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피하려 심은 나무가 알레르기를 키운다면…도시 녹화의 뜻밖의 숙제
한여름 도심에서 가로수 그늘은 작은 피난처가 된다. 햇빛을 직접 맞는 보도와 나무 그늘 아래의 체감온도는 확연히 다르고, 공원과 녹지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달궈진 도시의 열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
폭염이 잦아질수록 도시가 나무를 더 심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그런데 나무를 많이 심는 것만으로 끝나는 문제는 아니다. 어떤 나무를 어디에 심느냐에 따라 도심의 꽃가루 노출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가 잇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2026년 8월 국제학술지 City and Environment Interactions에 발표된 연구는 네덜란드 레이던의 두 지역 10개 지점에서 1년 동안 거리 단위로 꽃가루를 측정했다. 연구진은 DNA 분석과 현미경 관찰을 함께 이용해 공기 중 꽃가루의 종류와 발생원을 살폈다.
그 결과 같은 도시 안에서도 꽃가루 농도와 종류가 장소에 따라 크게 달랐고, 알레르기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꽃가루의 주요 발생원으로 공공 녹지가 지목됐다. 여름에는 풀이, 겨울과 봄·가을에는 나무가 주요 꽃가루 공급원으로 나타났다.
그늘을 만드는 나무와 꽃가루를 만드는 나무는 같은 나무다
도시가 나무를 심는 이유는 분명하다.
나무의 잎과 가지는 햇빛을 가리고, 식물이 수분을 내보내는 증산작용은 주변의 열을 낮춘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낮 동안 흡수한 열을 밤까지 내놓는 도시 열섬을 완화하는 데도 녹지가 활용된다.
폭염이 일상화되는 상황에서는 가로수와 공원이 단순한 경관 시설을 넘어 기후 적응 시설에 가까워진 셈이다.
문제는 나무 역시 생물이라는 점이다.
일부 수종은 번식을 위해 상당한 양의 꽃가루를 공기 중으로 내보낸다. 특히 바람을 이용해 꽃가루를 옮기는 풍매화 식물은 곤충을 이용하는 식물보다 많은 꽃가루를 퍼뜨리는 경우가 많다.
자작나무와 오리나무, 개암나무, 물푸레나무를 비롯한 여러 수목과 벼과 식물의 꽃가루는 알레르기 비염이나 천식 증상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도시녹지가 커질수록 그늘은 늘지만, 수종 선택을 잘못하면 특정 계절의 꽃가루 부담도 함께 늘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도시인데 길 하나 차이로 꽃가루가 달랐다
레이던 연구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꽃가루가 도시 전체에 똑같이 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10개 지점에서 12개월 동안 꽃가루를 측정했고 모두 105개 식물과에 속하는 366종을 확인했다.
측정 결과는 장소마다 달랐다.
근처에 어떤 식물이 얼마나 심겨 있는지에 따라 공기 중에서 검출되는 꽃가루 구성도 달라졌다. 특히 공공 녹지가 많은 지역에서는 알레르기와 관련된 꽃가루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여름에는 주로 풀이 꽃가루 양을 끌어올렸고, 나무는 겨울과 봄은 물론 가을에도 주요 발생원이었다. 일부 나무 꽃가루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꽃가루 절정기가 지난 뒤에도 검출됐다.
이 결과는 꽃가루 예보를 도시 전체의 숫자 하나로만 보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날 같은 도시에서도 집 앞에 어떤 가로수가 있는지, 가까운 공원에 어떤 풀이 자라는지에 따라 실제 사람이 마주하는 꽃가루 환경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많아서가 아니라 ‘어떤 나무가 많은가’가 문제
도시녹화와 꽃가루 문제를 나무의 숫자로만 보면 해결책도 단순해진다.
나무를 덜 심으면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가 향하는 방향은 반대에 가깝다. 녹지를 줄이기보다 알레르기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수종을 골라 심자는 것이다.
2026년 튀르키예 빙괼 지역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도시 식재가 꽃가루 노출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해당 도시에서 인위적으로 많이 심은 뽕나무가 예방 가능한 주요 알레르기 위험요인이 된 것으로 평가했다. 계획 없이 특정 수종을 집중적으로 심으면 도시 전체의 꽃가루 환경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14개 도시의 가로수와 도시숲을 분석한 2026년 연구에서도 도시별 꽃가루 생산량에 큰 차이가 나타났다.
연구진이 주요 알레르기 유발 수종 12종을 대상으로 계산한 결과 단위면적당 꽃가루 생산량은 도시마다 크게 달랐다. 나무 수뿐 아니라 어떤 종이 많이 심겨 있는지가 차이를 만든 주요 요인이었다.
도시계획 단계에서 수종 선택이 공기질이나 그늘 면적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다.
기후변화는 꽃가루 달력도 바꾸고 있다
문제는 기온이 올라가면서 꽃가루가 날리는 시기 자체도 일정하지 않게 바뀐다는 점이다.
2026년 6월 발표된 자작나무와 수목 꽃가루 연구에서는 기후변화에 따른 기온 변화가 개화 시기와 꽃가루 계절의 시작·종료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됐다.
꽃가루는 단순히 식물이 많다고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기온과 강수량, 바람, 습도, 전년도 생육환경 등 여러 조건이 함께 영향을 준다. 기온이 높아지면 일부 식물의 개화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고, 꽃가루가 공기 중에 존재하는 기간이 달라질 수도 있다.
2026년 발표된 기후변화·대기질·꽃가루 알레르기 관련 국제 연구도 기온과 날씨 변화가 꽃가루 생산과 이동, 노출 기간에 영향을 주며 대기오염 역시 알레르기 증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정리했다.
도시에서는 열섬 효과가 겹친다.
주변 교외보다 기온이 높은 도심에서는 식물의 생육과 개화 시기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고, 자동차와 산업시설에서 나온 대기오염물질까지 더해지면서 꽃가루 알레르기 문제가 복잡해진다.
알레르기가 있으면 공원을 피해야 할까
그렇다고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공원이나 가로수가 해로운 공간이라는 뜻은 아니다.
도시 녹지가 주는 건강상 이익도 크다.
그늘과 열섬 완화뿐 아니라 걷기와 운동을 유도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며, 생물다양성을 높이는 역할도 한다.
실제 문제는 녹지 자체가 아니라 녹지를 어떻게 구성하느냐다.
2025년 발표된 도시녹화 관련 연구에서는 알레르기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풍매화 식물을 지나치게 집중시키지 않고, 꽃가루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식물과 다양한 식생을 함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잔디도 마찬가지다.
넓은 잔디밭은 보기에는 깔끔하지만 벼과 식물은 대표적인 꽃가루 알레르기 원인이다. 레이던 연구에서도 여름철 알레르기 꽃가루의 주요 발생원이 풀이었다. 연구진은 도시녹지를 설계할 때 알레르기 부담이 낮은 초본식물을 늘리고 단순한 잔디 면적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가로수의 성별도 꽃가루와 관계가 있다
도시 수종 선택에서는 같은 종 안에서도 생각할 부분이 있다.
일부 나무는 암수딴그루로 자라는데, 수나무는 꽃가루를 만들고 암나무는 그렇지 않거나 훨씬 적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도시에서는 열매가 떨어져 보도를 더럽히거나 관리비가 늘어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수나무가 선호된 사례도 있다. 관리 측면에서는 편하지만 특정 수종의 수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으면 꽃가루 발생량이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최근 도시녹화 연구에서는 나무가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그늘을 얼마나 만드는지, 가뭄에 얼마나 강한지만 볼 것이 아니라 꽃가루 특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모든 수나무를 피해야 한다거나 암나무만 심으면 된다는 식으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
지역 기후와 토양, 병충해 저항성, 생물다양성, 관리비용까지 함께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폭염에 강한 나무와 알레르기에 덜 부담되는 나무를 함께 찾는 일
앞으로 도시가 나무를 선택하는 기준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기온이 오르고 가뭄이 잦아지면 더위와 건조에 잘 견디는 수종이 필요하다. 태풍과 집중호우가 늘면 뿌리가 튼튼하고 가지가 쉽게 부러지지 않는 특성도 중요하다.
여기에 알레르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2026년 8월 발표된 도시 꽃가루 위험 관련 체계적 문헌고찰도 도시 녹지가 열섬 완화와 빗물 관리, 건강 증진에 도움을 주는 동시에 알레르기 꽃가루라는 부담을 만들 수 있다고 정리했다. 연구진은 도시계획 단계에서 녹지의 규모뿐 아니라 꽃가루 발생원과 시민의 실제 노출까지 함께 평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결국 도시녹화의 질문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나무를 얼마나 더 심을 것인가’가 중요했다면, 폭염과 알레르기가 함께 늘어나는 도시에서는 ‘어떤 나무와 풀을 어디에 심을 것인가’까지 따져야 한다.
뜨거워진 도시에서 나무 그늘은 분명 더 필요하다.
다만 그 그늘 아래에서 더 많은 사람이 편하게 숨 쉬게 만들려면, 나무의 숫자뿐 아니라 이름까지 살펴봐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