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록스를 벗자 운동장이 ‘거룩한 영토’가 됐다…이병철 「맨발의 귀환」
비에 젖은 흙에서 태초의 기억을 불러낸 생태적 자유시
촉각에서 창조의 언어로, 우레탄과 인조잔디 비판까지 확장

비 내린 학교 운동장에는 흙물이 고여 있다. 가장자리의 우레탄 트랙과 그 곁에 걸쳐 자란 잡풀 사이로 운동화 자국이 이어진다. 이병철 시인의 「학교 운동장, 맨발의 귀환(歸還)」은 젖은 운동장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화자는 크록스를 벗어 던지고 운동장 중심으로 걸어간다. 걷기 편한 합성수지 신발을 벗는 행동은 흙과 몸 사이의 마지막 물질을 걷어내는 선택이다. 발바닥이 땅에 닿으면서 운동장은 눈으로 보는 풍경에서 몸으로 읽는 공간으로 바뀐다.
이병철의 첫 시집 『어둠 속으로 기어가는 모르스 부호』에 수록된 이 작품은 맨발 걷기의 효능을 설명하지 않는다. 작품이 주목하는 것은 비에 젖은 흙과 피부가 만나는 순간이다. 몸에서 오랫동안 멀어졌던 감각이 돌아오고, 감각은 기억과 생태적 사유를 차례로 깨운다.
제목에서 먼저 살펴야 할 말은 ‘맨발’보다 ‘귀환’이다. 맨발은 현재의 행동이지만 귀환은 이전에 떠나온 장소를 전제한다. 화자는 운동장에 처음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잃어버린 감각과 관계를 되찾으러 가는 사람이다.
첫 연은 운동장을 구성하는 물질을 차례로 제시한다. 흙물과 우레탄, 잡풀과 운동화 자국, 크록스와 맨발이 한 장면에 놓인다. 자연과 인공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설명하기 전에 서로 다른 재료를 운동장 위에 배치한 것이다.
비는 이 공간을 변화시킨다. 굳어 있던 운동장은 물을 머금고 “폭신한 양탄자”가 된다. 땅은 사람이 밟는 바닥에서 몸을 받아주는 부드러운 표면으로 바뀐다. 화자의 걸음도 이동 행위에서 접촉의 경험으로 전환된다.
두 번째 연에서는 시선보다 촉각이 앞선다. 가슴은 폭신해지고 발바닥은 몽글몽글해진다. 흙의 부드러움이 발에서 마음으로 번지며 물질과 감정의 경계가 낮아진다.
발바닥을 자극하는 미세한 모래 알갱이는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모래가 신체 내부에 들어간다는 뜻은 아니다. 잊고 지낸 감각이 그만큼 선명하게 되살아났다는 시적 표현이다.
화자는 이를 “문명 이전의, 가장 원시적인 대화”라고 부른다. 언어와 문자, 디지털 기기가 없는 상태에서 몸과 흙이 접촉으로 주고받는 신호다. 발바닥은 인간과 대지가 만나는 가장 낮고 직접적인 감각기관이 된다.
이 대화에는 상대를 소유하거나 해석하려는 태도가 나타나지 않는다. 화자는 흙을 바라보는 위치에서 내려와 흙 위에 몸을 놓는다. 자연을 관찰하는 사람에서 자연과 접촉하는 존재로 자신의 자리를 바꾼다.
세 번째 연에서 촉각은 기억으로 이어진다. 발자국이 흙을 파고들자 비릿한 흙냄새 속에서 잊었던 시간이 살아난다. 눈으로 본 풍경보다 냄새와 발바닥의 감각이 과거를 더 빠르게 불러낸다.
여기서 작품은 개인의 추억을 창조의 시간으로 확대한다. “태초(太初)에 흙이 있었고”라는 문장은 운동장을 인간 존재의 기원과 연결한다. 화자 자신도 흙 한 줌으로 빚어진 피조물이었음을 떠올린다.
‘태초’와 ‘피조물’은 종교적 언어다. 흙에서 인간이 만들어졌다는 창조의 서사가 학교 운동장의 젖은 바닥 위에 겹쳐진다. 맨발로 흙을 밟는 행동은 어린 시절의 회상과 함께 창조 이전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의식처럼 제시된다.
이 지점에서 귀환의 의미가 넓어진다. 화자는 과거에 뛰놀던 운동장으로 돌아가는 동시에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지 않았던 상태를 상상한다. 작품 속 귀환은 장소와 시간, 존재의 기원을 향한 세 겹의 이동이다.
네 번째 연에서는 개인적 감각이 사회적 발언으로 전환된다. 화자는 우레탄이 “거룩한 영토”를 침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운동장은 흙이 남아 있는 생활 공간에서 보호해야 할 생태적 영역으로 격상된다.
우레탄은 첫 연부터 운동장 가장자리에 존재했다. 당시에는 흙과 함께 풍경을 구성하는 하나의 재료였지만, 후반부에서는 침범의 주체로 성격이 바뀐다. 화자의 발이 흙과 가까워질수록 인공 재료를 바라보는 태도도 비판적으로 변한다.
인조잔디는 “박제된” 공간으로 표현된다. 살아 있는 잔디의 색과 모양을 닮았지만 뿌리를 내리거나 계절에 따라 자라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시인은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을 생명이 멈춘 초록으로 바라본다.
“숨 쉬지 못하는 초록의 주인”이라는 표현에는 역설이 담겨 있다. 초록은 보통 생명과 성장을 나타내지만 이 작품의 초록은 호흡하지 못한다. 겉으로 자연을 닮은 표면이 실제 흙과 생명을 밀어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작품은 우레탄과 인조잔디를 시설의 기능보다 감각과 생명의 관점에서 판단한다. 학교 운동장에 어떤 재료가 적합한지를 기술적으로 비교하지 않는다. 흙을 밟을 기회가 사라질 때 인간이 잃는 감각과 기억을 묻는다.
현실의 학교 운동장은 안전과 배수, 먼지, 활용도, 유지관리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해 조성된다. 따라서 이 시의 문제의식을 곧바로 시설 정책의 결론으로 옮길 수는 없다. 작품이 제기하는 질문은 더 근원적이다. 편리하고 균일한 표면을 얻는 동안 몸이 자연과 만날 장소를 지나치게 줄이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물음이다.
자연과 인공을 선명하게 나누는 방식에는 한계도 있다. 작품에서 흙은 거룩한 영토와 천국으로 높아지고, 우레탄과 인조잔디는 침범과 박제의 이미지에 놓인다. 흙은 선하고 인공 재료는 생명을 억압한다는 구도가 다소 빠르게 형성된다.
그러나 이 구분은 관념에서 먼저 나온 것이 아니다. 비에 젖은 흙을 직접 밟은 신체 경험에서 출발한다. 발바닥의 촉감과 흙냄새, 발자국의 깊이가 생태적 판단을 만들어낸다. 구체적인 감각이 메시지보다 앞에 놓인다는 점에서 작품은 선언문과 거리를 둔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인조(人造)의 숲”을 지나 “흙의 심장”으로 걸어간다. 인조의 숲은 우레탄과 인조잔디로 덮인 생활환경을 압축한 표현이다. 흙의 심장은 생명이 시작되고 다시 이어지는 장소를 가리킨다.
발자국이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는 순간 걷는 사람은 식물의 형상을 얻는다. 발은 뿌리가 되고 운동장은 대지가 된다. 화자는 흙 위에 서 있는 인간에서 흙과 연결된 생명으로 위치를 바꾼다.
“나는 비로소 갇혀 있던 건물 밖으로 나와”라는 문장도 중요하다. 건물은 화자를 물리적으로 둘러싼 공간이면서 자연과 분리된 생활을 상징한다. 건물 밖으로 나오는 일은 문을 통과하는 행동보다 감각의 폐쇄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에 가깝다.
작품은 화자가 “대지의 일부가 되어 놀”면서 끝난다. 자연을 보호하겠다는 선언이나 제도를 바꾸자는 요구로 마무리하지 않는다. 어린아이처럼 흙에서 노는 몸을 제시하며 귀환을 완성한다.
이 결말은 시인의 교육자 이력과도 겹쳐 읽힌다. 이병철은 강원도 교단에서 36년 동안 근무했으며 현재 횡성 춘당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다만 작품 속 화자를 시인과 완전히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시인의 생활 환경은 작품을 이해하는 배경이지만 시적 화자는 텍스트 안에서 별도로 구성된 존재다.

「학교 운동장, 맨발의 귀환」은 생태적·회고적 성격을 지닌 자유시다. 문장에는 산문성이 있지만 행과 연이 감각의 흐름을 분명하게 조절한다. 관찰에서 접촉으로, 접촉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생태적 발언으로 이동하는 구조다.
작품의 리듬은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걸음과 닮았다. 짧은 행이 발걸음처럼 이어지고, 연이 바뀔 때마다 화자의 인식이 깊어진다. 첫 연의 운동장 가장자리에서 시작한 움직임은 마지막 연의 흙의 심장에 도착한다.
한자 병기도 작품의 특징이다. 귀환(歸還), 중심(中心), 변신(變身), 감각(感覺), 태초(太初), 피조물(被造物), 박제(剝製), 천국(天國), 인조(人造), 대지(大地)가 한글과 함께 놓인다.
한자는 일상적인 맨발 걷기에 존재론적 무게를 더한다. ‘중심’은 운동장의 중앙이자 존재의 중심으로, ‘귀환’은 공간적 복귀이자 근원으로의 회복으로 읽히게 한다. ‘태초’와 ‘피조물’은 작품의 종교적 상상력을 분명히 드러낸다.
반면 한자 병기가 자주 등장하면서 일부 시어는 스스로 의미를 펼치기 전에 개념으로 고정된다. 흙과 맨발, 발자국의 이미지가 충분히 강한 만큼 병기를 줄였다면 감각적 흐름이 더 자연스러웠을 가능성도 있다. 작품의 개성과 함께 검토할 수 있는 형식적 특징이다.
이병철의 첫 시집 『어둠 속으로 기어가는 모르스 부호』는 강원도의 산과 바다, 도시 노동과 전쟁의 폐허를 오가며 단절된 존재에게 신호를 보낸다. 「스파이더맨」에서는 창문 안의 화자가 외벽 노동자를 바라보고, 「유형의 땅 2」에서는 전장의 참전자가 어머니를 부른다.
「학교 운동장, 맨발의 귀환」에서 연결의 대상은 사람을 넘어 대지로 확장된다. 이번에는 카메라나 편지가 아니라 발바닥이 신호를 보낸다. 흙은 촉감과 냄새, 기억으로 응답한다.
이 작품의 성취는 맨발 걷기를 특별한 치유 행위로 포장한 데 있지 않다. 매일 지나치던 운동장을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다시 시작되는 장소로 바꾼 데 있다. 익숙한 공간은 발바닥의 감각을 통과하면서 낯설고 근원적인 장소가 된다.
귀환은 과거의 자연으로 완전히 되돌아가자는 요구와도 다르다. 현대의 학교에서 우레탄과 인조잔디를 모두 걷어내자는 정책적 주장이 작품의 중심은 아니다. 시가 요청하는 것은 인공적인 생활환경 속에서도 몸이 흙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남겨두자는 감각적 환기에 가깝다.
비가 그친 운동장에서 화자가 남긴 발자국은 곧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짧은 접촉은 인간이 대지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일부라는 기억을 되살린다. 이병철이 말하는 귀환은 먼 과거로의 후퇴가 아니라 발밑의 세계와 다시 관계를 맺는 현재의 움직임이다.
작품 정보: 이병철, 「학교 운동장, 맨발의 귀환(歸還)」, 『어둠 속으로 기어가는 모르스 부호』, 17~1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