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인간의 직업을 없앤다는 전망, 왜 빗나가나…ILO가 다시 그린 기준은 ‘직업’ 아닌 ‘과업’ 노출
생성형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통째로 없앨 것이라는 전망은 자주 반복되지만, 국제노동기구(ILO)가 2025년 내놓은 최신 직무 노출 분석은 다른 지점을 가리킨다. 핵심은 직업 전체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개별 과업이 얼마나 자동화 가능하냐는 것이다. ILO는 이번 연구에서 생성형 AI의 영향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단위를 ‘직업 소멸’이 아니라 ‘업무 재편’으로 봤고, 대부분의 직무는 여전히 인간의 판단·조정·책임을 필요로 한다고 정리했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않으면 세 가지가 한데 섞인다. 첫째는 기술적으로 어떤 과업이 자동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노출 가능성이고, 둘째는 기업이 실제로 그 기술을 도입하는지의 문제이며, 셋째는 그 결과 고용이 줄었는지다. ‘AI가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 곧바로 ‘그 직업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ILO 지표가 본 것은 직업명이 아니라 3만개에 가까운 과업
ILO의 2025년 작업은 2023년 지수를 보정한 후속 연구다. 연구진은 폴란드 직업분류에 포함된 2만9753개 과업 가운데 대표 표본을 뽑고, 1자리 ISCO-08 직군별 재직자 1640명을 조사해 2861개 과업에 대한 5만2558건의 자동화 가능성 평가를 모았다. 여기에 국제 전문가 검토와 AI 예측을 결합해, 직업명을 통째로 판정하는 대신 각 직업을 이루는 과업 묶음이 얼마나 생성형 AI에 노출되는지 다시 계산했다.
이 방식이 중요한 이유는 같은 사무직이나 전문직이라도 내부 구성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문서 요약, 전사, 표 정리처럼 AI가 비교적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업무가 많은 직무가 있는가 하면, 같은 직군 안에서도 대면 조율, 책임 판단, 예외 처리, 조직 내 승인 같은 요소 비중이 큰 직무도 있다. 직업 분류가 같아도 실제 자동화 압력은 과업 조합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ILO는 이 결과를 네 단계의 노출 구간으로 다시 정리했다. 노출 점수가 높다는 것은 생성형 AI가 그 직무의 일부 과업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이지만, 곧바로 완전 대체를 뜻하지는 않는다. 연구진도 가장 가능성이 큰 변화는 직업의 소멸보다 직무 내용과 작업 방식의 재설계라고 밝혔다.
‘1인 4명 노출’은 곧 ‘1인 4명 실직’이 아니다
이번 지수에서 전 세계 노동자의 약 4분의 1은 생성형 AI에 어느 정도 노출된 직업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가장 높은 노출 구간에 들어간 고용은 전 세계 기준 3.3%였다. 이 수치부터가 이미 ‘광범위한 즉시 대체’와는 거리가 있다. 노출 범위는 넓지만, 완전 자동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구간은 그보다 훨씬 좁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성별과 소득수준에 따른 차이도 드러났다. 최고 노출 구간에 속한 비중은 여성 고용 4.7%, 남성 고용 2.4%로 집계됐다. 고소득국에서는 그 격차가 더 커져 여성 9.6%, 남성 3.5%였다. ILO는 그 배경으로 여성 비중이 높은 사무·행정 직군의 높은 노출도를 지목했다.
다만 이 역시 ‘여성 일자리가 더 많이 사라진다’는 뜻으로 읽으면 과장이다. ILO가 함께 설명한 대목은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사무직은 여전히 가장 높은 노출군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론상 계산보다 자동화가 더 어렵고, 상당수 업무가 감독·검토·대인 조정과 결합돼 있기 때문이다. 대신 매체, 웹, 소프트웨어, 금융처럼 디지털화가 많이 진행된 전문·기술 직무의 노출이 2023년보다 커졌다. 생성형 AI의 능력이 넓어지면서 노출 직군이 퍼지고는 있지만, 그 변화의 형태는 ‘직업 삭제’보다 ‘직무 재편’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실제 고용효과는 별도 문제…도입, 조직개편, 노동수요가 함께 작동
노출 지표를 실제 실업 전망으로 곧장 바꿀 수 없는 이유는 기업의 도입 속도와 조직 선택이 따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OECD와 한국노동연구원이 2025년 낸 한국 노동시장 보고서는 지금까지 OECD 국가들에서 AI가 전체 고용에 뚜렷한 부정적 충격을 줬다는 증거는 제한적이라고 정리했다. 일부 연구와 사례에서는 오히려 AI 노출이 높은 분야에서 고용 증가와 생산성 개선이 함께 관찰됐고, 직무가 바뀌더라도 인력 재배치나 채용 조절로 대응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OECD가 조사한 사례 연구에서 대다수 기업은 AI 도입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직무의 일자리 수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고 답했다. 일자리 수가 줄었다고 답한 기업도 있었지만, 그 경우에도 해고보다 내부 재배치나 자연감소 방식으로 조정한 사례가 많았다. 생성형 AI를 도입한 중소기업 조사에서도 전체 인력 규모에 변화가 없다고 답한 비중이 높았다.
결국 ‘AI가 직업을 없앤다’는 문장은 기술적 가능성, 기업의 채택 여부, 생산성 상승에 따른 추가 수요, 새 업무의 생성, 노동규제와 노사협의 같은 변수를 한 문장으로 덮어버린다. ILO의 2025년 지표가 주는 더 정확한 해석은 이렇다. 생성형 AI는 직업 단위를 한꺼번에 지우기보다, 직업 내부의 과업 구성을 먼저 흔든다. 앞으로 정책과 기업이 따져야 할 질문도 몇 개의 직업이 사라지느냐보다, 어떤 과업이 줄고 어떤 책임이 새로 생기며 그 전환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에 더 가깝다.
자료: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Generative AI and Jobs: A Refined Global Index of Occupational Exposure(2025);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Generative AI and jobs: A 2025 update(2025-05-20);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Generative AI at work: What it means for jobs in Europe and beyond(2025-09-29); OECD·Korea Labor Institute,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Labour Market in Korea(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