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클러스터 경쟁 본격화…연구단지 넘어 지역산업으로,클러스터 성공 조건은
정부가 양자산업을 지역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한 클러스터 정책을 본격 추진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양자기술 연구역량과 산업기반을 지역에 집적해 연구개발과 실증, 기업 유치, 인력양성을 연결하는 양자클러스터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히 연구소를 한곳에 모으는 방식보다 양자컴퓨터와 양자센서, 양자통신 등 기술분야별로 연구기관과 기업, 장비, 인력을 묶어 산업생태계를 만드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자산업은 아직 시장 형성 초기 단계여서 특정 지역에 연구소 몇 곳을 이전하는 것만으로 산업기반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핵심 연구장비와 전문인력, 실증기업, 수요산업, 투자자본이 함께 모여야 지역 내에서 기술개발과 사업화가 반복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결국 양자클러스터의 성패는 ‘어디가 선정됐는가’보다 ‘선정 이후 무엇이 남는가’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양자클러스터는 연구단지와 무엇이 다른가
양자클러스터는 양자기술 관련 연구기관과 기업, 대학, 장비, 인력을 특정 지역에 집적해 기술개발과 사업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산업생태계형 사업이다. 기존 연구단지가 연구시설과 대학 중심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았다면, 양자클러스터는 실증과 기업 참여, 인력양성, 창업·투자까지 함께 묶는다는 점에서 범위가 더 넓다.
특히 양자기술은 연구장비 의존도가 높고 고급인력 확보가 어려운 분야다.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초저온 장비나 정밀계측 장비를 갖추기 어렵기 때문에 공용 인프라와 전문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산업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중요하다.
따라서 클러스터의 핵심은 건물이나 부지보다 공용장비와 실증환경, 전문인력, 기업 간 협업 구조에 있다. 연구기관의 수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산업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양자컴퓨터만 보는 정책은 아니다
양자산업은 크게 양자컴퓨팅과 양자통신, 양자센싱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세 분야는 필요한 기술과 인프라, 산업 수요가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지역에 모든 기능을 동일하게 배치하는 방식보다 지역별 강점을 활용하는 접근이 현실적일 수 있다.
양자컴퓨팅은 반도체와 초저온 공학, 제어전자, 소프트웨어 역량이 중요하다. 양자통신은 광통신과 네트워크, 보안기술과의 연계가 필요하고, 양자센싱은 의료와 국방, 정밀측정, 반도체 검사 등 다양한 산업과 접점이 있다.
이 때문에 지역이 보유한 기존 산업과 연구역량이 무엇인지에 따라 클러스터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 반도체 산업기반이 강한 지역은 양자컴퓨팅 부품과 제어기술, 광산업이 발달한 지역은 양자통신이나 센싱과의 연계를 검토할 수 있다.
지역산업과 연결되지 않으면 연구섬이 될 수 있다
클러스터 정책에서 가장 큰 위험은 연구기관과 시설만 모이고 지역산업과 연결되지 않는 경우다. 연구소와 대학이 좋은 성과를 내더라도 지역 기업이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거나 관련 기업이 유입되지 않으면 경제적 파급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양자기술은 아직 상용화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지역기업이 곧바로 대규모 매출을 내기는 어렵다. 대신 기존 산업의 문제를 양자기술로 해결하는 실증사업을 늘리고, 지역 중소기업이 부품과 장비, 소프트웨어 공급망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방식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양자센서를 제조업 검사나 의료영상, 국방탐지에 적용하는 실증사업이 지역에서 진행된다면 연구성과가 산업수요와 연결될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실증기업이 없다면 연구성과가 다른 지역이나 해외기업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높다.
장비와 인프라가 기업 유치의 첫 조건
양자산업은 초기 투자비가 큰 분야다. 초저온 냉각장비와 정밀 레이저, 광학장비, 측정장비, 클린룸 등 고가의 연구인프라가 필요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전문인력도 필요하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이 장비를 모두 자체적으로 갖추기는 어렵기 때문에 클러스터 내 공용장비 구축은 기업 유치의 핵심조건이 될 수 있다. 장비를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시험과 검증, 시제품 제작까지 지원할 수 있어야 기업이 지역에 머무를 유인이 생긴다.
공용장비가 있어도 이용절차가 복잡하거나 비용이 높다면 효과는 제한된다. 기업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개방형 운영체계와 기술지원 인력을 함께 두는 것이 중요하다.
인력 부족은 지역 경쟁력의 가장 큰 변수
양자산업에서 장비보다 더 중요한 자원이 인력이다. 양자역학과 전자공학, 광학, 반도체, 소프트웨어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전문인력은 전 세계적으로도 부족하다.
클러스터를 조성하더라도 핵심 연구자와 엔지니어가 수도권이나 해외로 이동한다면 지역 산업기반을 유지하기 어렵다. 지역 대학의 교육과정과 대학원 연구, 기업 인턴십, 채용 프로그램을 연계해 인력을 지역에 남게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특히 박사급 연구인력뿐 아니라 장비를 운영하고 생산공정을 관리할 실무형 엔지니어 양성도 중요하다. 산업화 단계에서는 연구자 수보다 제조와 테스트, 품질관리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대학이 단순 인력공급처에 머물러선 안 된다
양자클러스터에서 지역대학의 역할은 졸업생을 공급하는 수준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기업과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공용장비를 운영하며, 창업과 기술이전을 주도하는 핵심기관이 돼야 한다.
대학이 보유한 연구성과가 지역기업과 연결되면 기술사업화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연구성과가 논문과 특허에 머물고 기업은 외부에서 기술을 조달한다면 클러스터의 지역경제 효과는 제한된다.
따라서 클러스터 성과지표에는 논문과 특허뿐 아니라 공동연구 건수, 기술이전, 창업기업 수, 지역채용, 후속투자 규모도 포함될 필요가 있다.
양자기업을 실제로 끌어올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양자클러스터 정책에서 최종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기업의 이동이다. 연구기관과 대학이 먼저 들어가더라도 관련 기업이 따라오지 않으면 산업생태계는 형성되기 어렵다.
기업은 연구성과보다 사업환경을 보고 지역을 선택한다. 전문인력 확보 가능성, 연구장비 이용 편의성, 고객기업 접근성, 세제와 투자지원, 물류와 주거환경까지 함께 고려한다.
이 때문에 클러스터 정책은 연구비 지원과 기업유치 정책을 분리해서 운영하기보다 하나의 패키지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입주기업이 실증사업과 공공조달, 투자유치까지 연결될 수 있어야 지역에 장기간 머물 가능성이 높아진다.
수요기업이 있어야 기술이 산업으로 넘어간다
양자기술은 공급기업만으로 시장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실제로 기술을 구매하고 실증할 수요기업이 함께 있어야 산업화 속도가 빨라진다.
예를 들어 반도체 기업이 양자센서를 공정검사에 적용하거나 통신사가 양자암호통신을 실제 네트워크에서 시험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의료기관과 국방기관, 제조기업도 초기 수요처가 될 수 있다.
정부가 클러스터를 설계할 때 연구기관 수보다 수요기업과 실증사업을 얼마나 확보했는지가 중요한 이유다. 기술 공급과 수요가 같은 지역 안에서 반복적으로 연결돼야 산업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지역별 특화전략 없으면 중복투자 위험
여러 지역이 동시에 양자산업 육성을 추진할 경우 비슷한 연구시설과 장비를 중복해서 구축할 위험도 있다. 모든 지역이 양자컴퓨터와 통신, 센서 전체를 동시에 육성하려 하면 자원이 분산될 수 있다.
지역별로 기존 산업과 연구역량을 분석해 특화 분야를 정하고, 필요한 경우 지역 간 역할분담을 하는 방식이 효율적일 수 있다. 한 지역은 컴퓨팅 하드웨어, 다른 지역은 통신과 센싱을 중심으로 육성하면서 연구성과와 장비를 연계하는 방식이다.
클러스터 경쟁이 시설 유치 경쟁으로만 흐르면 장기적으로 유지비 부담만 커질 수 있다. 산업수요와 인력기반이 없는 시설은 활용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후보지역 경쟁보다 선정기준이 더 중요하다
양자클러스터 정책이 본격화되면 지방자치단체 간 유치 경쟁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첨단산업 클러스터는 지역 투자와 인재 유입, 기업 유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지자체 입장에서는 중요한 성장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정과정에서 정치적 균형이나 지역 안배가 산업적 적합성보다 앞서면 클러스터의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연구역량과 산업기반, 수요기업, 인력양성 체계, 장비 활용계획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특히 정부가 후보지역과 선정기준, 지원기간을 최종 공고하는 단계에서는 현재 발표된 정책 방향과 실제 사업조건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클러스터 정책의 성과는 발표 단계보다 선정 이후 집행에서 더 크게 갈릴 가능성이 있다.
양자산업은 단기간 일자리 사업이 아니다
양자기술은 아직 시장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아 대규모 고용이 즉시 발생하기 어려운 분야다. 클러스터를 유치했다고 해서 단기간에 수천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과도할 수 있다.
초기에는 연구자와 엔지니어, 장비운영 인력 중심의 고숙련 일자리가 먼저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이후 부품과 장비, 소프트웨어 기업이 늘어나고 상용제품이 등장하면 제조와 서비스 일자리로 확대될 수 있다.
따라서 지역경제 효과를 평가할 때 초기 고용규모만 볼 것이 아니라 기업 수와 투자액, 기술사업화, 지역인재 채용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늘어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공공조달이 초기 시장을 만드는 역할할 수 있다
양자산업처럼 초기 시장이 작은 분야에서는 공공부문이 첫 수요자가 되는 방식도 중요하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양자센서나 보안통신, 정밀측정 기술을 실증하고 구매하면 기업은 초기 매출과 레퍼런스를 확보할 수 있다.
이후 민간기업과 해외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다. 특히 스타트업은 기술력이 있어도 첫 고객을 확보하지 못해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실증과 공공조달의 연결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클러스터 지원정책에는 연구비와 시설뿐 아니라 실증사업과 초기구매 프로그램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산업생태계가 남아야 클러스터가 성공한다
양자클러스터의 성패는 연구소와 건물 몇 곳을 만들었는지로 평가하기 어렵다. 연구기관과 대학, 기업, 공용장비, 전문인력이 서로 연결돼 반복적인 기술개발과 사업화가 일어나는지가 핵심이다.
지역이 클러스터를 유치하더라도 기업과 연구자가 몇 년 뒤 빠져나간다면 지역경제에 남는 것은 시설뿐일 수 있다. 반대로 지역기업이 공급망에 참여하고 대학이 전문인력을 배출하며 신규기업과 투자자본이 계속 유입된다면 클러스터가 장기적인 산업기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양자기술은 아직 산업화 초기 단계인 만큼 지역 간 경쟁보다 산업 전체의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지역별 강점을 바탕으로 컴퓨팅과 통신, 센싱 분야를 특화하고 기업과 실증수요를 연결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양자클러스터는 연구소를 한곳에 모으는 사업이 아니라 연구와 장비, 인력, 기업, 시장을 하나의 지역 생태계로 묶는 정책에 가깝다. 결국 어느 지역이 선정되는가보다 그 지역에서 실제 기업과 일자리, 기술사업화가 얼마나 오래 이어지는지가 정책의 최종 평가기준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