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바닥 퇴적물은 인류세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크로퍼드호 ‘황금못’ 후보가 탈락한 이유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크로퍼드호 바닥 퇴적물은 인간 활동이 지구 시스템을 바꿨다는 흔적을 매우 정밀하게 남긴 기록으로 평가된다. 다만 그것이 곧바로 인류세를 공식 지질시대로 인정받게 한다는 뜻은 아니다. 국제층서위원회 체계에서 새 시대를 정하려면 한 지점의 선명한 변화만이 아니라, 그 경계가 서로 다른 환경의 지층에서도 같은 시점으로 널리 대조될 수 있어야 하는데, 크로퍼드호 제안은 이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제층서위원회 산하 제4기층서소위원회는 2024년 3월 인류세를 홀로세 뒤의 공식 시대로 추가하는 안건을 부결했고, 국제층서위원회와 국제지질과학연맹은 같은 해 3월 26일 그 결정을 승인했다. 최신 국제층서표에도 인류세는 들어 있지 않으며,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홀로세 메갈라야절이 현재 구간이다.
크로퍼드호는 왜 유력 후보였나
크로퍼드호가 주목받은 이유는 퇴적물이 해마다 얇은 층으로 쌓이는 연층 구조를 보여 연 단위 판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인류세 작업반은 이 호수의 퇴적층에서 핵실험 유래 플루토늄, 화석연료 연소를 반영하는 구형 탄소질 입자, 질소 동위원소 변화, 산업화 이후 오염과 생태 변화 신호가 함께 나타난다고 봤다.
작업반은 2023년 크로퍼드호를 인류세 경계를 찍을 후보 지점으로 택했고, 2023년 10월 말 공식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 제안은 인류세를 세와 절의 등급으로 신설하고, 경계의 1차 표지를 1952년을 가리키는 플루토늄 급증에 두려 했다. 2025년 후속 연구에서는 개별 연층 분석을 통해 경계가 1952년 여름 석회질 얇은 층과 그 위 가을 유기층의 접촉면에 놓인다는 해석이 제시됐다. 초기 후보 논문이 1950년을 언급했던 것과 달리, 제안은 제출 단계에서 1952년으로 다듬어진 셈이다.
공식 부결 사유와 과학적 반론은 같지 않다
중요한 점은 국제층서위원회와 국제지질과학연맹의 공동 발표가 부결 사실과 승인 절차를 공표했을 뿐, 왜 과학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봤는지에 대한 세부 판정문까지 내놓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공식 문서에서 분명한 것은 제안이 제4기층서소위원회 투표에서 필요한 60% 찬성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공개 보도와 학계 논평을 종합하면, 표결은 단순히 “인류의 흔적이 보이느냐”보다 “그 흔적을 지질시대 경계로 표준화할 수 있느냐”를 둘러싼 판단이었다.
국제층서위원회의 GSSP 규정은 경계를 알아볼 1차 표지가 분명해야 하고, 보조 표지들이 따라야 하며, 무엇보다 서로 다른 퇴적 환경에서 장거리 대조가 가능해야 한다고 본다. 퇴적이 거의 연속적이어야 하고, 지점은 접근성과 보존성도 갖춰야 한다. 새 지질시대의 경계는 특정 지역의 환경사 기록이 아니라 전 지구적 시간표의 기준점이기 때문이다.
크로퍼드호 반대 논리는 바로 이 대목에 집중됐다. 후속 비판 논문은 크로퍼드호가 해상도가 매우 높다는 장점은 인정하면서도, 작은 호수의 특수한 퇴적 환경이 전 지구 지층을 대표하기 어렵다고 봤다. 제안의 주표지였던 인공 방사성핵종 낙진은 전 세계에 널리 퍼졌지만, 실제 지층에 남는 방식은 호수, 바다, 이탄지, 빙하처럼 저장 매체마다 다르다. 보조 표지로 제시된 구형 탄소질 입자나 화학 변화도 기록의 세기와 형태가 환경 의존적이어서, 하나의 경계선을 모든 퇴적 환경에 같은 정밀도로 옮겨 심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왔다.
‘호수 퇴적물로 충분한가’에 대한 답
독자의 질문에 대한 짧은 답은 이렇다. 호수 바닥 퇴적물은 인간 활동의 지질학적 흔적을 증명하는 데는 매우 강력한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인류세라는 공식 지질시대를 확정하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 증거의 존재와 표준 경계의 채택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크로퍼드호 연구는 인류가 남긴 중반 20세기 전환 신호를 연 단위로 읽어낸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한 자료다. 부결 이후에도 인류세라는 용어는 지구시스템과 환경변화를 설명하는 비공식 개념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다만 층서학의 언어로는, “중요한 증거가 있다”는 판단과 “지질시대 경계로 공인할 만큼 전 지구적으로 대조 가능하다”는 판단 사이에 아직 간극이 남아 있다는 것이 이번 결정의 핵심에 가깝다.
결국 크로퍼드호 후보 탈락의 이유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호수 퇴적물은 인류세 논쟁의 강한 증거였지만, 국제층서위원회가 요구하는 GSSP 기준, 특히 전 지구적 대조 가능성과 대표성에 대해 충분한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료: International Commission on Stratigraphy, Joint statement by the IUGS and ICS on the vote by the ICS Subcommission on Quaternary Stratigraphy(2024-03-26); International Commission on Stratigraphy, Global Boundary Stratotype Sections and Points(확인일 2026-10-16); International Commission on Stratigraphy, International Chronostratigraphic Chart v2026/06(2026); McCarthy et al., The varved succession of Crawford Lake, Milton, Ontario, Canada as a candidate Global boundary Stratotype Section and Point for the Anthropocene series(2023); McCarthy et al., High-resolution analysis of the varved succession at Crawford Lake across the base of the proposed Crawfordian stage and Anthropocene series(2025); Head, Chronostratigraphic grounds for the decision against formalizing an Anthropocene Epoch(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