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해상풍력 입지 정한다…갈등과 인허가 지연 줄일까
-2031년까지 25GW 예비지구 지정…첫 대상지는 연내 결정
-주민·어업인 참여 제도화했지만 예비지구 지정 이후 협의가 한계
정부가 민간 사업자의 입지 선점에 의존했던 해상풍력 개발 방식을 국가 주도 계획입지로 전환한다. 정부가 풍황과 환경, 어업활동, 전력계통을 조사해 예비지구를 정한 뒤 주민 협의와 사업자 선정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31년까지 25GW 규모의 예비지구를 지정하고 첫 예비지구를 올해 안에 결정할 계획이다. 다만 어느 해역이 첫 대상지가 될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예비지구 지정이 발전사업 허가나 착공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계획입지제의 성패는 정부가 좋은 바다를 찾아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주민과 어업인이 입지 결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 발전단지와 전력망이 함께 준비되는지, 환경성 검토가 사업 속도에 밀리지 않는지가 핵심이다.
사업자가 바다 선점하던 방식 바뀐다
기존 해상풍력 개발은 사업자가 적합한 해역을 찾는 데서 시작했다. 사업자는 풍황계측기를 설치하고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뒤 주민 협의와 환경영향평가, 군 작전성 검토, 공유수면 점용허가 등을 각각 진행했다.
사업 초기부터 여러 사업자가 같은 해역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발전 가능성보다 사업권 확보를 목적으로 풍황계측기를 먼저 설치한다는 논란이 이어졌다. 어업인과 주민은 입지가 상당 부분 결정된 뒤 사업 내용을 전달받는 경우가 많았다.
계획입지제에서는 정부가 입지 발굴을 맡는다. 풍황과 환경·해양환경, 어업활동, 해상교통, 군사작전, 전력계통 등을 종합해 사업 가능성이 높은 해역을 선별한다. 사업자는 발전지구가 지정된 뒤 경쟁 절차를 통해 선정된다.
정부는 301개 해양공간 정보와 규제를 모은 해상풍력 입지정보망을 활용할 계획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해양수산부가 정보를 공동으로 분석하고 해상풍력발전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예비지구를 지정한다(기후에너지환경부, 2026).
입지 발굴부터 주민 협의와 인허가까지 사업자에게 맡겼던 구조를 정부가 앞단에서 정리하는 방식이다. 발전 가능성이 낮거나 다른 해양 이용과 충돌하는 사업을 초기 단계에서 걸러내는 것이 제도의 목적이다.
예비지구 지정부터 착공까지 여섯 단계
계획입지 절차는 예비지구 지정에서 시작한다. 정부가 입지정보망을 통해 후보 해역을 검토하고 해상풍력발전위원회가 예비지구를 지정한다. 예비지구는 발전단지 건설이 확정된 곳이 아니라 정밀 검토 대상으로 선정된 해역이다.
예비지구가 지정되면 지방정부가 기본설계안을 마련한다. 발전기 배치와 발전 규모, 해저케이블과 송전선로, 어업 영향, 주민 참여방안 등을 구체화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과 어업인, 전문가, 공무원이 참여하는 민관협의회가 운영된다.
기본설계와 민관협의가 끝나면 정부는 예비지구 전체 또는 일부를 발전지구로 지정할 수 있다. 이후 경쟁입찰을 통해 발전사업자를 선정한다. 선정된 사업자는 실시계획을 제출하고 승인을 받은 뒤 착공에 들어간다.
절차는 ‘예비지구 지정→기본설계·민관협의회 운영→발전지구 지정→사업자 선정→실시계획 승인→착공·준공’으로 이어진다. 사업자 선정 전 입지와 환경, 주민 수용성에 관한 주요 검토를 마친다는 점이 기존 방식과 다르다.
첫 예비지구는 연내 지정될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는 검토 중인 지역의 수와 위치, 개별 지역의 발전 규모를 밝히지 않았다. 관계부처와 전문가 검토가 끝난 뒤 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한다는 입장이다. 제1회 해상풍력발전위원회 발표 자료
주민·어업인 대표가 협의회 절반 이상
해상풍력 사업에서 갈등이 가장 큰 분야는 어업 피해와 주민 수용성이다. 발전기와 해저케이블이 설치되면 조업구역과 항로가 달라질 수 있다. 송전선로가 지나는 육상 지역에서도 별도의 이해관계가 발생한다.
해상풍력법 시행령은 민관협의회를 15명 이상 25명 이하로 구성하도록 했다. 어업인단체 대표와 주민대표는 전체 위원의 절반 이상이어야 한다. 에너지와 환경, 수산업, 해상교통, 전력계통, 갈등조정 분야 전문가도 전체의 5분의 1 이상 참여해야 한다(해상풍력법 시행령 제11조).
협의회는 기본설계와 발전지구 지정, 주민참여형 이익공유, 수산업과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논의한다. 주민대표와 공무원 측에서 각각 공동위원장을 선출한다. 회의는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이 참석해야 열리며, 출석위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의결할 수 있다.
주민과 어업인 참여가 권고 수준에서 법정 절차로 바뀌었다는 점은 진전이다. 지방정부는 기본설계안을 협의하기 전에 주민 열람과 공청회 또는 설명회도 열어야 한다. 민관협의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해상풍력발전위원회에 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대표 수만으로 수용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조업하는 어업인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지, 직업어민과 지역주민의 이해가 충돌하면 누구의 의견을 우선할지, 협의회 자료를 어느 수준까지 공개할지가 남아 있다.
한국환경연구원의 민관협의회 운영 연구는 이해관계자 대표성과 정보공개가 핵심 과제라고 지적했다. 회의자료와 협의 결과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으면 협의회가 지역사회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주민 참여는 예비지구 지정 이후 시작
제도상 민관협의회는 예비지구가 지정된 뒤 기본설계 단계에서 구성된다. 정부가 입지정보망을 이용해 예비지구를 고르는 초기 과정에는 주민과 어업인이 직접 참여하는 별도의 법정 협의체가 없다.
예비지구는 최종 발전지구가 아니기 때문에 이후 협의를 통해 범위가 줄거나 지정이 해제될 수 있다. 정부는 주민 협의 없이 사업이 확정되는 구조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역사회는 예비지구 지정 자체를 정부가 해당 해역의 개발 방향을 정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한국환경연구원은 갈등 예방을 위해 기본설계보다 앞선 단계에서 어업인의 참여 통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부가 입지를 먼저 정하고 주민에게 수용 여부를 묻는 구조가 되면 기존 사업자 주도 방식에서 발생했던 불신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예비지구 선정 과정에서는 최종 결과뿐 아니라 후보지 검토 기준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풍황과 수심, 계통접속 가능성, 어업 밀집도, 생태계 민감도에 어떤 가중치를 적용했는지가 제시돼야 한다. 군사작전 정보처럼 공개하기 어려운 자료를 제외하더라도 평가 원칙과 탈락 사유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민관협의회의 실효성은 발전지구 지정에 미치는 영향으로 판단해야 한다. 협의가 성립하지 않았을 때 사업을 보류하거나 입지를 변경할 수 있는지, 위원회의 조정이 어떤 기준으로 이뤄지는지도 첫 사례에서 확인해야 한다.
42개 인허가 의제 처리…환경평가 면제는 아니다
정부는 계획입지제가 해상풍력 사업기간을 3∼4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기존에는 입지 발굴과 인허가에 약 7년, 착공 후 상업운전까지 약 3년이 걸려 전체 사업기간이 10년 안팎에 이르렀다.
계획입지제가 정착하면 정부의 사전 조사와 인허가 검토를 거친 사업자가 공사에 집중할 수 있다. 정부는 전체 사업기간이 5∼6년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기후에너지환경부, 2026). 이는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전제에 따른 예상치이며 보장된 처리기간은 아니다.
사업자가 선정된 뒤 실시계획을 승인받으면 42개 인허가 사항은 관련 법률에 따른 허가를 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같은 내용을 여러 기관에 반복 제출하는 절차를 줄이는 장치다.
인허가 의제 처리가 환경성 검토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예비지구 기본설계 단계에서는 해양환경 영향을 지구 단위로 검토한다. 사업자가 실시설계를 마련한 뒤에는 사업 단위의 환경성평가서를 다시 제출해야 한다.
두 차례 검토는 중복되지 않는 범위에서 진행된다. 앞 단계에서는 해당 해역이 발전지구로 적합한지를 살피고, 뒤 단계에서는 개별 사업의 발전기 배치와 공사 방식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한다. 환경부와 해양수산부의 협의 절차도 유지된다.
해상풍력법은 실시계획 승인과 환경성평가, 인허가 의제의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세부 절차는 국가법령정보센터의 해상풍력법 제정·개정 이유에서 확인할 수 있다.
허가 36GW인데 실제 가동은 360MW
계획입지제가 도입된 배경에는 허가와 건설 사이의 큰 격차가 있다. 정부에 따르면 기존 개별입지 방식으로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해상풍력 물량은 약 36GW다. 실제 상업운전 물량은 약 360MW로 허가 용량의 1% 수준이다(기후에너지환경부, 2026).
사업권을 확보해도 주민 협의와 환경평가, 군 작전성 검토, 항만·설치선 확보, 전력망 연결 단계에서 사업이 장기간 멈추는 사례가 많았다는 뜻이다. 허가 용량만 늘려서는 실제 전력 공급이 증가하지 않는다.
정부는 2031년까지 계획입지 방식으로 25GW 규모의 예비지구를 지정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약 20GW의 추가 보급 기반을 확보하고 누적 해상풍력 설비를 2030년 3.1GW, 2035년 25GW, 2040년 45GW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서 예비지구 25GW와 실제 가동 설비 25GW는 구분해야 한다. 예비지구로 지정된 뒤에도 기본설계와 주민 협의, 발전지구 지정, 사업자 선정, 실시계획 승인과 건설을 거쳐야 한다. 정부는 계획입지에 따른 첫 전력 공급이 빠르면 2033년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2030년 10.5GW’도 모두 상업운전에 들어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정부 설명은 2030년까지 10.5GW 규모의 사업이 준공되거나 착공 단계에 진입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다. 같은 시점의 누적 보급 전망은 3.1GW다. 정책 목표를 평가할 때 착공 용량과 실제 발전 용량을 나눠 봐야 한다.
전력망과 항만 없으면 입지만 정하고 멈춘다
계획입지 단계에서 전력계통을 함께 검토하는 것은 기존 제도와 다른 중요한 변화다. 발전단지가 완공돼도 송전선로와 접속설비가 준비되지 않으면 전력을 공급할 수 없다. 해상풍력 입지와 육상 계통을 분리해 계획하면 또 다른 지연이 발생한다.
기본설계에는 해저케이블과 육상 송전선로의 경로가 반영돼야 한다. 해상 발전단지와 멀리 떨어진 주민도 송전선로 건설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시행령이 송전선로 경과지 주민대표를 민관협의회 참여 대상으로 정한 이유다.
항만과 설치선도 병목 요인이다. 대형 터빈의 하부구조물과 블레이드를 보관하고 조립하려면 전용 항만이 필요하다. 해상에서 발전기를 설치할 수 있는 선박과 유지보수 거점도 확보해야 한다.
정부가 입지를 지정하는 것만으로 이 시설이 자동으로 갖춰지지는 않는다. 예비지구별로 계통접속 시점과 항만 이용계획, 설치선 확보 방안을 함께 공개해야 사업기간 단축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다.
계획입지제는 사업자의 인허가 위험을 정부의 사전조정 체계로 옮기는 제도다.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더 일찍 관리하는 구조로 바뀐다. 관계부처 간 조정이 늦어지면 지연의 주체만 민간에서 정부로 이동할 수 있다.
첫 예비지구가 제도의 기준이 된다
첫 예비지구 선정은 이후 25GW 계획입지의 기준을 만드는 과정이다. 어느 해역이 선택됐는지보다 어떤 자료와 절차로 선택했는지가 중요하다. 첫 사례에서 기준이 불명확하면 후속 지역에서도 같은 논란이 반복될 수 있다.
정부는 풍황과 환경, 어업, 해상교통, 군사작전, 전력계통을 동시에 검토해야 한다. 민관협의회는 주민과 어업인의 의견을 사업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 사업자는 정부가 마련한 조건 안에서 비용과 기술, 지역 상생방안을 경쟁해야 한다.
평가 기준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예비지구 선정 과정의 투명성이다. 둘째는 주민과 어업인의 의견이 발전지구 설계에 실제 반영되는지다. 셋째는 계통과 항만, 설치선이 발전단지 일정과 함께 준비되는지다.
계획입지는 해상풍력 갈등을 없애는 제도가 아니다. 입지와 인허가, 주민 협의를 사업 초기부터 한 구조에서 다뤄 갈등 비용을 줄이려는 제도다. 첫 예비지구가 지정된 이후 협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