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화학 계산이 신약 출시로 곧장 이어졌나…양자컴퓨터 신약개발의 현재 단계
양자화학 계산이 곧바로 신약 출시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2026년 10월 현재 확인되는 근거를 보면, 양자컴퓨터가 보여준 성과는 분자 에너지 계산과 후보물질 탐색의 시범실험, 또는 초기 생물학 실험 단계에 머문다. 사람 대상 임상시험을 거쳐 허가를 받은 의약품까지 직접 연결된 사례로 확인되지는 않는다.
이 간격을 이해하려면 ‘분자를 계산했다’는 말과 ‘약이 나왔다’는 말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 분자의 전자구조를 계산하거나 후보물질을 고르는 일은 신약개발의 출발점일 뿐이다. 실제 출시 단계에 가려면 전임상 안전성, 사람 대상 임상시험, 규제기관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신약 개발 과정을 발견·개발, 전임상, 임상, 심사, 시판 후 감시의 다단계 절차로 설명한다.
양자컴퓨터가 실제로 해낸 일은 어디까지인가
양자컴퓨팅의 핵심 약속은 분자와 재료가 따르는 양자역학 자체를 더 직접적으로 모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다만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2026년 갱신한 해설에서, 이런 응용은 여전히 미래의 가능성에 가깝고 현재의 양자컴퓨터는 주로 물리·화학·수학 문제를 탐색하고 더 강한 장비를 만들기 위한 시험대로 쓰인다고 설명했다. NIST는 작은 분자의 에너지 계산 같은 초기 실증은 나왔지만, 그것이 곧 실용성을 입증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실험 논문이 보여주는 범위도 그와 비슷하다. 2020년 npj Quantum Information에 실린 연구에서는 포획 이온 양자컴퓨터로 물 분자의 바닥상태 에너지를 추정했다. 이 연구는 물 분자를 최소 기저함수계로 단순화한 뒤 10~11큐비트, 140여 개의 얽힘 게이트 수준에서 계산 정확도를 점검한 시범실험이었다. 분자 모사의 중요한 이정표이기는 하지만, 약효를 예측하거나 사람에게 쓸 약을 완성한 결과와는 거리가 멀다.
즉 지금까지의 ‘양자화학 계산’ 성과는 신약 파이프라인 전체를 대체했다기보다, 계산화학의 가장 앞단 일부를 실험적으로 건드린 정도에 가깝다. 특히 약물이 되려면 단백질 결합, 선택성, 독성, 체내 흡수와 분포, 대사, 용량, 임상적 효능까지 확인해야 하는데, 현재 공개된 양자컴퓨팅 실증은 이 전 과정을 한 번에 덮지 못한다.
후보물질 발굴과 임상 효능은 다른 단계다
양자컴퓨터가 신약개발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사례로는 2025년 Nature Biotechnology에 실린 KRAS 억제 후보물질 연구가 자주 거론된다. 이 논문은 16큐비트 IBM 양자 하드웨어를 포함한 하이브리드 양자-고전 모델로 100만 개 규모의 화합물 후보를 평가했고, 최종적으로 15개 화합물을 합성해 실험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KRAS 변이에 결합하거나 세포 기반 실험에서 활성을 보였다.
하지만 논문이 보여준 결론은 여기까지다. 연구진이 제시한 대표 화합물은 KRAS-G12D에 대한 마이크로몰 수준 결합 친화도와 세포 실험 활성을 보였지만, 논문 본문도 이 분자들이 여전히 초기 단계이며 추가 정교화가 필요하다고 적었다. 다시 말해 이 성과는 ‘양자컴퓨터가 실험실에서 검증 가능한 히트 물질을 내놓을 수 있는가’에 대한 예비 답변이지, ‘양자컴퓨터가 신약을 출시했는가’에 대한 답은 아니다.
이 구분은 기사 제목에서 특히 중요하다. 후보물질, 히트, 리드, 전임상 후보, 임상시험약, 허가 의약품은 서로 다른 단계다. 분자 설계에서 한 번 유망한 신호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에게 효과가 입증된 약으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의료 관련 과학 기사에서 세포·동물·사람 연구를 구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출시’라는 말 앞에서 필요한 검증 절차
규제기관의 기준으로 봐도 계산 성과와 출시 사이의 거리는 길다. FDA는 신약이 시장에 나오기 전 실험실 단계와 동물실험을 거친 뒤 사람 대상 임상시험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고, 그 자료 전체를 바탕으로 허가 여부를 심사한다고 설명한다. 계산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출시를 결정하는 최종 근거는 결국 사람 대상 자료와 제조·품질 자료까지 포함한 허가 심사다.
실제로 KRAS 표적 치료제는 이미 허가 사례가 있다. FDA는 2025년 1월 sotorasib와 panitumumab 병용요법을 KRAS G12C 변이 전이성 대장암 치료제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런 허가는 임상시험 자료를 근거로 이뤄진 것이지, 양자컴퓨터가 직접 설계해 승인까지 이끌었다는 뜻은 아니다. 양자 기반 후보 탐색 연구와 규제기관이 승인한 항암제는 같은 KRAS라는 표적을 공유할 수는 있어도, 증거 수준과 개발 단계는 전혀 다르다.
결국 독자의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답은 이렇다. 양자화학 계산은 신약개발의 일부, 그중에서도 분자 모사와 후보물질 탐색 같은 초기 구간에서 가능성을 보이고 있지만, 그 계산이 신약 출시로 직접 이어졌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 현재 확인되는 현실은 ‘분자 모사 시범실험’과 ‘초기 후보물질 발굴’이며, 임상 효능과 허가를 거친 출시 의약품까지의 연결고리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자료: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Quantum Computing Explained(2025, 2026년 5월 28일 갱신); Yunseong Nam 외, Ground-state energy estimation of the water molecule on a trapped-ion quantum computer(2020); Mohammad Ghazi Vakili 외, Quantum-computing-enhanced algorithm unveils potential KRAS inhibitors(2025); 미국 식품의약국, The Drug Development Process(2018); 미국 식품의약국, FDA approves sotorasib with panitumumab for KRAS G12C-mutated colorectal cancer(2025년 1월 1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