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오래 일할 가능성을 높이는 능력은 무엇인가…직무를 ‘책임·현장 판단·대인 협업’으로 다시 봐야 하는 이유
생성형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얼마나 없앨지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직무가 어떤 과업으로 이뤄져 있는지다. 국제노동기구(ILO)의 2025년 직무 노출 연구는 생성형 AI의 영향이 직업의 일괄 소멸보다 과업 재편에 가깝다고 봤다. 같은 직종 안에서도 문서 정리, 초안 작성, 정보 검색처럼 표준화하기 쉬운 일은 자동화 압력을 더 크게 받고, 최종 책임을 지는 판단, 현장 변수에 맞춘 대응, 사람 사이의 조정과 설득이 필요한 일은 인간의 역할이 더 오래 남는 구조라는 뜻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직무 지속성을 높이는 공통 요소는 세 갈래로 압축된다. 첫째는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라붙는 의사결정이다. 둘째는 매뉴얼만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현장 판단이다. 셋째는 협업·조정·고객 응대처럼 다른 사람의 맥락을 읽고 함께 일을 굴리는 능력이다. 직종 이름만 보고 안전한 직업과 위험한 직업을 가르기보다, 자신의 일이 이 세 요소를 얼마나 포함하는지 따져보는 편이 실제 변화에 더 가깝다.
ILO가 본 것은 ‘직업 소멸’보다 ‘과업 변화’였다
ILO가 2025년 5월 발표한 보고서는 2023년 지수를 손질해 생성형 AI 노출을 네 단계로 다시 분류했다. 여기서 핵심은 직업 전체를 한 번에 대체할 수 있는지보다, 직업을 이루는 세부 과업 가운데 무엇이 자동화될 수 있는지를 따졌다는 점이다. ILO는 전 세계 고용의 약 4분의 1이 어떤 형태로든 생성형 AI 노출 구간에 들어가지만, 최고 노출 구간은 3.3% 수준이라고 제시했다.
노출이 가장 높은 쪽은 여전히 사무·서무 계열이었다. 반대로 거의 모든 직업에는 여전히 인간 입력이 필요한 과업이 남아 있어, 현재 기술 수준에서 더 가능성이 큰 변화는 전면 대체보다 직무 재구성이라고 ILO는 설명했다. 같은 직업 안에서도 반복적 문서업무와 보고 초안 작성은 기계가 가져가고, 예외 상황 처리나 대면 조정, 책임 있는 승인 단계는 사람 쪽으로 남는 식의 분화가 일어난다는 의미다.
이 점은 ‘AI에 많이 노출된 직업’과 ‘곧 사라질 직업’을 같은 뜻으로 쓰면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노출은 기술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범위를 뜻할 뿐이고, 실제 고용 변화는 비용, 규제, 조직 개편, 디지털 인프라, 현장 수용성에 따라 달라진다. 기사 제목이나 채용 시장의 자극적인 순위보다 과업 단위의 구조를 먼저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래 남는 일의 공통점 1: 책임이 따르는 판단
AI는 예측과 추천, 초안 작성에는 강하지만 그 결과를 조직적으로 승인하고 책임지는 일까지 대신하지는 못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3년 고용전망과 2025년 한국 노동시장 보고서에서 AI와 함께 일하는 환경일수록 고차원 인지능력, 관리 능력, 사회적 기술이 보완적으로 중요해질 수 있다고 정리했다. 특히 프로젝트 관리, 사람 관리, 창의적 문제 해결 같은 능력은 AI 관련 일자리와 함께 요구되는 경향이 강했다.
이런 능력의 공통점은 단순히 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정보 중 무엇을 채택할지 고르고 그 결과를 설명해야 한다는 데 있다. 예산, 인사, 안전, 법적 위험, 대외 평판처럼 결과의 무게가 큰 업무일수록 추천 시스템이 보조할 수는 있어도 최종 판단자는 남는다. 직무 지속성을 높이려면 정보를 빨리 찾는 능력만이 아니라, 선택의 근거를 세우고 책임 있게 결정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이것을 곧바로 ‘관리직은 모두 안전하다’는 뜻으로 읽을 수는 없다. OECD는 일부 기업 사례에서 AI가 숙련을 단순화해 판단 없는 조작 업무만 남기는 역숙련 가능성도 확인했다고 적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직함이 아니라 실제 업무가 판단권과 책임을 포함하느냐다.
오래 남는 일의 공통점 2: 현장 변수에 맞춰 바꾸는 능력
두 번째 축은 현장 판단이다. 생성형 AI는 평균적인 문장과 전형적인 절차에는 강하지만, 공간·시간·고객 상태·안전 조건이 계속 바뀌는 환경에서는 성능이 곧바로 일관되게 이어지지 않는다. ILO도 국가별 인프라와 비용, 운영상의 제약이 실제 도입 속도를 크게 좌우한다고 봤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과 현장에서 바로 대체되는 일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점검, 조율, 예외 처리, 위험 감지, 품질 확인처럼 변수가 많은 업무는 자동화 압력이 오더라도 사람이 맡는 핵심이 남기 쉽다. OECD의 2024년 기술 수요 분석에서도 AI 노출이 높은 직무군에서 인지·디지털 능력뿐 아니라 문제 해결과 독창성, 협업 관련 수요가 함께 늘어난 것으로 제시됐다. 표준 절차를 외우는 사람보다 예상 밖의 상황에서 절차를 다시 짜는 사람이 더 오래 필요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개인 차원에서 보면 이것은 특정 소프트웨어 사용법 하나를 배우는 것보다, 현장 정보로 문제를 다시 정의하고 대안을 고르는 훈련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같은 사무직이라도 정형 보고만 반복하는 사람과 고객 문제를 재구성해 여러 부서와 해결하는 사람의 직무 지속성은 같지 않을 수 있다.
오래 남는 일의 공통점 3: 사람과 함께 일하는 협업 능력
세 번째는 대인 협업이다. 많은 생성형 AI 논의가 문서 업무에 집중되지만, 실제 조직은 설명, 설득, 갈등 조정, 고객 응대, 팀 내 역할 배분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OECD는 AI가 확산하는 직무에서 사회적 기술과 감정 관련 기술의 수요가 함께 커졌다고 봤고, 기업 조사에서는 훈련을 받은 노동자가 AI 도입의 긍정적 효과를 더 많이 보고한다고 정리했다. 기술 자체보다 기술을 둘러싼 협업 방식이 성과를 가른다는 이야기다.
국내 훈련 기준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은 직업기초능력을 최근 ‘직업공통능력’으로 재구조화하면서 문제해결, 대인관계, 디지털 활용을 중심축으로 다시 묶고, 디지털책임의식과 AI 활용 요소를 별도 반영했다. 협업능력, 갈등관리, 의사결정, AI 활용이 서로 떨어진 능력이 아니라는 점을 제도상 기준으로도 보여준 셈이다.
이는 앞으로의 훈련이 코딩 교육 일변도로 갈 필요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업 대부분은 AI 모델을 직접 개발하기보다, 결과를 검토하고 팀 안에서 활용 방식을 정하고 오류와 편향을 걸러내는 쪽에 더 많이 서게 된다. 말하자면 ‘혼자 잘하는 능력’보다 ‘AI를 끼고도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이 더 넓게 요구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을 배울까…직종 순위보다 자신의 과업 지도를 그려야 한다
실천 순서는 직종 갈아타기보다 현재 하는 일을 쪼개 보는 데서 시작할 만하다. 첫째, 내 업무 중 규칙화가 쉬운 반복 과업이 얼마나 되는지 본다. 둘째, 결과에 대해 내가 실제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지점이 어디인지 표시한다. 셋째, 고객·동료·현장과 부딪치며 조정하는 구간이 얼마나 큰지 따져본다. 이 세 지도를 그려보면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도 더 선명해진다.
반복 문서업무 비중이 높다면 AI 도구 활용, 데이터 정리, 검수 역량을 먼저 붙이는 편이 현실적이다. 이미 판단과 조정 업무를 맡고 있다면 문제정의, 설명, 협상,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강화하는 쪽이 낫다. 현장성이 큰 직무라면 센서·소프트웨어 같은 디지털 보조도구를 쓰되, 예외 상황 대응과 안전 판단 능력을 함께 키워야 한다. 결국 오래 일할 가능성을 높이는 길은 ‘AI가 못하는 것’만 찾는 데 있지 않고, AI가 잘하는 것과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것을 다시 나눠 자기 직무를 재설계하는 데 있다.
자료: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Generative AI and Jobs: A Refined Global Index of Occupational Exposure(2025-05-20);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How might generative AI impact different occupations?(2025-05-20); OECD, OECD Employment Outlook 2023: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Labour Market(2023-07-11); OECD, How is AI changing the way workers perform their jobs and the skills they require?(2024); OECD,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Labour Market in Korea(2025); 한국산업인력공단 국가직무능력표준, 직업공통능력 개요(열람일 2026-10-16); 한국고용정보원, 2025~2035 정성적 일자리 전망(2026-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