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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티는 누구이며 어떻게 홍해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커졌나…자이디 부흥운동에서 사나 점령까지

예멘의 후티는 처음부터 홍해 항로를 겨냥한 무장세력이 아니었다. 이들은 북부 사다를 중심으로 형성된 자이디 종교·사회 부흥운동에서 출발했고, 2004년 예멘 중앙정부와의 전쟁을 거치며 군사조직으로 재편됐으며, 2014년 9월 수도 사나를 장악하면서 국가 권력의 핵심으로 진입했다. 오늘의 후티를 이해하려면 이 세 단계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 종파 대립만으로 설명하면 왜 이들이 지역 운동에서 국가급 무장세력으로 커졌는지, 또 왜 홍해 안보까지 흔들 수 있게 됐는지 놓치게 된다.

후티의 공식 명칭은 안사르 알라다. 현재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이유는 이들이 예멘 북서부의 광범한 지역과 홍해 연안에 걸친 영향력을 바탕으로 미사일·드론·해상 위협 능력을 구축했고, 그 결과 예멘 내전의 한 축을 넘어 국제 해상교통의 위험 변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변화도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국내 권력 공백, 지방 엘리트의 불만, 옛 정권 세력과의 일시적 동맹, 그리고 외부 군사 지원이 차례로 겹치면서 지금의 후티가 만들어졌다.


출발점은 북부 자이디 공동체의 방어적 부흥운동이었다


후티의 뿌리는 1990년대 예멘 북부에서 커진 자이디 정체성 위기의식에 있다. 북예멘의 지배 전통과 깊이 연결돼 있던 자이디 공동체는 공화정 체제 정착 이후 정치적 영향력이 줄었고, 통일 예멘 시기에는 사다 일대에서 살라피·와하비 계열 종교 네트워크가 확장되면서 문화적·종교적 압박을 느꼈다. 이 환경에서 청년 교육, 종교 강연, 여름 캠프를 축으로 한 자이디 부흥운동이 형성됐고, 훗날 후티로 불리는 세력도 여기서 나왔다.

이 단계의 후티를 단순한 친이란 무장조직으로 보는 해석은 시기를 거꾸로 읽는 셈에 가깝다. 초창기 운동의 핵심은 북부 자이디 사회의 자기방어와 도덕적 갱신, 중앙정부의 부패 비판, 지역 소외에 대한 반발이었다. 물론 반미·반이스라엘 구호도 점차 강해졌지만, 출발점 자체는 예멘 내부 질서의 변화에 대한 지역적 반응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후티의 성장은 애초부터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이디 색채는 분명했지만, 지지 기반을 넓힌 동력에는 북부 지방의 경제적 소외, 사나 중심 권력에 대한 반감, 알리 압둘라 살레 정권의 후견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함께 작동했다. 후티가 이후 군사세력으로 변한 것도 이 사회적 불만을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4년 충돌은 운동을 무장반란으로 바꾼 분기점이었다


후티가 결정적으로 달라진 시점은 2004년이다. 당시 예멘 정부는 운동의 핵심 인물이던 후세인 바드르 앗딘 알후티를 체포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사다 일대 충돌이 본격적인 전쟁으로 번졌다. 후세인은 같은 해 사망했지만, 그 죽음은 오히려 운동을 약화시키지 않고 상징 자산으로 만들었다. 이후 2010년까지 이어진 이른바 여섯 차례의 사다 전쟁은 후티를 설교와 동원 중심의 운동에서 전투 경험과 지휘 체계를 갖춘 반군으로 변모시켰다.

이 과정에서 후티는 두 가지를 얻었다. 하나는 산악지대 전투와 지역 사회 동원에 익숙한 전쟁 조직으로서의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중앙정부가 북부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서사다. 정부의 강경 진압은 후티를 고립시키기보다 오히려 북부 일부 부족과 주민들 사이에서 정당성을 키우는 역효과를 냈다.

다만 2004년 전쟁을 오로지 종파전으로만 규정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자이디 공동체의 정체성 갈등이 바탕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충돌의 직접 계기는 국가의 억압적 대응과 정권 비판 세력에 대한 통제 강화였다. 다시 말해 후티는 종교운동이었지만, 무장세력으로 커진 경로는 예멘 국가의 통치 실패와 깊게 연결돼 있었다.


2011년 이후의 권력 공백과 2014년 사나 점령이 세력 확장의 결정판이 됐다


후티의 세력 확장은 2011년 아랍권 봉기 이후 예멘 전환기에 가속했다. 알리 압둘라 살레가 물러난 뒤에도 국가기관은 재편에 실패했고, 과도정부를 맡은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정부는 경제난과 권력 분열, 개혁 지연으로 빠르게 지지 기반을 잃었다. 후티는 한편으로는 국민대화회의 같은 공식 정치 과정에 참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북부 현장에서 군사적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2014년에는 이중 전략이 결실을 맺었다. 연료보조금 축소와 정부 무능에 대한 불만이 커진 상황에서 후티는 반부패·반무능 구호를 앞세워 대중적 명분을 확보했고, 동시에 옛 적이던 살레 측 세력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군사적 추진력을 얻었다. 이 동맹은 이념적 화해라기보다 공동의 적을 겨냥한 거래에 가까웠다. 살레에게는 자신을 몰아낸 세력을 흔들 기회였고, 후티에게는 수도 진입에 필요한 군사·행정 네트워크를 얻는 통로였다.

결정적 장면은 2014년 9월 21일 사나 진입이다. 유엔 중재 아래 휴전과 권력분점 합의가 체결됐지만, 다음 날 후티 전투원들은 지역 군사사령부 본부를 장악했다. 이후 2015년 1월에는 대통령궁과 주요 국가기관까지 장악하면서 과도정부를 사실상 붕괴시켰다. 후티가 반군에서 국가 권력 경쟁자로 바뀐 순간은 2004년이 아니라 2014년 사나 점령이었다고 봐야 하는 이유다.

이 대목에서도 다른 설명을 함께 봐야 한다. 후티의 성장을 이란 지원의 결과로만 보면, 왜 하필 2014년에 수도 장악이 가능했는지 설명이 부족하다. 반대로 국내 불만과 정권 붕괴만 강조하면, 이후 후티가 어떻게 장거리 타격과 해상 위협 능력까지 갖추게 됐는지 빠진다. 실제 변화는 예멘 내부의 권력 공백과 외부 지원이 순차적으로 결합하면서 일어났다.


예멘 북부 권력 장악이 홍해 위협으로 이어졌다


사나 점령 뒤 후티는 더 이상 지방 반군이 아니게 됐다. 유엔과 인도주의 기구 문서에서 지금도 후티는 예멘의 넓은 북부 지역을 통치하는 사실상의 권력으로 다뤄진다. 2025년 유엔 예멘 결과보고서는 후티가 통제하는 사실상 권력 지역에 인도주의 수요의 상당 부분이 집중돼 있다고 적었다. 이는 후티가 단지 전선을 지키는 세력이 아니라 주민 통제, 조세·치안·동원 체계를 함께 운영하는 준국가 행위자라는 뜻에 가깝다.

이 지위는 홍해 문제와 바로 연결된다. 북서부 고지대의 정치·군사 기반, 서부 해안 접근성, 장기간 전쟁으로 축적된 미사일·드론 운용 능력이 합쳐지면서 후티는 예멘 내전의 전선을 넘어 바브엘만데브와 홍해 항로를 압박할 수 있게 됐다. 국제해사기구는 2023년 11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홍해 국제해운을 겨냥한 공격이 최소 69건 기록됐다고 밝혔고, 유엔 안보리는 2024년 결의 2722호에서 후티의 상선 공격 중단을 요구했다.

다만 공격 양상은 계속 같은 강도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유엔 사무총장의 2026년 4월 9일 보고서는 직전 보고 이후 기간에는 홍해 상선 공격의 신규 사건이 없었다고 적었다. 그렇지만 2026년 들어서도 국제해사기구와 안보리는 홍해와 바브엘만데브의 상선 공격 및 위협 중단을 거듭 촉구했다. 이는 후티의 해상 위협이 상시적 대규모 공세라기보다, 지역 정세와 전장 계산에 따라 강약을 조절하는 압박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후티의 성장사는 세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1990년대에는 북부 자이디 공동체의 방어적 부흥운동이었고, 2004년 이후에는 국가의 강경 진압 속에서 전쟁조직으로 바뀌었으며, 2014년 사나 점령 뒤에는 예멘 국가의 일부를 대체하는 권력으로 올라섰다. 오늘 홍해를 위협하는 후티는 처음부터 해상세력이어서가 아니라, 예멘 내부 권력 붕괴와 장기전, 외부 개입이 겹치며 지역 운동이 준국가 군사행위자로 변한 결과다.

자료: 유엔 안보리 예멘 전문가패널, Annex 22: Background on the Houthi movement(2018); 유엔 인권이사회, A/HRC/42/CRP.1(2019); 유엔 예멘 특사실, Special Envoy Yemen 팩트시트(열람 2026년 10월); 유엔, Letter dated 9 April 2026 from the Secretary-General addressed to the President of the Security Council, S/2026/310(2026년 4월 9일); United Nations in Yemen, UN Yemen Country Results Report 2025(2026년 6월 15일); 국제해사기구, Secretary-General urges constructive dialogue amid renewed Red Sea attacks(2024); 국제해사기구, Statement on deadly ship attack in the Red Sea(2026);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Yemen’s Tragedy: War, Stalemate, and Suffering(열람 2026년 10월); Sana’a Center for Strategic Studies, How Yemen’s post-2011 transitional phase ended in war(2015); Middle East Institute, The Houthis(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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