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인데 집이 왜 안 식을까…폭염 시대 ‘실내 열섬’의 정체
한낮 기온이 35도를 넘는 날에도 사람들은 저녁이 되면 조금은 시원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최근의 폭염에서는 해가 진 뒤에도 집 안의 열기가 쉽게 빠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에어컨을 끄면 금세 실내온도가 올라가고, 창문을 열어도 뜨거운 공기만 들어온다. 같은 동네에 사는데도 어떤 집은 밤이면 비교적 빠르게 식는 반면, 어떤 집은 자정이 지나도록 열기가 남아 있다.
이 차이는 단순히 바깥 기온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낮 동안 건물과 도로, 옥상과 외벽에 저장된 열이 밤까지 천천히 방출되고, 집의 방향과 층수, 단열 수준, 주변 녹지와 포장면적에 따라 실내에 쌓이는 열의 양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지난 7월 23일부터 폭염특보가 약 2주간 이어진 가운데 8월 4일 올여름 처음으로 최고 단계인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됐다. 이 단계는 폭염경보 지역에서 일 최고 체감온도가 38도 이상이거나 최고기온이 39도 이상으로 예상될 때 내려진다. 서울시는 이에 따라 냉방비 지원과 도로 물청소, 쿨링로드 가동 등을 확대했다.
폭염이 길어질수록 문제는 낮의 더위보다 ‘밤에도 사라지지 않는 열’로 옮겨간다.
낮에 달궈진 콘크리트는 밤에도 열을 내보낸다
도시의 건물과 도로를 이루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는 햇빛을 받으면 많은 열을 흡수한다.
낮 동안 받은 태양에너지는 표면온도를 높이고 건물 벽과 지붕 내부에도 저장된다. 해가 진 뒤에는 저장됐던 열이 다시 주변 공기와 실내로 방출된다.
흙이나 식물이 많은 곳에서는 수분 증발과 식물의 증산작용을 통해 열 일부가 빠져나갈 수 있다. 반면 건물과 도로가 밀집된 도시는 이런 자연적인 냉각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도심이 교외보다 더 높은 온도를 유지하는 ‘도시열섬’이 발생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 현상은 집 안에서도 체감된다.
낮에 서쪽 벽이나 옥상이 강한 햇빛을 오랫동안 받았다면, 저녁이 돼 외부 기온이 내려가더라도 벽과 천장은 한동안 저장된 열을 실내로 계속 전달할 수 있다.
결국 실외 기온이 같아도 건물마다 실내온도가 달라질 수 있다.
같은 아파트인데도 최상층과 서향이 더 더운 이유
집의 방향과 층수도 여름철 실내온도에 영향을 준다.
서향 주택은 오후 시간대 강한 햇빛을 직접 받는다. 특히 여름에는 해가 늦게 지기 때문에 실내에 열이 축적된 상태로 밤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최상층도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다.
중간층은 위아래 세대가 일종의 완충 역할을 하지만 최상층은 지붕이나 옥상이 태양에 직접 노출된다. 옥상 방수층이나 콘크리트가 뜨겁게 달궈지면 그 열이 천장을 통해 실내로 전달될 수 있다.
옥탑이나 지붕 바로 아래 공간이 폭염에 특히 취약한 것도 같은 이유다.
큰 창 역시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진다.
겨울에는 햇빛을 받아 난방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여름에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일사량이 실내온도를 빠르게 높일 수 있다. 특히 외부 차양이 없는 서향 유리창은 오후 시간대 상당한 열을 실내로 들여올 수 있다.
결국 같은 지역, 같은 외부 기온이라도 집의 방향과 층수, 창 면적과 단열 상태에 따라 주민이 경험하는 더위는 달라질 수 있다.
단열은 겨울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단열이라고 하면 흔히 겨울철 난방을 떠올린다.
하지만 단열은 여름에도 중요하다.
단열 성능이 좋은 건물은 바깥의 열이 실내로 전달되는 속도를 줄일 수 있다. 반대로 단열이 약한 건물은 낮 동안 외벽과 지붕의 높은 온도가 실내로 쉽게 전달될 수 있다.
창호 역시 마찬가지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일사를 줄이고 외부 열의 유입을 막는 성능에 따라 냉방효율이 달라진다. 창 안쪽의 커튼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햇빛이 유리를 통과하기 전에 막아주는 외부 차양이나 블라인드가 열 유입 자체를 줄이는 데 더 유리할 수 있다.
옥상에서 들어오는 열을 줄이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최근 주목받는 것이 ‘쿨루프’다.
쿨루프는 햇빛을 잘 반사하는 밝은 색의 차열도료를 옥상에 시공해 표면이 흡수하는 태양에너지를 줄이는 방식이다.
서울시는 올해 노후주택과 복지시설 등 204곳에 쿨루프를 확대하고 있다. 시가 제시한 기존 실증 결과에 따르면 쿨루프 시공 후 옥상 표면온도는 최대 9.2도, 실내온도는 최대 1.8도 낮아졌으며 냉방비는 평균 26.4% 절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실제 효과는 건물 구조와 위치, 냉방 방식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열대야가 힘든 이유는 잠만 못 자서가 아니다
밤에도 높은 기온이 이어지면 몸은 낮 동안 받은 열 스트레스에서 충분히 회복하기 어렵다.
수면 중에도 체온을 낮추기 어려워지고 잠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 고령자나 영유아, 심혈관질환자처럼 체온 조절에 취약한 사람에게는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에어컨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가구에서는 위험이 커진다.
여름철 전기요금 부담 때문에 냉방기 사용을 줄이거나, 냉방설비가 충분하지 않은 노후주택에 거주하는 경우 실내에서도 폭염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 있다.
폭염이 단순한 날씨 문제가 아니라 주거 문제로 이어지는 지점이다.
서울시는 올해 폭염 대응 과정에서 취약계층 약 42만 가구에 냉방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쪽방 주민과 독거노인 등에 대한 보호조치도 강화했다.
이는 폭염 위험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에어컨 성능과 단열 상태가 좋은 집에 사는 사람과 오래된 옥탑이나 쪽방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같은 폭염경보 아래에서도 전혀 다른 수준의 열에 노출될 수 있다.
에어컨을 많이 켤수록 도시가 더 뜨거워지는 역설
폭염에 가장 빠르게 대응하는 방법은 냉방이다.
하지만 도시 전체가 에어컨을 집중적으로 가동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에어컨은 실내의 열을 없애는 장치가 아니라 실내의 열을 외부로 옮기는 장치다. 실외기에서는 실내에서 빼낸 열에 압축 과정에서 발생한 열까지 더해져 밖으로 배출된다.
건물이 밀집한 지역에서 수많은 실외기가 동시에 작동하면 골목과 건물 사이의 외부 온도를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전력 사용량 증가도 문제다.
폭염 때 냉방 수요가 급증하면 전력망 부담이 커지고, 발전량이 늘어나면서 에너지 비용과 온실가스 배출 문제도 연결될 수 있다.
그렇다고 에어컨 사용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폭염은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냉방은 반드시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에어컨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실내온도를 낮출 수 있도록 건물 자체의 열 유입을 줄이는 것이다.
차양과 단열 개선, 쿨루프, 녹지 확대 등이 함께 거론되는 이유다.
도로를 식히고 그늘을 늘리는 이유
집 안의 더위를 낮추려면 건물만 바꿔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주변 도시환경의 온도 자체가 높으면 밤에 창문을 열어도 들어오는 공기가 뜨겁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올해 폭염 저감 대책으로 도로 물청소를 확대하고, 도로에 물을 분사해 표면온도를 낮추는 쿨링로드를 총 19개소 5.67㎞ 규모로 운영하고 있다. 무더위쉼터도 4000여 곳을 운영하고 있으며 쿨링포그와 그늘막 등 생활권 폭염저감시설도 확대하고 있다.
이런 시설은 도시 전체의 기온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해결책은 아니다.
하지만 보행자가 직접 노출되는 열을 줄이고, 특정 공간의 표면온도와 체감온도를 낮추는 기후적응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가로수와 공원, 물이 스며들 수 있는 지면을 늘리고 건물의 열 흡수를 줄이는 방식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도시가 얼마나 많은 열을 받아들이고 얼마나 빨리 내보낼 수 있는지가 앞으로 주거환경의 중요한 성능 기준이 될 수 있다.
폭염 시대에는 집의 가치 기준도 달라진다
한국의 주택은 오랫동안 겨울 추위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단열과 난방효율은 주택 성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러나 여름이 길어지고 폭염과 열대야가 반복되면서 앞으로는 집이 얼마나 빨리 뜨거워지고, 얼마나 쉽게 식는지도 중요한 주거 성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같은 면적의 아파트라도 방향과 일사량, 외부 차양, 단열 성능, 주변 녹지에 따라 여름철 냉방비와 생활환경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폭염은 이제 집 밖에서만 피해야 하는 재난이 아니다.
낮 동안 건물이 흡수한 열이 밤까지 이어지고, 냉방이 어려운 주거환경에서는 그 열이 사람의 수면과 건강, 생활비까지 압박한다.
밤이 됐는데도 집이 식지 않는 현상을 단순히 “올여름이 유난히 덥기 때문”이라고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기후가 더 뜨거워질수록 주거정책 역시 겨울의 난방복지뿐 아니라 여름의 냉방복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 폭염에 강한 도시는 에어컨이 가장 많은 도시가 아니라, 애초에 건물과 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열을 줄이고 밤이면 빠르게 열을 내보낼 수 있는 도시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 집이 밤에도 뜨거운 이유를 이해하는 일은 결국 폭염 시대에 어떤 집과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