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식량난은 왜 반복되나…항구 의존·원조 차질·환율 붕괴가 함께 민간 생존을 압박한다
예멘의 식량난은 전선의 승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현재의 인도주의 위기는 항구와 해상 운송에 크게 의존하는 수입 구조, 교전과 행정 통제로 흔들리는 원조 접근, 지역별로 갈라진 통화·물가 체계, 그리고 만성적인 재원 부족이 서로 겹치며 반복된다. 식량이 나라 안으로 들어와도 전투와 통제로 제때 옮겨지지 못하고, 옮겨져도 환율 붕괴와 소득 감소로 주민이 사지 못하며, 그 틈을 메워야 할 원조는 자금 부족과 접근 제한으로 자주 축소되는 구조다.
유엔의 2026년 예멘 인도주의 필요·대응계획은 올해 지원이 필요한 인구를 2천100만명 이상으로 잡았고, 이 가운데 급성 식량불안을 겪는 인구를 1천830만명으로 제시했다. 세계식량계획과 IPC의 2026년 분석도 정부 통제 지역만 따로 봐도 봄철 500만명, 6~9월 궁핍기에는 540만명이 위기 단계 이상 식량불안에 놓일 것으로 봤다. 전투가 격해질수록 숫자가 뛰는 것은 맞지만, 그 바탕에는 전쟁이 길어지며 무너진 수입·유통·통화 체계가 깔려 있다.
첫 번째 경로는 항구와 해상 운송이다
예멘은 식량 자급 기반이 약해 외부 충격에 특히 취약하다. 유엔과 세계식량계획 자료에 따르면 예멘은 식량의 약 90%를 수입에 의존한다. 이 때문에 항구 운영, 해상 보험료, 선박 우회, 연료비 상승 같은 변수가 곧바로 식량 가격과 가계 부담으로 번진다.
홍해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긴장은 이 취약성을 더 키웠다. 유엔 안보리 제출 문서 S/2025/455는 2024년 1월부터 2025년 7월 9일까지의 후티 상선 공격 관련 정보를 담았고, 뒤이은 S/2026/310은 2026년 4월 9일까지는 새 사건이 보고되지 않았다고 적었다. 이는 공격 건수의 증감과 별개로, 이미 형성된 해상 리스크와 운송 불확실성이 예멘 같은 수입 의존국에 지속 비용으로 남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 세계식량계획은 2026년 10월 초 발간한 해상 교란 관련 설명자료에서 주요 항로 차질이 배송 지연과 운임 상승을 낳고, 그 여파가 취약국 식량 가격으로 전가된다고 밝혔다. 예멘처럼 수입 식량 비중이 큰 나라에서는 전선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바다에서 생긴 비용 상승이 시장 가격과 가정의 식사량 축소로 연결된다.
두 번째 경로는 원조 접근의 단절이다
항구로 들어온 식량이 곧바로 주민에게 가는 것도 아니다. 예멘의 인도주의 대응은 교전, 도로 차단, 행정 허가, 당국 간 협상, 원조 대상자 재조정 문제에 자주 막힌다. 세계식량계획은 2023년 12월 사나 중심 당국 통제 지역에서 일반 식량배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하면서, 자금 부족과 당국과의 대상 축소 합의 부재를 이유로 들었다. 이후 일부 지역에서 지원이 재개됐지만, 대규모 중단의 여파는 수백만명에게 오래 남았다.
이 문제는 2026년에도 끝나지 않았다. 세계식량계획은 10월 16일 공개한 현지 상황 설명에서 최근 남부 지역 전투로 알모카, 투르바, 타이즈의 여러 구역에서 활동을 멈췄고, 그 결과 거의 80만명에게 접근을 잃었다고 밝혔다. 같은 자료는 9월 이후 격화한 충돌로 20만명 이상이 새로 피란했다고 전했다. 식량 부족은 단순히 창고의 총량이 아니라, 도달 가능한 도로와 배급 가능한 마을의 문제라는 뜻이다.
반대 사례도 있다. 항구가 열려 있고 도로 접근이 유지되며 현지 시장이 기능할 때는 전반적 위기 속에서도 가격과 공급이 일시적으로 안정되는 구간이 나타난다. 다만 이런 안정은 지속적 접근 보장과 행정 협조가 뒷받침될 때만 가능했다. 특정 지역의 교전 재개나 허가 지연만으로도 같은 나라 안에서 시장 기능과 원조 도달률이 급격히 갈렸다.
세 번째 경로는 환율 붕괴와 지역별 물가 분화다
예멘의 식량위기를 이해할 때 빠지기 쉬운 대목은 통화와 구매력이다. 세계식량계획의 2026~2028년 예멘 계획 초안은 전쟁 이후 정부 통제 지역에서 예멘 리알 가치가 90% 이상 떨어졌고, 사나 기반 당국 통제 지역에서도 약 40%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식량이라도 어느 지역에서 어느 환율로 사야 하는지에 따라 부담이 크게 달라진다는 뜻이다.
정부 통제 지역 식량불안이 2026년에 다시 악화한 배경으로도 이 요인이 지목됐다. 세계식량계획과 IPC는 불규칙한 임금 지급, 높은 식량·연료 가격, 소득 기회 감소, 농업 생산 제약이 가계의 기본 식품 구매 능력을 약화시킨다고 분석했다. 즉 식량이 시장에 있어도 현금 소득과 환율이 무너지면 굶주림은 멈추지 않는다.
이 점은 예멘 식량난을 단순한 ‘공급 부족’으로만 볼 수 없게 만든다. 2025년 말 식량안보·농업 클러스터의 시장 분석은 중앙은행 조치로 정부 통제 지역 리알이 일시적으로 강세를 보이며 식량 가격이 다소 낮아졌다고 평가했지만, 무역적자와 외화 부족, 구조개혁 부재 탓에 이런 개선은 취약하다고 경고했다. 항구가 열려도 통화가 흔들리면 가격 안정 효과는 오래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네 번째 경로는 재원 부족이 위기를 상시화한다는 점이다
원조 체계가 충분한 돈을 확보하지 못하면 앞선 세 경로의 충격은 더 빠르게 민간인에게 전가된다. 2026년 예멘 인도주의 필요·대응계획의 총 소요액은 21억6000만달러이고, 이 가운데 우선순위 대응만 해도 16억달러가 필요하다. 그러나 유엔 인도주의 자금 추적 자료에 따르면 2026년 예멘 계획에 보고된 자금은 10월 17일 현재 약 3억9175만달러로, 전체 요구액의 18.1% 수준에 그쳤다.
세계식량계획은 자금 부족 때문에 지리적 범위와 배급 규모를 최신 식량불안 분석에 맞춰 계속 조정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정부 통제 지역의 경우 2026년 10월 현재 최대 240만명을 지원하고 있지만, 최근 긴급 수요 확대와 접근 악화가 겹치면서 2027년까지 사업 유지를 위해 추가로 2억6800만달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재원이 부족하면 가장 취약한 지역부터가 아니라, 접근 가능하고 운영 가능한 지역부터 축소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예멘 식량난은 ‘기근 경고가 반복되는데 왜 항상 비슷한 위기가 재연되느냐’는 질문에 답을 준다. 지원이 해마다 임시 연장과 긴급 모금에 의존하면, 물류 차질이나 환율 급락 같은 충격이 올 때 완충장치가 거의 남지 않는다. 결국 주민은 배급 축소, 대체 식품 섭취, 부채 확대, 자산 매각 같은 방식으로 버티게 된다.
결국 문제는 전쟁 그 자체보다 ‘생존 경로의 연쇄 붕괴’에 가깝다
예멘의 인도주의 위기를 낳는 주된 경로는 하나가 아니다. 해상 교란과 항구 의존 구조가 수입 비용을 밀어 올리고, 교전과 통제가 원조와 상업 유통을 끊으며, 환율 붕괴와 임금 불안이 구매력을 약화시키고, 재원 부족이 마지막 안전망인 원조를 축소한다. 이 네 축이 동시에 작동할 때 식량난은 단순한 부족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구조로 굳어진다.
따라서 해법도 군사 상황만 바라봐서는 충분하지 않다. 항구와 내륙 운송의 예측 가능성, 인도주의 접근 보장, 통화·수입 결제 안정, 우선순위 지역에 대한 지속 재원이 함께 마련되지 않으면 예멘의 식량난은 휴전이나 전선 변화가 있어도 다시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전쟁의 장기화가 만든 것은 단지 폐허가 아니라, 민간인이 먹을 것을 구하는 모든 경로가 조금씩 끊어지는 체계라는 점이 더 직접적인 위험으로 드러나고 있다.
자료: United Nations in Yemen, Yemen Humanitarian Needs and Response Plan 2026(March 2026); IPC, Yemen (Government-Controlled Areas): IPC Acute Food Insecurity Snapshot(May 21, 2026); World Food Programme, Nearly half of the population in Government-controlled areas of Yemen face acute food insecurity as humanitarian support sharply declines(June 3, 2026); World Food Programme, Hunger and displacement soar as fighting escalates in Yemen(October 16, 2026); World Food Programme, WFP pauses food distributions in northern areas of Yemen(December 5, 2023); UN Security Council, Letter dated 9 July 2025 from the Secretary-General addressed to the President of the Security Council, S/2025/455(10 July 2025); UN Security Council, Letter dated 9 April 2026 from the Secretary-General addressed to the President of the Security Council, S/2026/310(10 April 2026); MarketImpact Data/FTS, Humanitarian funding reported through FTS: Yemen Humanitarian Needs and Response Plan 2026(accessed October 17, 2026); Food Security and Agriculture Cluster Yemen, Yemen Market & Trade Bulletin – December 2025(February 2026); World Food Programme Executive Board, Draft Yemen interim country strategic plan (2026–2028)(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