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노년의 병이라는 공식 흔들리나…한국 ‘젊은 암’의 지도가 달라지고 있다
암은 오랫동안 나이가 들수록 위험이 커지는 대표적인 질환으로 인식돼 왔다. 실제로 전체 암 환자 가운데 고령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2023년 국내에서 새롭게 암 진단을 받은 환자는 28만8613명이었고, 이 가운데 65세 이상은 14만5452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하지만 전체 숫자만 보면 놓치기 쉬운 변화가 있다.
같은 암이라도 연령에 따라 발생 추세가 다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일부 암에서는 최근에 태어난 세대일수록 이전 세대보다 높은 위험을 보이는 현상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암센터와 국내 대학 연구진이 1999년부터 2023년까지 25년간 국가암등록통계를 분석한 연구가 지난 8월 21일 국제학술지 ‘Cancer Epidemiology’에 공개됐다. 연구진은 성인을 50세 미만과 50세 이상으로 나눠 주요 암의 발생 변화를 비교하고, 출생 연도에 따른 암 위험의 차이까지 분석했다.
결과는 단순히 “암이 늘었다”거나 “줄었다”는 말만으로는 국내 암 발생 양상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줬다.
특히 대장암과 갑상선암, 신장암은 50세 미만에서 연간 증가 속도가 고령층보다 더 크게 나타났고, 최근 출생세대에서는 이들 암의 위험이 이전 세대보다 높아지는 ‘출생 코호트 효과’도 확인됐다. 여성 유방암 역시 최근 세대에서 위험 증가가 관찰됐다.
한국의 암 지도가 단순히 고령화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전체 암 통계만 보면 보이지 않는 변화
2023년 국내 신규 암 환자는 28만8613명으로 전년보다 7296명 증가했다.
하지만 인구의 연령구조 차이를 제거한 연령표준화 발생률은 인구 10만명당 522.9명으로 최근 몇 년간 큰 변화 없이 정체되는 모습을 보였다. 전체 환자 수 증가는 상당 부분 고령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문제는 모든 연령대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연구진은 전체 인구를 하나로 묶어 계산한 암 발생률과 연령별 증가율을 비교했다. 그 결과 주요 암 가운데 상당수에서 전체 평균 추세와 연령별 추세가 일치하지 않았다.
어떤 암은 고령층에서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동안 젊은 연령층에서는 증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차이를 보지 않고 전체 암 발생률만 확인하면 특정 세대에서 진행되는 변화를 뒤늦게 발견할 가능성이 있다.
2023년 기준 50세 미만에서 가장 흔한 암은 갑상선암이었다. 반면 50세 이상에서는 여성은 유방암, 남성은 전립선암이 가장 많이 발생했다.
연령에 따라 암의 종류와 발생 패턴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대장암·갑상선암·신장암, 젊은층 증가 속도 더 빨랐다
연구에서 특히 주목된 것은 대장암과 갑상선암, 신장암이다.
이들 암은 50세 미만의 연간 발생 증가 폭이 50세 이상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대장암은 이미 세계적으로 ‘조기발병 대장암’이 중요한 보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50세 이전에 발생하는 대장암을 조기발병 대장암으로 분류하는데, 여러 국가에서 젊은 연령층의 발생 증가가 보고되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갑상선암은 조금 더 복잡하게 해석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과거 초음파 검사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작은 갑상선암까지 대량으로 발견됐고, 과잉진단 논란도 컸다.
따라서 갑상선암 발생 증가를 곧바로 실제 질병 위험 증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진단 기술의 발전과 검진 빈도 변화가 통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장암 역시 영상검사가 널리 사용되면서 우연히 발견되는 사례가 늘어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젊은층에서 암 발생률이 높아졌다는 결과만으로 ‘요즘 젊은 세대가 더 건강하지 않다’고 단정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조심해야 한다.
어떤 암은 생활환경 변화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고, 어떤 암은 검진과 진단기술 발전으로 더 많이 발견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출생 코호트 효과’가 보여주는 세대의 차이
이번 연구에서 더욱 눈여겨볼 부분은 출생 코호트 분석이다.
출생 코호트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질병 발생 위험을 비교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1950년대에 태어난 사람과 1970년대, 1980년대에 태어난 사람은 성장 과정에서 경험한 식생활과 환경오염, 비만 수준, 의료환경, 출산문화 등이 다르다.
같은 40세라도 어느 시대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평생 노출된 환경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1959년 출생자를 기준으로 세대별 암 위험을 비교했다.
그 결과 대장암과 갑상선암, 신장암은 남녀 모두에서 최근 출생세대로 갈수록 상대적으로 높은 위험이 나타났다. 여성의 경우 유방암에서도 같은 방향의 변화가 관찰됐다.
이러한 결과는 특정 시점에 모든 연령층에 영향을 미친 사건보다는 세대가 성장하면서 축적한 생활환경이나 행동 요인이 암 위험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다만 이번 연구는 어떤 특정 요인이 암 증가를 일으켰는지를 규명한 연구는 아니다.
출생세대와 암 위험 사이의 패턴을 확인한 것이기 때문에 원인을 밝히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비만·식생활·운동 부족이 원인일까
젊은 연령층의 암 증가를 설명할 때 가장 자주 거론되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생활습관 변화다.
대장암의 경우 비만과 신체활동 부족, 가공육과 적색육 섭취, 음주 등 여러 요인이 위험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의 식생활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크게 변화했다. 고열량 식품과 가공식품 섭취가 늘었고,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비만과 대사질환의 증가 역시 일부 암과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
여성 유방암은 출산 연령 상승과 출산 횟수 감소, 호르몬 노출 변화 등 다양한 사회·생물학적 요인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들을 하나의 원인으로 묶는 것은 위험하다.
암은 유전적 요인과 생활습관, 환경 노출, 감염, 호르몬, 의료 이용 등 여러 요인이 오랜 시간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최근 세대의 암 위험 변화 역시 하나의 생활습관만으로 설명될 가능성은 낮다.
연구진 역시 젊은 세대에서 관찰되는 발생 변화의 원인을 확인하고 연령에 맞는 예방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진이 늘어서 발견이 많아진 것은 아닐까
암 발생률을 해석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검진이다.
건강검진이 보편화되고 CT와 초음파, 내시경 같은 진단기술이 발전하면 과거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작은 암까지 찾아낼 수 있다.
이 경우 통계상 암 발생률은 높아지지만 실제 생물학적 위험이 같은 폭으로 증가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의 갑상선암은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 초음파 검사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갑상선암 진단이 급증했고 이후 검진 관행이 변화하면서 발생률도 크게 움직였다.
대장암 역시 내시경 검사가 확대되면 조기 암 발견은 늘어날 수 있다.
반대로 대장내시경 과정에서 암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있는 용종을 제거하면 장기적으로 암 발생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젊은 암 증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실제 위험 변화와 진단 증가 효과를 구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단순히 환자 수가 늘었다는 숫자만으로 생활환경 악화를 주장하거나 특정 식품과 행동을 원인으로 지목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젊은층 전체 검진을 늘리는 것이 답은 아니다
젊은 암이 증가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검진 연령을 더 낮춰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국가 검진정책은 발생 증가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검진으로 조기에 발견했을 때 사망률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 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해는 어느 정도인지, 건강한 사람을 대규모로 검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얼마인지 등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발생률이 낮은 연령층을 광범위하게 검사할 경우 위양성이 늘어나 불필요한 추가검사와 치료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반면 가족력이나 유전적 위험, 특정 증상을 가진 사람은 연령과 관계없이 더욱 적극적인 평가가 필요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젊으니까 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반대로 ‘젊은 사람도 모두 정기적인 고강도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접근을 피하는 것이다.
연령과 가족력, 개인 위험요인을 기준으로 보다 정교하게 예방 전략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암 정책도 ‘전체 평균’에서 ‘세대별 위험’으로
이번 연구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암 환자의 평균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사회 안에서도 세대에 따라 암 위험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2023년 한국에서는 28만8613명이 새롭게 암 진단을 받았다. 전체 연령표준화 발생률은 최근 정체돼 있지만, 그 안에서는 암종과 연령에 따라 서로 다른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이제 국가 암 정책도 전체 발생률만 바라보는 방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어떤 암이 어느 연령에서 증가하고 있는지, 특정 출생세대의 위험이 왜 높아지고 있는지, 검진 확대 때문인지 실제 환경 변화 때문인지 구분하는 연구가 더욱 중요해진다.
그 결과에 따라 예방교육과 검진 기준, 건강정책도 달라질 수 있다.
암은 여전히 고령층에서 훨씬 큰 질병 부담을 만드는 질환이다. ‘암이 젊은 사람의 병으로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그러나 암이 오직 노년의 문제라는 인식 역시 현실의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25년간의 국가암등록자료가 보여주는 것은 암의 중심이 갑자기 젊은층으로 이동했다는 것이 아니라, 전체 평균 아래에 숨어 있던 세대별 차이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암 예방의 핵심도 모든 사람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에서 벗어나, 연령과 세대에 따라 달라지는 위험을 얼마나 빨리 발견하고 그 원인을 규명하느냐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