유전자 정지 신호 우회해 단백질 생성 복원
낭포성 섬유증 전임상서 가능성 확인…전달 효율·안전성은 과제
유전자 이상으로 중단된 단백질 생성을 다시 이어주는 새로운 RNA 치료 기술이 등장했다. 질환마다 유전자를 직접 교정하는 대신 여러 유전질환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잘못된 정지 신호를 우회하는 방식이다. 연구가 임상 단계로 이어진다면 환자 수가 적어 치료제 개발에서 소외됐던 희귀질환의 접근법도 달라질 수 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와 대학보건네트워크, 토론토아동병원 공동연구진은 유전자의 조기 종결 코돈을 억제하도록 설계한 전달RNA 치료 기술을 개발했다고 27일 밝혔다. 관련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전달RNA를 화학적으로 변형하고 이를 지질나노입자에 담아 세포에 전달했다. 낭포성 섬유증 환자에게서 발견되는 특정 돌연변이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중단됐던 단백질 생성이 다시 진행됐다. 만들어진 단백질은 세포 내에서 실제 기능도 수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하나의 기술을 여러 희귀질환에 적용할 가능성이다. 연구진은 초기 단계의 성과라는 점을 전제로, 같은 유형의 조기 정지 신호를 가진 다양한 유전질환에 tRNA 치료 플랫폼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전자 문장에 잘못 들어간 마침표
인체의 세포는 DNA에 저장된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단백질을 만든다. DNA 정보는 메신저RNA로 전달되고, 리보솜은 이 정보를 세 글자 단위인 코돈으로 읽는다. 전달RNA는 각 코돈에 맞는 아미노산을 운반해 단백질 사슬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정상적인 유전자에는 단백질 합성을 끝내라는 정지 코돈이 적절한 위치에 존재한다. 그러나 일부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정지 코돈이 정상 위치보다 앞에 만들어진다. 이를 무의미 돌연변이 또는 넌센스 돌연변이라고 한다.
리보솜은 잘못 만들어진 정지 코돈도 정상 신호로 인식한다. 단백질 합성이 도중에 멈추면서 길이가 짧고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단백질이 만들어지거나, 단백질 자체가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 낭포성 섬유증을 비롯해 일부 근육질환과 신경질환, 대사질환에서 이러한 돌연변이가 확인된다.
무의미 돌연변이는 전체 유전질환의 약 11%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토론토대학교·2026년). 비율만 보면 제한적으로 보이지만 관련 질환은 수천 종에 이른다. 환자 수가 적고 돌연변이가 다양해 개별 질환마다 치료제를 개발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연구진이 설계한 tRNA는 조기에 나타난 정지 코돈을 인식한 뒤 필요한 아미노산을 공급한다. 유전정보를 읽는 과정이 중단되지 않도록 해 정상 길이에 가까운 단백질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DNA를 직접 잘라내거나 바꾸지 않고 단백질 번역 과정에 개입한다는 점에서 유전자 편집과 차이가 있다.
화학 변형과 지질나노입자 결합
tRNA가 질병 치료 후보로 주목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조기 정지 코돈을 우회할 수 있지만 체내에서 쉽게 분해되고, 세포 안으로 전달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세포에 도달하더라도 충분한 시간 동안 기능을 유지하지 못하면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연구진은 자연 상태의 tRNA에서 발견되는 화학적 표지를 참고해 설계된 tRNA를 변형했다. 특정 화학적 변형을 적용하자 tRNA의 활성과 지속성이 높아졌다. 치료 물질을 만드는 문제와 체내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문제를 함께 다룬 것이다.
다음 과제는 전달이었다. 연구진은 코로나19 mRNA 백신에도 활용된 지질나노입자를 tRNA 특성에 맞게 다시 설계했다. 하루 동안 구조가 다른 약 1000종의 지질을 합성하고 선별해 tRNA 전달에 적합한 후보를 찾아냈다(토론토대학교·2026년).
RNA 치료제의 경쟁력은 RNA 서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목표 장기에 얼마나 많은 물질을 전달하는지, 원하지 않는 조직으로 확산되는지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 이번 연구가 tRNA 자체의 설계와 전용 지질나노입자 개발을 동시에 진행한 이유다.
낭포성 섬유증 세포에서 기능 회복
연구진은 낭포성 섬유증을 실험 모델로 선택했다. 낭포성 섬유증은 CFTR 유전자 이상으로 염분과 수분의 이동을 조절하는 단백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유전질환이다. 끈적한 점액이 폐와 소화기관 등에 쌓이면서 만성 폐 감염과 호흡기능 저하를 유발한다.
최근에는 손상된 CFTR 단백질의 기능을 개선하는 조절제 계열의 치료제가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복합치료제 트리카프타는 일부 환자의 치료 성과를 크게 개선했다. 그러나 무의미 돌연변이로 CFTR 단백질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 환자에게는 효과가 제한된다.
토론토대 연구진은 두 종류의 무의미 돌연변이를 가진 사람의 기도 세포에 설계된 tRNA를 적용했다. 실험 결과 완전한 길이의 CFTR 단백질이 다시 생성됐으며, 세포의 염소이온 통로 기능도 회복됐다. 효과는 실험 환경에서 40일 이상 지속됐다(토론토대학교·2026년).
환자 유래 세포로 만든 오가노이드 실험도 진행됐다. 해당 환자는 네 가지 CFTR 돌연변이를 갖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두 가지가 무의미 돌연변이였다. 기존 치료제에 충분히 반응하지 않는 유형이었다.
변형 tRNA와 트리카프타를 각각 투여했을 때는 반응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두 물질을 함께 사용하자 완전한 단백질 생성과 기능 회복이 나타났다. tRNA가 먼저 CFTR 단백질을 만들어주고, 기존 약물이 생성된 단백질의 기능을 개선한 것으로 해석된다.
질환별 치료제에서 돌연변이별 플랫폼으로
기존 유전자치료는 특정 질환과 유전자를 정밀하게 겨냥한다. 치료 정확도를 높일 수 있지만 새로운 유전자나 돌연변이가 확인될 때마다 별도의 치료제를 설계하고 검증해야 한다. 환자 수가 적은 희귀질환에서는 개발비를 회수하기 어려워 연구가 임상시험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tRNA 치료 기술은 질환 이름보다 돌연변이의 구조에 주목한다. 조기에 생성되는 정지 코돈은 UAG·UAA·UGA 세 종류로 제한된다. 서로 다른 유전자에서 발생한 질환이라도 동일한 정지 코돈을 공유한다면 하나의 tRNA 설계를 활용할 가능성이 생긴다.
이는 희귀질환 치료제의 개발 단위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개별 질환과 환자군을 기준으로 치료제를 만드는 방식에서 공통적인 분자 결함을 묶어 플랫폼을 구축하는 방향이다. 하나의 후보물질을 여러 질환으로 확장할 수 있다면 연구개발 비용과 임상시험 설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국내 바이오산업에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한국은 mRNA 백신 개발을 계기로 RNA 합성과 지질나노입자, 위탁개발생산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tRNA 치료제가 새로운 RNA 의약품 분야로 성장할 경우 기존 생산시설과 전달체 기술을 활용할 여지가 있다.
다만 mRNA와 tRNA는 크기와 구조, 안정성, 세포 내 작동 방식이 다르다. 기존 mRNA 전달체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으며 목표 장기별로 별도의 제형을 개발해야 한다. 플랫폼이라는 표현이 모든 질환에 동일한 약물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정상 정지 신호 침범 가능성 살펴야
이번 성과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아니라 세포와 오가노이드 등을 활용한 전임상 연구다. 실제 환자에게 투여했을 때 같은 수준의 단백질 복원 효과가 나타날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반복 투여에 따른 면역반응과 장기 독성도 검증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안전성 문제는 정상적인 정지 코돈을 잘못 통과할 가능성이다. 조기 정지 코돈만 선택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면 정상적으로 완성된 단백질 뒤에 불필요한 아미노산이 추가될 수 있다. 비정상 단백질이 축적되면 새로운 세포 독성이나 면역반응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복원된 단백질이 자연 상태의 단백질과 완전히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설계된 tRNA가 조기 정지 코돈 위치에 어떤 아미노산을 넣는지에 따라 단백질 기능이 달라질 수 있다. 단백질을 다시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기능과 안정성을 질환별로 평가해야 한다.
전달 효율도 임상 전환을 좌우한다. 폐질환은 흡입형 제제를 활용할 수 있지만 뇌와 근육, 심장 등 다른 장기는 각각 다른 전달 전략이 필요하다. 혈액뇌장벽처럼 약물 진입이 어려운 구조를 가진 장기에서는 tRNA보다 전달체 개발이 더 큰 난제가 될 수 있다.
연구진은 지질나노입자를 미세한 안개 형태로 만들어도 안정성을 유지하는지 확인했다. 이는 환자가 집에서 흡입하는 치료제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적정 투여량과 투여 주기, 폐 조직 내 분포, 장기 반복 투여 안전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
희귀질환 치료의 경제성까지 바꿀까
희귀질환 신약 개발은 과학적 난도와 경제성 문제가 동시에 작용한다. 환자 수가 적으면 임상시험 참여자를 모집하기 어렵고, 치료제가 출시돼도 가격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국가별 건강보험과 약가 제도가 치료 접근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여러 질환에 적용할 수 있는 tRNA 플랫폼은 초기 연구비와 생산기술을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정 정지 코돈을 표적으로 하는 후보물질의 안전성이 확보되면 후속 질환 개발 과정이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 희귀질환을 개별 시장이 아니라 공통 기술군으로 묶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임상시험과 허가 기준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같은 정지 코돈을 가진 환자라도 유전자와 장기, 질환 진행 과정이 다르다. 한 질환에서 확인된 효과와 안전성을 다른 질환에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지에 대한 규제 기준이 필요하다.
tRNA 치료제가 실제 의약품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현재 확인된 것은 유전자 정지 신호를 우회해 기능성 단백질을 복원할 수 있다는 전임상 근거다. 사람에게서의 치료 효과와 장기 안전성은 임상시험을 통해 별도로 입증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희귀질환 치료를 바라보는 기준을 넓혔다. 질환마다 손상된 DNA를 각각 고치는 대신 단백질 생산 과정에서 반복되는 공통 오류를 찾아 개입하는 방식이다.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치료제 개발이 어려웠던 질환을 하나의 기술 플랫폼 안에서 다시 묶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tRNA 기술의 가치는 당장의 치료제 출시보다 개발 구조의 변화에 있다. 유전자치료가 ‘어떤 유전자를 고칠 것인가’를 물었다면 tRNA 치료는 ‘어디에서 단백질 생산이 멈췄는가’를 묻는다. 이 질문이 임상에서도 유효한 것으로 확인될 때 희귀질환 치료는 질환별 맞춤 개발과 공통 플랫폼 치료가 병행되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