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데이터센터 전력·물 사용 비교체계 제안…AI 경쟁에 붙는 ‘환경 성적표’
유럽위원회, 2026년 9월 21일 공통 등급체계와 전자라벨 제안
전력효율 PUE와 물효율 WUE를 함께 보되, 기후·가동률·폐열 재사용 조건도 따져야
최소 성능 기준은 아직 의견 수렴 단계…입법 제안은 2027년 2분기 예정
AI 데이터센터의 친환경성을 전력 사용량 하나로 판정할 수는 없다. 전기를 얼마나 쓰는지뿐 아니라 그 전력이 실제 연산으로 얼마나 쓰였는지, 냉각에 물을 얼마나 썼는지, 폐열을 다시 활용하는지, 전력망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까지 함께 봐야 한다. 유럽연합이 2026년 9월 21일 내놓은 데이터센터 공통 평가체계 제안은 바로 이 지점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다.
유럽위원회는 이날 데이터센터의 지속가능성을 비교하는 공통 EU 등급체계와 전자라벨을 제안하고, 최소 성능 기준 도입을 위한 12주 공개 의견수렴도 시작했다. 다만 이는 확정 시행이 아니라 제안과 준비 단계다. 최소 기준에 대한 입법 제안은 2027년 2분기로 예고돼 있어, 지금 단계에서 “EU가 이미 강제 등급제를 시행했다”거나 “비효율 센터를 퇴출하기 시작했다”고 쓰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전력만이 아니라 물과 열까지 묻는 체계
이번 제안의 중심에는 PUE와 WUE가 있다. PUE는 데이터센터에 들어온 전체 전력 가운데 서버와 저장장치 같은 정보기술 장비가 아닌 냉각·전력변환·부대설비가 얼마나 더 쓰는지를 보여주는 대표 지표이고, WUE는 전산 처리를 위해 물을 얼마나 소비하는지를 나타낸다. 유럽위원회가 공개한 초안은 PUE와 WUE를 각각 A부터 G까지 등급화해 전자라벨로 표시하도록 설계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라벨에는 냉방 수요를 가늠하는 냉방도일, 전력망에 유연성 기능을 제공하는지 여부, 폐열 재사용 준비 여부가 함께 들어간다. 재생에너지 사용량도 단순 총량이 아니라 전력구매계약, 보증서, 현장발전 등 조달 방식별로 구분한다. 같은 1메가와트시를 써도 어떤 전력을 언제, 어디서 끌어왔는지까지 들여다보겠다는 뜻이다.
왜 같은 PUE라도 같은 점수가 아닐 수 있나
데이터센터의 환경 성적표를 읽을 때 가장 먼저 구분해야 할 것은 비교 조건이다. 더운 지역의 센터는 냉각 부담이 커지고, 물 스트레스가 높은 지역에서는 같은 WUE도 더 무겁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유럽위원회가 라벨 설명서에 PUE와 기후조건의 관계, PUE와 WUE의 상충관계, 지역별 물 스트레스의 차이를 함께 설명하도록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버 가동률과 시설의 연식도 변수다. 같은 건물이라도 아직 장비가 덜 찬 신설 센터와 이미 높은 점유율로 운영되는 성숙한 센터는 효율 수치가 다르게 나온다. 따라서 AI용 서버가 많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비친환경”이라 단정할 수 없고, 반대로 전력 사용량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친환경 시설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연산 능력과 환경 효율은 같은 항목이 아니다.
공시의 목적은 막연한 전력난 담론을 숫자로 바꾸는 것
EU의 기존 제도는 이미 일정 규모 이상 데이터센터의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에너지효율지침에 따르면 설치된 IT 전력수요가 500킬로와트 이상인 시설은 매년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하며, 2024년 위임규정으로 유럽 공통 데이터베이스와 보고 지표가 마련됐다. 유럽위원회가 2026년 9월 보고서에서 밝힌 첫 보고기간 자료를 보면 770개 데이터센터가 보고했고, 이는 보고 대상 추정치의 약 36% 수준이었다.
이 수치는 아직 유럽 전체의 완전한 성적표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표본이 덜 찬 상태에서 국가별 순위를 매기거나 AI가 데이터센터 전력 전체를 먹어치운다고 일반화하면 오독이 된다. 그럼에도 이번 제안이 의미 있는 이유는 전력 사용 증가라는 막연한 공포를 운영 데이터, 냉각수, 폐열, 전력 조달 구조 같은 비교 가능한 항목으로 바꾸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앞으로 사업자가 확인할 질문
앞으로 유럽 데이터센터 사업자가 받아들 질문은 단순하다. 전기를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그 전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고 있는가. 물 사용을 줄이면서도 냉각 성능을 유지하는가. 남는 열을 지역난방이나 인근 시설에 연결할 수 있는가. 전력망 혼잡 시간대에 부하를 조절할 수 있는가. AI 경쟁이 본격화할수록 데이터센터의 경쟁력은 연산량만이 아니라 이런 운영 성과의 공개 가능성과 검증 가능성까지 포함하게 된다.
EU가 추진하는 것은 ‘AI를 멈추자’는 규제가 아니라, 늘어나는 컴퓨팅 인프라를 어떤 기준으로 비교하고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공통 언어다. 데이터센터의 친환경성을 판단하는 잣대가 이제 전력 사용량 하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