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소송은 왜 헌법 문제가 됐나…법원이 국가 감축의무를 판단하는 기준
기후소송이 더는 환경운동의 상징적 수단에만 머물지 않는 이유는, 법원이 이제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정책을 정책 선택의 영역만이 아니라 기본권 보호의무와 법치의 문제로 함께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핵심은 정부가 목표를 세웠는지 자체가 아니라, 그 목표가 권리침해를 막기에 충분한지, 법률이 정한 기준과 충돌하지 않는지, 미래세대에 부담을 미루지 않는지, 그리고 실제 이행 경로가 수치상으로 성립하는지를 따지는 데 있다.
이 흐름은 사건 수에서도 확인된다. 런던정경대 그랜섬연구소의 2026 스냅샷은 2025년에 새로 제기된 기후소송이 249건, 1986년 이후 누적 사건이 3600건을 넘었다고 정리했다. 사건이 제기된 국가는 62개국으로 늘었다. 유엔환경계획도 2023년 보고서에서 2022년 말 기준 전 세계 기후소송이 65개 관할에서 2180건에 이르렀다고 집계했다. 숫자 자체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소송의 논점이 배출시설 허가나 개별 환경분쟁을 넘어, 국가의 감축목표와 헌법상 권리보호 의무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한국 헌재가 본 기준은 ‘환경권’과 ‘과소보호’였다
한국 헌법재판소는 2024년 8월 29일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사건’에서 이 기준을 비교적 선명하게 제시했다. 헌재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1항을 헌법불합치로 판단하면서도, 법률이 즉시 비워지는 혼란을 막기 위해 2026년 2월 28일까지 계속 적용하도록 했다. 다만 시행령의 2030년 40% 감축 수치 자체는 기각했고, 정부가 2023년 기본계획에서 정한 부문별·연도별 감축목표는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이 결정에서 헌재가 내세운 심사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국가가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에 대응해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했는지를 보는 과소보호금지원칙이고, 다른 하나는 행정부가 법률이 정한 감축체계를 자의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는 법률우위원칙이다. 헌재는 정부가 기준연도는 총배출량으로, 목표연도는 순배출량으로 계산해 감축률을 맞춘 방식이 법 문언과 체계에 어긋난다고 봤다. 그 결과 2030년 목표치는 법률과 시행령이 정한 40% 감축에 실제로 미달하도록 설계됐고, 이런 계획은 제도적 실효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헌재가 특히 문제 삼은 대목은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경로가 법률에 정량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단기 목표만 있고 이후 부담을 뒤로 미루면, 현재 세대의 완화된 부담이 미래세대의 급격한 자유 제한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논리다. 이 때문에 한국의 기후소송은 단순한 정책 선호 다툼이 아니라 환경권과 미래세대 부담 이전의 헌법문제로 정식화됐다.
독일은 ‘미래 자유’, 유럽인권재판소는 ‘실효적 보호’를 앞세웠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2021년 기후보호법 결정은 한국 결정과 닮은 점이 많다. 독일 재판소는 2030년까지의 감축경로만 두고 그 이후를 충분히 구체화하지 않은 법률이 기본권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봤다. 판단의 핵심은 현재 허용된 배출이 남은 탄소예산을 줄여 미래의 자유를 사실상 압박한다는 데 있었다. 한 세대가 배출 여지를 많이 쓰면 다음 세대는 훨씬 더 급격한 감축과 강한 자유 제한을 떠안게 되므로, 입법자는 감축부담을 시간에 걸쳐 비례적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인권재판소는 2024년 스위스 사건에서 접근법을 조금 달리했다. 이 재판소는 기후변화의 심각한 악영향으로부터 국가가 개인을 실효적으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유럽인권협약 8조에 포함된다고 봤다. 그리고 스위스가 국가 온실가스 배출 한계를 탄소예산 등으로 충분히 계량화하지 않았고, 과거 감축목표도 달성하지 못했으며, 적시에 적절한 법제와 조치를 마련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기준은 목표의 존재 여부보다, 권리보호를 가능하게 하는 국내 규제체계가 실제로 작동하는지에 가까웠다. 동시에 재판소는 협회에 원고적격을 인정하고 국내 법원이 본안을 진지하게 심리하지 않은 점을 별도로 문제 삼았다.
네덜란드는 ‘최저선’ 판단, 한국은 ‘체계 일치’까지 본다
네덜란드 대법원의 2019년 우르헨다 판결은 국가가 2020년 말까지 1990년 대비 최소 25% 감축을 해야 한다고 명령한 대표 사례다. 이 판결은 생명권과 사생활 보호에 관한 유럽인권협약상 적극적 보호의무를 근거로 삼았다. 위험이 중대하고 과학적 불확실성이 완전한 면책사유가 될 수 없을 때, 국가는 최소한의 방어선 아래로 내려갈 수 없다는 취지다.
다만 한국 헌재 결정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다고 볼 여지가 있다. 단순히 목표 수치가 낮으냐만 본 것이 아니라, 법률의 문언, 시행령의 수치, 기본계획의 계산방식, 부문별 경로가 서로 맞물려 실제 감축이 가능한 구조인지까지 따졌다. 다시 말해 한국형 기준은 권리침해 여부와 함께 ‘법률-시행령-행정계획’의 정합성을 함께 심사한 사례에 가깝다.
결국 법원이 묻는 것은 네 가지다
비교해 보면 나라별 문구는 달라도 법원이 반복해서 묻는 질문은 대체로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기후위기가 생명·건강·환경·자유 같은 헌법상 또는 인권조약상 권리를 현실적으로 위협하는가. 둘째, 국가의 감축목표와 경로가 그 위협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보호조치인가. 셋째, 목표 수치와 계산방식, 중간 경로, 법률상 근거가 서로 충돌하지 않는가. 넷째, 감축 부담을 미래세대에 과도하게 넘기지 않도록 지금부터 예측 가능한 이행 틀을 만들었는가다.
이 기준은 법원이 정부 대신 배출량을 직접 설계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 헌재도 부문별 수치를 새로 쓰지 않았고, 스위스 사건의 유럽인권재판소도 구체적 정책수단 선택은 국가의 재량영역으로 남겼다. 그러나 재량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호한 목표, 뒤로 미룬 경로, 법률과 어긋나는 계산방식까지 허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한국에서는 헌재 결정 뒤 2026년 9월 탄소중립기본법 개정문에 국가 감축목표가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지 않도록 설정돼야 한다는 원칙과 2035년 이후 단계별 중장기 목표 설정 체계가 반영됐다. 다만 헌법소송의 의미는 개정 여부 자체보다, 앞으로도 법원이 국가 감축의무를 심사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볼 것인지가 이미 드러났다는 데 있다. 기후소송은 이제 정책을 압박하는 운동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헌법과 권리보호의 언어가 됐다.
자료: 헌법재판소,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목표 관련 결정 요지(2024.8.29); 런던정경대 그랜섬연구소, Global Trends in Climate Change Litigation: 2026 Snapshot(2026.6.25); 유엔환경계획, Global Climate Litigation Report: 2023 Status Review(2023.7);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Constitutional complaints against the Federal Climate Change Act partially successful(2021.4.29); 유럽인권재판소, Verein KlimaSeniorinnen Schweiz and Others v. Switzerland 보도자료 및 판결(2024.4.9); 네덜란드 대법원, Urgenda 판결 영문본(2019.12.20); 국가법령정보센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일부개정문(2026.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