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유전자는 운명을 정하지 않는다…다유전자 점수와 생활환경 연구가 보여준 것
체중에 영향을 주는 유전적 소인이 있다는 점은 이제 대규모 유전체 연구로 분명해졌다. 다만 그 사실이 곧바로 ‘살이 잘 찌는 유전자를 타고났으면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뜻은 아니다. 최근까지 축적된 BMI 관련 전장유전체연관분석과 UK 바이오뱅크 연구들을 종합하면, 유전은 위험의 크기를 바꾸지만 개인의 체중을 단독으로 결정하지는 못하며 생활환경과 행동 요인이 그 위험을 키우거나 줄이는 방향으로 함께 작동한다.
핵심은 유전적 연관성과 개인별 인과를 구분하는 데 있다. 연구자들은 수백 개에서 수천 개의 변이를 합친 다유전자 점수로 비만 위험을 예측하지만, 이 점수는 어디까지나 확률을 높이거나 낮추는 통계적 지표다. 특정 개인에게서 현재 체중이 왜 이렇게 형성됐는지를 유전자만으로 확정하는 도구는 아니다.
유전자 하나가 아니라 수백·수천 개 변이의 누적효과
BMI 연구는 오래전부터 특정 유전자 하나를 찾는 방식에서, 작은 효과를 가진 수많은 변이의 누적효과를 계산하는 방식으로 옮겨갔다. 2018년 발표된 유럽계 약 70만명 메타분석은 BMI와 관련된 941개의 거의 독립적인 SNP를 확인했다. 이 논문은 표본이 커질수록 새 연관 부위가 계속 발견되지만, 각각의 효과는 작고 예측력도 제한적이라는 점을 함께 보여줬다.
이후 표본은 더 커졌다. 2025년 발표된 다인종 기반 연구는 GIANT 컨소시엄과 23andMe 자료를 합쳐 최대 510만명의 유전정보를 이용해 BMI용 다유전자 점수를 만들었다. 이 연구에서 다인종 점수는 UK 바이오뱅크 유럽계 참가자 집단에서 BMI 변이의 17.6%를 설명했다. 과거 점수보다 성능은 높아졌지만, 거꾸로 말하면 BMI 차이의 대부분은 이 점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대목이 유전 결정론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다유전자 점수의 설명력이 두 자릿수 수준까지 올라와도, 그것은 집단 평균에서 위험 분포를 더 잘 가르는 도구라는 의미에 가깝다. 개인의 실제 체중은 식사 환경, 신체활동, 수면, 사회경제적 조건, 약물, 질환, 생애주기 변화 같은 비유전 요인의 영향을 계속 받는다.
같은 유전위험도 환경에 따라 체중 영향이 달라졌다
유전적 소인이 운명이 아니라는 점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교호작용 연구다. UK 바이오뱅크를 이용한 2017년 연구는 최대 12만명을 분석해, 비만 관련 69개 변이로 만든 유전위험 점수가 열악한 환경에서 더 크게 작동하는지 살폈다. 연구진은 사회경제적 박탈 정도, TV 시청, 신체활동 같은 지표와 유전위험의 상호작용을 검토했다.
결과는 단순하지 않았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상대적으로 더 박탈된 환경에 사는 집단에서는 BMI를 높이는 대립유전자 10개를 추가로 지닐 때 키 1.73m 성인 기준 약 3.8kg의 체중 증가와 연결됐다. 덜 박탈된 환경 집단에서는 같은 유전부담이 약 2.9kg 증가와 연결됐다. 유전효과가 환경에 따라 증폭됐다는 뜻이다.
다만 이 연구도 한계를 함께 남겼다. 연구진은 일부 음성대조 분석에서 잔여 교란 가능성을 인정했다. 다시 말해 환경이 유전위험을 바꾼다는 해석은 타당하지만, 관찰연구만으로 특정 생활습관 하나가 유전효과를 정확히 얼마만큼 상쇄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최소한 ‘유전위험이 높으면 어떤 환경에서도 결과가 같다’는 식의 결정론은 자료와 맞지 않는다.
생활습관은 유전위험을 없애지 못해도 격차를 줄일 수 있다
더 최근의 UK 바이오뱅크 연구도 같은 결론을 보강한다. 2024년 Cell Metabolism에 실린 분석은 유럽계 참가자 33만8645명의 BMI 다유전자 점수와 신체활동, 식사, 좌식행동, 음주, 수면을 묶은 생활습관 점수를 함께 비교했다. 연구진은 유전위험이 높고 생활습관이 나쁠수록 비만 위험이 더 커지는 상호작용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이 연구에서 중요한 메시지는 ‘좋은 생활습관이 유전자를 지운다’가 아니다. 오히려 절대위험 차이가 유전점수가 높을수록 더 벌어졌다는 점이 핵심이다. 즉 유전적 위험이 높은 사람일수록 생활환경 관리의 효과가 더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리 여부에 따른 결과 차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여기서도 주의할 점은 있다. 이런 연구는 주로 BMI나 비만 유병 위험의 집단 차이를 본 것이지, 특정 개인이 같은 식단과 운동을 했을 때 몇 kg이 빠질지를 예언하는 임상 도구는 아니다. 또한 많은 점수가 유럽계 자료에서 먼저 개발돼 다른 인구집단으로 옮겨갈 때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도 남아 있다.
예측력과 인과는 다르다…‘체질’ 기사에서 빠지기 쉬운 오해
비만 유전 연구를 기사나 광고가 과장하는 방식은 대체로 비슷하다. 첫째, FTO 같은 유명 유전자 하나를 근거로 개인 체질을 단정한다. 둘째, 다유전자 점수의 통계적 예측력을 개인의 확정적 미래로 바꿔 말한다. 셋째,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마치 맞춤형 처방이 이미 완성된 것처럼 포장한다.
하지만 GWAS가 말해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연관성의 지도다. 어느 변이가 BMI와 함께 움직이는지, 어떤 생물학적 경로가 관련돼 보이는지는 알 수 있어도, 그 자체가 개별 생활습관 개입의 확정적 반응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유전자 점수도 ‘원인 전체’를 담은 값이 아니라 현재까지 포착된 공통 변이들의 일부 정보를 요약한 값이다.
특히 BMI는 지방량만이 아니라 근육량, 연령, 성별, 민족집단 차이의 영향을 함께 받는 지표다. 따라서 BMI 관련 유전점수가 높다는 사실만으로 건강위험 전체를 단정할 수 없고, 반대로 점수가 낮다고 체중 증가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유전정보는 위험 분류의 한 축일 뿐, 환경과 임상정보를 대체하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현재까지의 대규모 연구는 ‘유전적 소인은 실제로 존재한다’와 ‘그래도 운명은 아니다’를 동시에 보여준다. 비만 관련 유전변이는 집단 수준에서 의미 있는 예측력을 갖지만, 그 설명력은 아직 부분적이며 환경에 따라 효과 크기도 달라진다. 유전자를 바꿀 수는 없어도, 유전자가 작동하는 생활환경과 행동 조건은 바꿀 수 있다는 점이 지금까지 검증된 가장 현실적인 답에 가깝다.
자료: NHGRI-EBI GWAS Catalog, GWAS Catalog home 및 body mass index 관련 trait 검색 자료(2026년 열람); Yengo L 외, Meta-analysis of genome-wide association studies for height and body mass index in ~700,000 individuals of European ancestry(2018); Smit RAJ 외, Polygenic prediction of body mass index and obesity through the life course and across ancestries(2025); Tyrrell J 외, Gene-obesogenic environment interactions in the UK Biobank study(2017); Kim MS 외, Association of genetic risk, lifestyle, and their interaction with obesity and obesity-related morbidities(2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