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인사이트

웹툰은 세계 만화 유통을 어떻게 바꿨나…페이지 대신 ‘세로 스크롤·유료회차’가 표준이 된 과정

웹툰이 세계 만화시장을 바꿨다고 말하려면 먼저 범위를 좁혀야 한다. 종이 단행본 중심의 만화 유통이 한 번에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스마트폰에서 읽는 디지털 만화 시장에서는 한국식 웹툰이 ‘한 권 단위 판매’보다 ‘회차 단위 소비’, ‘가로·양면 페이지’보다 ‘세로 스크롤’, ‘완결본 판매’보다 ‘무료 진입 뒤 유료 전환’이라는 다른 유통 공식을 만들어 냈고, 일본과 북미, 유럽의 주요 플랫폼이 그 공식을 받아들이는 흐름이 확인된다.

이 변화는 형식의 수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세로로 읽는 화면 설계, 매일 또는 매주 끊어 보는 연재 구조, 일정 시간 뒤 다음 회차를 무료로 열어주는 부분유료화, 번역과 현지 창작을 결합한 플랫폼 운영이 한 세트로 움직였다는 점이 핵심이다. 다시 말해 웹툰의 수출 경쟁력은 그림체 하나가 아니라 유통 방식 전체의 패키지에 가까웠다.


페이지를 넘기는 만화에서, 스크롤하며 다음 화를 기다리는 만화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 만화·웹툰 이용자 조사를 보면 웹툰 이용자 3448명 가운데 47.2%가 유료 결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유료 결제 경험자 안에서는 ‘주당 1회 이상’ 결제가 22.2%, 그보다 낮은 빈도가 77.8%였다. 매번 큰돈을 쓰는 독자보다, 무료로 들어와 필요할 때 회차 단위로 결제하는 이용층이 시장의 기반이라는 뜻에 가깝다.

이 구조는 출판만화의 권당 판매와 다르다. 카카오는 카카오페이지 초기에 회차별 구매와 ‘기다리면 무료’ 모델을 도입했고, 이후 일본 서비스 픽코마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했다. 이 모델은 작품을 잘게 쪼개 무조건 싸게 파는 방식이 아니라, 무료 접근성을 높여 체류 시간을 늘리고 일부 독자를 결제로 전환하는 구조다. 유통 단위가 책에서 화로 바뀌면서 플랫폼은 독자의 재방문 주기를 직접 설계할 수 있게 됐다.

세로 스크롤 형식도 같은 맥락에 있다. 일본 시장을 분석한 한국콘텐츠진흥원 보고서는 세로형 웹툰이 스마트폰 화면에 최적화돼 손쉽게 읽을 수 있고, 컷 전환이 자연스러워 몰입도를 높인다고 정리했다. 이 보고서는 웹툰이 일본에서 단순한 외래 형식이 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한다. 즉 웹툰은 만화를 모바일에 옮긴 것이 아니라, 모바일 환경에 맞춰 만화의 호흡과 결제 시점을 다시 짠 셈이다.


일본 시장이 보여준 변화…형식 수입에서 플랫폼 재편으로


이 공식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일본이다. 카카오픽코마는 2023년 연간 거래액 1000억엔을 넘겼다고 밝혔다. 회사 설명대로라면 2019년 대비 7배 이상 성장한 수치다. 같은 회사는 픽코마가 2023년 일본 앱 마켓에서 게임을 포함한 전체 카테고리 소비자 지출 1위를 기록했다고도 발표했다.

중요한 것은 매출 규모 자체보다 그 매출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느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일본 웹툰 시장 보고서는 픽코마에서 웹툰 작품 비중이 전체 콘텐츠의 1.4%에 불과하지만 매출의 50%를 차지했다고 전한다. 이 수치가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전통적인 일본 만화 플랫폼 안에서도 세로 스크롤과 에피소드 과금이 높은 수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변화는 해외 작품 수입 단계에 머물지 않았다. 같은 보고서는 일본 대형 출판사들이 웹툰을 경쟁재가 아니라 IP 인큐베이터나 디지털 연재 실험장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카도카와와 픽코마의 협업처럼 전통적 편집 시스템과 디지털 회차 연재가 결합한 사례도 나왔다. 웹툰이 기존 만화를 완전히 대체했다기보다, 전통 만화 산업이 웹툰식 유통을 자기 시장 안으로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지화의 단위도 바뀌었다…번역만이 아니라 플랫폼·창작 방식까지 이식


웹툰의 또 다른 변화는 현지화 방식이다. 과거 디지털 만화 수출이 번역본 공급에 가까웠다면, 최근에는 플랫폼이 먼저 들어가고 그 위에 번역·현지 오리지널·영상화가 겹쳐진다. 웹툰엔터테인먼트는 2025년 연차보고서에서 자사가 월간활성이용자, 월간결제이용자, 이용자당 유료매출을 핵심 지표로 관리한다고 밝혔다. 2025년 기준 이 회사의 월간활성이용자는 1억5700만명, 월간결제이용자는 750만명이었다. 플랫폼이 독서량보다 이용자 전환과 유지율을 중심으로 시장을 본다는 의미다.

같은 회사는 여러 공시와 발표에서 한국 작품을 다른 언어권으로 옮기고, 각 지역 언어와 문화에 맞는 현지 오리지널을 늘리는 전략을 반복해 설명해 왔다. 2026년에는 창작자가 7개 언어로 작품을 배포할 수 있는 번역 프로그램도 발표했다. 카카오 역시 프랑스 사업에서 일본식 만화와 함께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웹툰을 공급하겠다고 밝혔고, 픽코마 프랑스는 현지 취향 분석을 바탕으로 일본 만화와 스마트툰을 함께 편성했다. 현지화가 단순 수입이 아니라 유통 인터페이스, 결제 모델, 편집 방식의 동시 이식으로 바뀐 것이다.

이 지점에서 웹툰의 수출 경쟁력은 분명해진다. 한국 플랫폼들은 작품만 판매한 것이 아니라 독자를 오래 붙잡는 읽기 방식과 결제 설계를 함께 내보냈다. 그래서 현지 시장에서는 한국 작품의 흥행 여부와 별개로, 회차를 끊어 공개하고 일정 시간 뒤 무료 이용권을 열어주며 인기작을 영상화와 출판으로 다시 확장하는 운영 방식 자체가 복제됐다.


그래서 무엇이 바뀌었나…세계 만화 전체보다 ‘디지털 만화의 표준’


결론적으로 웹툰은 세계 만화시장 전체를 하나의 방식으로 바꿨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미국과 일본, 유럽 모두 종이책·전자책·구독형 서비스가 함께 남아 있고, 모든 만화가 세로 스크롤로 재편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중심의 디지털 만화 유통에서는 웹툰이 독자가 만화를 소비하는 기본 단위를 바꿨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책을 사는 시장에서 화를 따라가는 시장으로, 완결본을 소장하는 시장에서 플랫폼에 반복 방문하는 시장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문화체육관광부도 2024년 만화·웹툰 산업 발전 방향을 발표하면서 만화·웹툰 분야의 최근 성장세를 다른 콘텐츠 산업 평균보다 높은 수준으로 제시했다. 정책 목표가 곧 시장 현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만화보다 웹툰을 앞세운 산업 전략을 별도로 설계하고 있다는 점은 이 형식이 이미 한국 콘텐츠 수출의 독립 장르가 됐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웹툰이 세계 만화시장의 유통방식을 바꿨나’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엄밀한 답은 이렇다. 웹툰은 종이만화를 대체해 세계 만화를 하나로 통일한 것이 아니라, 모바일 디지털 만화에서 세로 스크롤과 유료회차, 무료 진입 뒤 전환, 번역과 현지 오리지널을 결합한 플랫폼형 유통을 확산시켰다. 세계 만화시장의 중심이 완전히 이동했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적어도 디지털 만화가 어떻게 팔리고 읽히는지의 규칙은 한국 웹툰이 먼저 바꿨다고 볼 근거는 충분하다.

자료: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 만화·웹툰 이용자 조사(2024); 한국콘텐츠진흥원, 전통 만화와 융합하는 일본 웹툰 시장의 동향 분석(2025); 문화체육관광부, 만화·웹툰 산업 발전 방향(2024년 1월 23일); 주식회사 카카오픽코마, 디지털 만화 플랫폼 ‘픽코마’ 론칭 7년 만에 2023 ‘연간 거래액 1000억엔 경신’(2024년 1월 22일); WEBTOON Entertainment Inc., Annual Report on Form 10-K for fiscal year 2025(2026년 3월 11일); 카카오, 기다리면 무료 모델 일본 시장에서도 돌풍…글로벌 교두보 확보(2017년 9월 6일); Kakao ESG Report 2024(2024)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