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수출은 최고치인데 창작자는 왜 불안한가…해외매출과 계약·보상의 간극
한국 콘텐츠산업의 외형은 계속 커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6년 2월 발표한 ‘2025년 콘텐츠산업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콘텐츠산업 매출액은 157조4021억원, 수출액은 141억달러를 넘겨 모두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이 수치는 산업 전체의 합계다. 개별 창작자와 스태프가 실제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일했고, 어떤 계약을 맺었고, 해외 흥행의 과실을 얼마나 가져갔는지까지 바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세계에서 인기라는데 왜 현장은 불안하냐’는 질문에 대한 첫 답은 여기서 나온다. 수출 증가와 창작 생태계의 안정은 같은 지표가 아니다. 해외 매출이 늘어도 그 돈이 플랫폼, 투자사, 제작사, 유통사를 거쳐 창작자와 제작 노동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배분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산업 전체는 성장했지만 장르별 표정은 달랐다
문체부 조사만 봐도 ‘K콘텐츠 호황’은 모든 장르에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2024년 기준 방송 부문 매출은 전년보다 1.6% 감소했고, 영화 부문 매출은 16.3% 줄었다. 전체 산업은 커졌지만 방송과 영화처럼 제작 현장의 고용과 외주, 장시간 노동 문제가 집중되는 장르에서는 체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특히 방송·영상 분야는 해외 진출 확대와 별개로 국내 제작비 조달, 외주 구조, 저작권 귀속, 후속 수익 배분 문제가 오래된 쟁점으로 남아 있다. 문체부가 2021년 콘텐츠산업 혁신전략에서 OTT 플랫폼과 콘텐츠 제작사 사이의 공정계약 가이드라인 마련을 과제로 제시했고, 2024년 미디어·콘텐츠 산업융합 발전방안에서도 표준제작비, 표준계약서 활용, 저작권과 수익배분 점검을 다시 언급한 것은 그만큼 시장 확대만으로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평균 수입이 올라도 모두가 나아졌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
창작자 소득 통계는 이 간극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년 웹툰 작가 실태조사’는 최근 1년 내내 작품을 연재한 경험이 있는 작가의 연간 총수입 평균을 1억1870만원으로 제시했다. 겉으로 보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같은 보고서는 이 평균 상승을 업계 전체의 개선으로 곧바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응답자 중 최고값과 최저값에 따라 평균이 크게 흔들릴 수 있어, 평균 연수입 증가가 모든 웹툰 작가의 소득 증가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따로 설명했다. 흥행작 몇 편과 상위권 작가의 수입이 평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대목은 K콘텐츠 전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해외 흥행과 수출 증가는 산업의 시장성과 경쟁력을 보여주지만, 창작자의 생활 안정이나 현장의 보상 체계 개선을 자동으로 증명하지는 않는다. 산업 통계의 평균과 현장의 분포를 분리해서 봐야 하는 이유다.
문제의 핵심은 ‘얼마나 벌었나’보다 ‘누가 어떤 계약으로 나눠 가졌나’
실제 정책과 실태조사도 쟁점을 계약으로 좁혀 간다. 콘진원의 ‘웹툰산업 불공정 계약 실태조사’는 플랫폼, 제작사, 작가 사이의 계약 관행과 불공정 경험을 따로 조사했다. 그만큼 창작 생태계의 취약점이 단순한 작품 흥행 여부가 아니라 계약 구조와 교섭력 차이에서 반복된다는 문제의식이 이미 제도권에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영화 쪽도 비슷하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26년 3월 ‘2024년 영화분야 표준계약서 활용 실태조사’를 공개했다. 조사 대상은 2024년 극장 개봉 한국영화에서 사용된 근로표준계약서, 시나리오표준계약서, 투자표준계약서, 상영표준계약서였다. 영진위가 표준계약서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실제 활용 실태를 별도로 점검한 것은,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현장 안착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방송 분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체부는 이미 2014년 방송영상프로그램 제작 스태프 표준계약서를 마련했고, 2018년에는 방송 분야 표준계약서 사용지침을 따로 냈다. 그럼에도 과거 문체부 실태조사에서는 스태프 계약에서 4대 보험과 임금 지급 보증, 외주제작사와 방송사 사이에서는 저작권 및 수익배분 조항이 핵심 쟁점으로 지목됐다. 표준계약서 제정과 실제 집행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뜻이다.
해외매출이 커질수록 더 중요해지는 것은 정산과 권리 구조다
K콘텐츠가 세계시장에서 커질수록 창작 생태계의 쟁점은 더 단순해진다. 첫째는 저작권과 2차적 이용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둘째는 후속 매출이 발생했을 때 정산 기준이 계약서에 얼마나 명확히 적히는지, 셋째는 작가·스태프가 개인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노동·사회보장 장치 밖으로 밀려나지 않는지다.
이 기준으로 보면 ‘인기 있는데 왜 불안하냐’는 질문은 모순이 아니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팔리는 것과, 그 성과가 현장 인력에게 예측 가능한 보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공식 자료를 종합하면 한국 콘텐츠산업은 분명 성장했다. 그러나 창작 생태계의 관점에서 보면 남은 과제는 성장의 속도보다 그 성장의 배분 구조에 더 가깝다.
결국 한국 문화강국의 지속 가능성은 히트작 수나 수출액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표준계약서가 실제 계약서가 되는지, 해외 판권과 2차 사업 수익이 어떻게 나뉘는지, 제작 현장의 작가와 스태프가 다음 작품을 준비할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인지를 함께 봐야 한다. 산업 통계가 ‘얼마나 커졌는가’를 보여준다면, 창작 생태계 검증은 그 성장이 ‘누구의 성장인가’를 묻는 작업에 가깝다.
자료: 문화체육관광부, 2025년 콘텐츠산업조사(2024년 기준)(2026.02.27.); 한국콘텐츠진흥원, 2022년 웹툰 작가 실태조사(2022); 한국콘텐츠진흥원, 웹툰산업 불공정 계약 실태조사(2022);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 웹툰산업 실태조사(2024); 영화진흥위원회, 2024년 영화분야 표준계약서 활용 실태조사(2026.02.20.); 영화진흥위원회, 2024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2025.03.24.); 문화체육관광부, 방송영상프로그램 제작 스태프 표준계약서 제정·발표(2014.08.28.); 문화체육관광부, 방송 분야 표준계약서 사용지침 마련(2018.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