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 철은 정말 길어졌나…기후변화 영향, 한국에선 식물종·지역 따라 달랐다
기후변화가 꽃가루 알레르기 시즌을 무조건 길게 만든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계절이 앞당겨지거나, 특정 식물의 꽃가루가 더 오래 날리거나, 농도가 짙어지는 변화는 국내외 자료에서 반복해서 확인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기온 상승과 이산화탄소 증가가 꽃가루 계절의 조기 시작, 기간 연장, 생산량 증가로 이어져 노출과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정리했다.
한국 자료를 보면 변화는 더 구체적이지만 동시에 더 복잡하다. 서울 수도권에서 1998년부터 2019년까지 관측과 소아 알레르기 환자 자료를 함께 본 연구에서는 주요 수목 꽃가루 시즌 길이가 98일에서 140일로 늘었다. 반면 기상청이 2025년 공개한 최신 꽃가루 달력에서는 최근 11년 관측을 반영했을 때 봄철 수목류의 시작 시점은 전국 8개 도시 평균 3일 빨라졌지만, 지속 기간은 평균 4일 줄었다. 같은 ‘꽃가루 철’이라도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길어졌다’는 말이 맞는 경우와 아닌 경우
기후변화와 꽃가루의 관계를 다룬 연구들은 대체로 온도가 오를수록 꽃가루 시즌이 더 일찍 시작하고 더 길어지며 농도도 높아지는 경향을 보고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연구진의 체계적 문헌고찰은 93편의 장기 관측 연구를 검토한 결과, 더 따뜻한 기온이 전반적으로 더 이른 시작과 더 긴 시즌, 더 높은 꽃가루 농도와 연관됐다고 정리했다. 북미 60개 도시, 1990년부터 2018년까지 821개 연도-지점 자료를 분석한 연구는 꽃가루 시즌이 평균 20일 길어지고 농도는 21% 증가했으며, 이 변화의 상당 부분이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와 연결된다고 봤다.
하지만 이런 경향이 모든 지역과 모든 식물에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 기상청의 최신 꽃가루 달력은 바로 그 차이를 보여준다. 봄철 수목류는 전국 평균으로 시작일이 빨라졌지만 지속 기간은 오히려 줄었고, 가을철 잡초류는 전국 평균 지속 기간이 5일가량 늘었다. 잔디류는 중부와 남부에서는 지속 기간이 줄었지만 제주에서는 34일 길어졌다. ‘꽃가루 철이 길어지고 있다’는 표현은 일부 식물군과 일부 지역에는 들어맞지만, 전체를 한 문장으로 묶으면 중요한 차이를 놓치게 된다.
한국에선 어느 식물, 어느 지역이 먼저 달라졌나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국내 봄철 꽃가루 알레르기의 대표 원인 수목은 참나무, 오리나무, 자작나무, 삼나무다. 이들 꽃가루는 대체로 4월부터 6월 초까지 공기 중에 날리고, 제주에서는 2월부터 4월 초까지 더 이르게 나타난다. 봄철에 눈에 잘 띄는 개나리, 진달래, 벚꽃은 곤충이 꽃가루를 옮기는 경우가 많아 대기 중을 멀리 떠다니는 알레르기 유발 꽃가루의 대표 주자는 아니라는 점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지역 차이도 뚜렷하다. 국내 꽃가루 달력을 정리한 연구와 이를 검토한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학술지 논문을 보면 서울에서는 소나무, 참나무, 은행나무, 환삼덩굴의 피크 농도가 높았고, 강릉에서는 소나무가 특히 높고 자작나무·참나무·느릅나무·쑥은 중간 수준이었다. 대전은 참나무와 소나무, 전주는 소나무 중심의 고농도 패턴이 두드러졌다. 즉 같은 봄 알레르기라도 서울의 도심 수목, 강릉의 해안·산지 식생, 제주의 이른 개화처럼 노출 조건이 다르다.
서울 수도권 장기 연구는 이런 변화가 단순한 체감만은 아니라는 점도 보여준다. 이 연구에서 꽃가루 시즌 길이는 1998년 98일에서 2019년 140일로 늘었고, 참나무·개암나무·오리나무 등에 대한 감작률 증가도 함께 관찰됐다. 다만 이 결과는 수도권의 특정 모집단, 즉 알레르기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소아·청소년 자료를 포함한 연구라는 한계가 있다. 전국민 전체의 유병 변화를 그대로 뜻하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변수들
꽃가루 노출은 장기 기후 추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WHO는 기온과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대기오염이 꽃가루의 알레르기 유발성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국내 검토 논문들도 강수, 습도, 풍속, 일사량 같은 기상 조건이 하루 단위 농도 변동에 직접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비가 오면 일시적으로 꽃가루가 씻겨 내려가 농도가 낮아질 수 있지만, 건조하고 따뜻하며 바람이 부는 날에는 노출이 커질 수 있다.
그래서 독자가 실제로 체감하는 ‘시즌’은 두 층으로 나뉜다. 하나는 여러 해 관측을 바탕으로 한 장기 추세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이나 이번 주의 날씨에 따른 단기 노출이다. 한국에서 봄 수목류의 시작 시점이 앞당겨졌다는 관측은 장기 변화에 가깝고, 특정 날 증상이 심해지는 것은 강수와 바람 같은 단기 기상 영향이 더 클 수 있다. 기후변화가 배경을 바꾸고, 날씨가 그날의 강도를 결정하는 셈이다.
결국 ‘꽃가루 철이 길어지고 있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그대로 쓰면 절반만 맞는 말이 된다. 한국 자료에서는 봄 수목류가 더 일찍 시작하는 경향, 가을 잡초류가 더 오래 가는 경향, 제주 잔디류처럼 지역별로 크게 달라지는 패턴이 함께 나타난다. 알레르기 시즌의 변화는 하나의 직선이 아니라 식물종, 도시, 계절, 측정 방식에 따라 갈라지는 여러 개의 선에 가깝다.
자료: World Health Organization, Climate change, air pollution, pollen and health(2025년 7월 17일); 기상청, 2025년 꽃가루 달력 최신판 공개(2025년 4월 15일);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이달의 건강정보 꽃가루 알레르기 예방과 관리(확인일 2026년 10월 27일); Lee KS 외, Increased sensitization rates to tree pollens in allergic children and adolescents and a change in the pollen season in the metropolitan area of Seoul, Korea(2021); Oh JW 외, Pollen Allergy in a Changing Environment(2022); Schramm PJ 외, A systematic review of the effects of temperature and precipitation on pollen concentrations and season timing, and implications for human health(2021); Anderegg WRL 외, Anthropogenic climate change is worsening North American pollen seasons(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