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우주

우주에 한 번 가본 부품이 강하다…한국 우주산업 ‘헤리티지’ 확보전

우주산업에서는 뛰어난 기술을 개발했다고 곧바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상 시험을 모두 통과한 반도체와 센서, 전력장치라도 실제 우주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는 기록이 없다면 고객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진공과 방사선, 극심한 온도 변화와 발사 순간의 강한 진동을 견디면서 실제 임무를 수행한 경험. 우주업계에서는 이를 ‘스페이스 헤리티지(Space Heritage)’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우주에서 축적한 이력이다.

문제는 이 이력을 처음 만드는 과정이다. 발사 경험이 없는 부품은 위성에 탑재되기 어렵고, 위성에 탑재되지 못하면 다시 우주 비행 실적을 만들 수 없다. 기술은 있지만 실적이 없어 시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종의 ‘첫 비행의 벽’이다.

한국이 이 장벽을 낮추기 위한 본격적인 실증 체계 구축에 나섰다.

우주항공청은 지난 8월 3일 국내 기업이 개발한 우주 부품에 실제 궤도 운영 경험을 제공하는 ‘우주기술 상용화 실증 지원(Space-MaCS)’ 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2030년까지 5년 동안 총 495억원을 투입해 국산 부품을 국내 검증위성에 탑재하고, 국내 민간 발사체를 이용해 우주로 보내 성능과 신뢰성을 검증한다는 계획이다.


우주산업의 역설, 검증받으려면 먼저 우주에 가야 한다


자동차나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부품도 높은 신뢰성이 필요하지만 우주부품이 요구받는 조건은 훨씬 까다롭다.

지상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부품을 교체하거나 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수백㎞ 상공의 위성은 한번 발사되고 나면 사람이 직접 접근하기 어렵다. 작은 부품 하나의 고장이 위성 전체 임무 실패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발사 과정부터 혹독하다. 로켓이 상승할 때 발생하는 진동과 충격을 견뎌야 하고 궤도에 도착한 뒤에는 진공과 방사선, 큰 폭의 온도 변화 속에서도 수년간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 때문에 위성 제작사나 해외 우주기업은 새로운 부품을 선택할 때 지상 시험 결과뿐 아니라 실제 우주에서 사용된 기록을 중요하게 본다.

성능이 조금 뛰어난 새로운 부품보다 이미 여러 차례 우주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한 제품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유다.

국내 우주기업 입장에서는 바로 이 지점이 시장 진입의 장벽이 될 수 있다. 기술을 개발했지만 비행 이력이 없고, 비행 이력이 없기 때문에 상용 위성에 탑재되기 어려운 구조다.

우주항공청도 Space-MaCS 사업 추진 배경으로 국내 기업들이 실제 우주환경 검증 이력이 부족해 기술 상용화와 국제 공급망 진입에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점을 들었다.


지상 시험과 우주 실증은 무엇이 다른가


우주용 부품은 발사 전에 다양한 환경시험을 거친다.

진동시험을 통해 로켓 발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격을 견딜 수 있는지 확인하고, 열진공시험에서는 우주와 비슷한 진공 상태와 온도 변화에 노출한다. 전자부품은 방사선이 성능과 수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검증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정교한 지상시험이라도 실제 우주환경을 완벽하게 재현하기는 어렵다.

우주에서는 여러 환경 요소가 동시에 장기간 작용한다. 부품 단독으로 정상 작동하더라도 위성의 다른 장비와 연결됐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궤도에서 장시간 운영하면서 성능이 변화할 수도 있다.

따라서 궤도 실증은 지상시험의 대체재라기보다 마지막 검증 단계에 가깝다.

Space-MaCS는 이 과정 자체를 하나의 지원 체계로 만드는 사업이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부품을 검증위성에 탑재하고 실제 궤도에서 운영한 뒤 성능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면 기업은 단순히 “우주용으로 개발했다”는 설명을 넘어 “실제 우주에서 검증됐다”는 이력을 갖게 된다.

해외 고객을 상대로 한 수출이나 글로벌 위성 프로젝트 참여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 생기는 셈이다.


발사체와 위성이 늘어나야 부품에도 기회가 생긴다


우주부품 산업이 성장하려면 부품 개발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내에서 제작되는 위성이 많아지고 이를 우주로 보낼 발사 기회도 함께 늘어나야 한다. 검증할 부품이 있어도 탑재할 위성과 발사체가 없다면 우주 헤리티지를 축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우주산업에서는 이 세 요소가 동시에 움직이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우주항공청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지난 8월 국내 최초 군집형 초소형위성의 1차 양산기인 2~6호 개발을 완료했다. 100㎏ 미만 지구관측위성 10기를 군집으로 운영해 한반도와 주변 해역을 고빈도로 관측하는 사업이다.

이 가운데 2~6호 5기는 누리호 5차 발사에 함께 실릴 예정이다.

우주항공청은 누리호 5차 발사 예정일을 오는 10월 7일로 정했다. 이번 발사에는 초소형군집위성 5기와 큐브위성 10기 등 모두 15기의 위성이 탑재될 예정이다.

특히 초소형군집위성은 국내 위성 개발 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하나의 위성을 오랜 기간 개발해 발사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최근 뉴스페이스 산업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위성을 여러 대 제작하고 반복적으로 발사하는 방식이 확대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위성 개발이 단품 제작에서 양산과 군집운영 단계로 이동하면 부품 업체가 실제 위성에 제품을 공급할 기회 역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한 번 성공’이 반복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주산업에서 스페이스 헤리티지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반복 생산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위성 임무에서 검증된 부품은 이후 비슷한 위성이나 후속 사업에도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위성 제작사 입장에서는 이미 검증된 부품을 다시 사용하는 것이 임무 실패 위험을 낮추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초소형군집위성 사업에서도 이런 변화의 단면을 볼 수 있다.

2024년 4월 시제기 1호가 발사된 데 이어 2026년 1월 검증기가 발사됐고, 여기서 확보한 군집 운용 기술과 성능 보완 사항이 2~6호 양산기에 반영됐다. 우주항공청은 동일 설계 기반의 위성 5기를 양산해 동시에 발사하는 것을 국내 위성개발이 양산 단계로 전환되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부품업체 입장에서도 같은 구조가 가능하다.

첫 제품이 실제 우주에서 성능을 입증하면 다음 위성이나 추가 생산분에 다시 채택될 가능성이 생긴다. 한 번의 실증이 단발성 연구개발 성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 매출, 수출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우주산업에서 ‘처음 한 번 날려보는 기회’를 확보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산업적 의미를 갖는다.


한국 우주산업, 완성체 중심에서 공급망 경쟁으로


한국의 우주개발은 오랫동안 발사체와 위성 같은 완성 시스템 확보에 관심이 집중돼 있었다.

누리호 개발과 위성 국산화를 통해 우주로 갈 수 있는 자체 수단을 만드는 것이 우선 과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산업이 커질수록 경쟁의 단위는 완성체에서 공급망 전체로 확대된다.

위성 한 대에는 구조체와 전력장치, 통신장비, 센서, 카메라, 반도체, 열제어 부품 등 수많은 제품이 들어간다. 이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품을 국내 기업이 공급하고, 해외 위성 사업에도 판매할 수 있느냐가 산업 생태계의 규모를 결정한다.

특히 글로벌 뉴스페이스 시장에서는 다수의 소형위성을 반복 생산하는 사업 모델이 확대되고 있다. 위성 제작이 일회성 프로젝트에서 제조 산업에 가까운 형태로 변할수록 신뢰성을 확보한 부품 업체가 누릴 수 있는 시장 기회도 커질 수 있다.

한국의 강점인 반도체와 전자부품, 통신, 정밀제조 기술 역시 우주용으로 검증된다면 새로운 시장으로 연결될 여지가 있다.

다만 지상에서 경쟁력이 있는 기술을 그대로 우주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주환경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를 바꾸고 장기간 신뢰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Space-MaCS와 같은 실증 프로그램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 실증을 넘어 민간 시장으로 이어져야


정부가 실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출발점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정부 지원 없이도 국내 기업들이 상업 위성과 해외 프로젝트에서 자연스럽게 비행 이력을 쌓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실증에 성공한 제품이 실제 구매와 후속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부품이 어느 궤도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정상 작동했는지, 어떤 환경시험과 운영 데이터를 확보했는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주 헤리티지가 단순한 ‘발사 경험’이 아니라 해외 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인 이력으로 활용돼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발사 서비스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대될지도 관건이다.

검증위성을 만들더라도 발사 기회가 드물거나 비용이 높으면 기업이 반복적으로 실증하기 어렵다. 국내 민간 발사체와 위성 플랫폼을 Space-MaCS 사업에 연계하려는 이유도 결국 개발부터 실증, 발사까지 이어지는 국내 우주산업의 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한국 우주산업의 다음 경쟁은 거대한 로켓이나 위성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작지만 신뢰성 높은 센서 하나, 전력장치 하나, 통신 모듈 하나가 세계 여러 위성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공급망을 만드는 것이 산업 규모를 키우는 또 다른 길이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는 의외로 단순한 질문이 놓여 있다.

“이 부품은 실제 우주에서 작동해본 적이 있는가.”

기술을 개발하는 단계에서 실제 우주에서 검증하고, 검증된 제품을 반복 생산해 세계 시장에 판매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것. 한국 우주산업이 ‘개발의 시대’를 넘어 ‘상용화의 시대’로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관문이 바로 스페이스 헤리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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