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항암제도 듣지 않던 흑색종…암세포에 바이러스 넣어 다시 공격
암세포에 바이러스를 직접 주입해 터뜨리고, 그 과정에서 잠들어 있던 면역반응까지 다시 깨우는 치료가 진행성 흑색종의 새로운 선택지로 들어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8월 6일 절제가 불가능한 진행성 피부 흑색종 성인 환자 가운데 PD-1 면역항암제를 포함한 치료 후에도 암이 진행한 환자를 대상으로 종양용해 바이러스 치료제 ‘투드리퀘브(Tudriqev·vusolimogene oderparepvec-wtpg)’와 니볼루맙 병용요법을 가속승인했다. 투드리퀘브는 유전자 조작된 헤르페스바이러스 1형(HSV-1)을 이용해 종양세포 안에서 선택적으로 증식하고 암세포를 파괴하도록 설계된 치료제다.
이번 승인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바이러스 치료제가 하나 더 나왔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현재 흑색종 치료의 핵심인 PD-1 면역항암제가 듣지 않기 시작한 종양을 다시 면역계가 공격할 수 있는 상태로 바꾸려 한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FDA가 승인 근거로 평가한 임상시험에서는 140명의 환자가 등록됐고, FDA의 유효성 평가 대상 91명 가운데 24%에서 객관적 종양반응이 확인됐다. 반응이 나타난 환자들의 반응 지속기간 중앙값은 14.1개월이었다. 완치율이나 생존율을 의미하는 숫자는 아니지만, 이미 PD-1 기반 치료 후 암이 진행한 환자군에서 약 네 명 중 한 명에게 종양 감소가 나타났다는 점 때문에 새로운 치료 옵션으로 인정받았다.
다만 이번 허가는 정식 확증승인이 아니라 가속승인이다. 객관적 반응률과 반응 지속기간을 근거로 우선 시장 진입을 허용한 것이며, 실제 전체생존기간을 늘리는지는 현재 진행 중인 3상 확증시험을 통해 다시 검증해야 한다. FDA는 약 400명을 대상으로 투드리퀘브·니볼루맙 병용요법과 의사가 선택한 기존 치료를 비교하는 IGNYTE-3 연구를 요구했고, 전체생존기간을 주요 평가변수로 확인하도록 했다.
면역항암제는 왜 처음에는 듣다가 다시 실패할까
흑색종은 피부의 멜라닌 색소를 만드는 멜라닌세포에서 발생하는 암이다. 피부암 가운데 상대적으로 발생 빈도는 낮지만 전이가 시작되면 치료가 어려워지는 대표적인 악성종양으로 꼽힌다.
진행성 흑색종 치료를 크게 바꾼 것은 면역관문억제제였다.
우리 몸의 T세포는 암세포를 발견하면 공격할 수 있지만, 종양은 이를 피하기 위해 여러 면역 억제 신호를 이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PD-1과 PD-L1 경로다. 종양이 면역세포의 PD-1 신호를 이용하면 T세포는 공격을 멈추라는 신호를 받는다.
니볼루맙과 펨브롤리주맙 같은 PD-1 억제제는 이 브레이크를 풀어 T세포가 다시 암을 공격하도록 만든다.
문제는 모든 환자가 반응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처음부터 면역항암제가 듣지 않는 환자가 있고, 한동안 종양이 줄었다가 다시 자라는 환자도 있다. 종양이 항원 제시 능력을 잃거나 T세포가 종양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고, 면역억제 세포와 신호를 증가시키는 등 여러 방식으로 면역치료를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FDA는 이번 승인 대상인 항-PD-1 불응성 흑색종을 이미 널리 쓰이는 면역항암제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진행성 피부암으로 설명한다. 치료를 계속해도 암이 자랄 수 있고, 새로운 치료 선택지가 제한적인 환자군이다.
투드리퀘브의 전략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PD-1 억제제를 더 강하게 투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종양 내부 환경을 흔들어 면역항암제가 다시 작동할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헤르페스바이러스를 암에 일부러 넣는 이유
투드리퀘브의 기반은 헤르페스바이러스 1형이다.
일반적인 HSV-1은 입술 주변 물집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지만 투드리퀘브에 들어가는 바이러스는 자연 상태의 바이러스가 아니다. 유전자를 조작해 정상 조직보다 종양세포에서 선택적으로 증식하도록 만들고, 암세포 파괴와 면역 활성화를 강화하는 유전자를 추가했다.
치료제는 정맥으로 전신에 투여하지 않고 종양 내부에 직접 주사한다.
바이러스가 암세포 안으로 들어가면 세포 내부의 복제 시스템을 이용해 자신을 늘린다. 바이러스가 계속 증식하면 결국 종양세포가 파열되고, 그 안에 있던 암 항원과 바이러스 성분, 염증 유발 물질이 주변으로 쏟아져 나온다.
이 과정에서 첫 번째 공격이 일어난다.
바이러스가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것이다.
하지만 종양용해 바이러스 치료의 더 중요한 목표는 그다음 단계에 있다.
암세포가 깨지면서 그동안 면역계가 충분히 보지 못했던 종양 항원이 노출되고, 염증반응이 일어나면 수지상세포와 T세포가 활성화될 수 있다. 면역학적으로 차가웠던 종양을 보다 ‘뜨거운 종양’으로 바꾸려는 전략이다.
FDA도 투드리퀘브가 종양 내에서 증식해 암세포를 파괴하는 동시에 면역계가 암을 인식하고 공격하도록 유도한다고 설명한다.
암을 터뜨리는 데서 끝내지 않고 면역반응까지 키우도록 설계했다
투드리퀘브에는 종양세포를 파괴하는 능력을 높이고 면역반응을 강화하기 위한 추가적인 유전자 설계가 들어갔다.
리플리뮨에 따르면 이 바이러스는 세포융합을 촉진하는 GALV-GP-R− 단백질과 사람 GM-CSF를 발현하도록 만들어졌다. GALV-GP-R−는 감염된 종양세포가 주변 암세포와 융합하도록 유도해 직접적인 종양 파괴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GM-CSF는 수지상세포와 단핵구의 활성과 성숙을 촉진해 암 항원을 면역계에 제시하는 과정을 돕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반대로 바이러스의 신경독성과 면역회피에 관여하는 일부 유전자는 제거됐다.
회사 자료에 따르면 HSV-1의 신경독성 인자인 ICP34.5를 암호화하는 유전자와 항원 제시를 방해하는 ICP47 관련 유전자가 삭제됐다. 이를 통해 종양 선택성과 면역 자극 효과를 높이도록 개발됐다.
즉 투드리퀘브는 바이러스를 암세포에 감염시키는 치료라기보다, 바이러스 자체를 하나의 다기능 항암 플랫폼으로 다시 설계한 치료에 가깝다.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고, 파괴된 암세포의 항원을 밖으로 끌어내고, 면역세포가 그 항원을 더 잘 인식하도록 돕는 여러 단계를 한꺼번에 노린다.
왜 니볼루맙을 다시 같이 쓰나
이번 승인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이미 PD-1 계열 치료에 실패한 환자에게 다시 니볼루맙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면 이상해 보일 수 있다.
PD-1 억제제가 듣지 않아 암이 진행했는데 같은 계열의 약을 다시 사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종양 미세환경을 바꾸겠다는 논리가 있다.
PD-1 치료가 실패한 이유가 약 자체가 약해서가 아니라 종양 내부에 공격할 T세포가 충분히 없거나, 암 항원이 제대로 노출되지 않거나, 면역반응이 억제돼 있었기 때문이라면 바이러스 치료로 환경을 바꾼 뒤 PD-1 차단을 다시 걸었을 때 반응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투드리퀘브가 종양세포를 파괴하면 암 항원이 방출되고 염증반응이 생긴다. 이렇게 활성화된 T세포가 다시 종양을 공격하려 할 때 암세포가 PD-1 경로를 이용해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데, 니볼루맙이 이 신호를 다시 차단한다.
바이러스가 면역계의 시동을 걸고, PD-1 억제제가 브레이크를 풀어주는 구조다.
FDA도 두 치료제를 함께 사용할 경우 이전에 면역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던 환자에서 항종양 면역반응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40명 등록했지만 FDA가 본 핵심 숫자는 ‘91명 중 24%’
이번 승인 근거가 된 IGNYTE는 다지역·공개·단일군 시험이었다.
절제할 수 없는 III기 또는 IV기 진행성 흑색종 환자 가운데 최소 8주 이상 PD-1 기반 치료를 받았음에도 질환이 진행한 성인 140명이 등록됐다. FDA가 최종 승인 판단에 사용한 평가가능 환자 91명 중 24%에서 객관적 반응이 나타났고, 반응 지속기간 중앙값은 14.1개월이었다.
객관적 반응은 영상검사에서 종양이 일정 기준 이상 줄어든 완전반응과 부분반응을 합친 개념이다.
따라서 ‘24% 반응률’은 환자 네 명 중 한 명이 완치됐다는 뜻이 아니다. 종양 크기가 기준 이상 감소한 환자의 비율을 뜻한다.
그럼에도 PD-1 기반 치료 이후에도 암이 진행한 난치 환자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FDA는 해당 반응을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신호로 판단했다.
다만 단일군 연구라는 한계는 분명하다.
동시에 치료받은 비교군이 없기 때문에 같은 환자들이 다른 치료를 받았다면 어느 정도의 반응을 보였을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니볼루맙과 병용했기 때문에 관찰된 효과 가운데 어느 정도가 바이러스 자체에서 나왔는지를 분리하기도 쉽지 않다.
바로 이 부분이 가속승인 이후 3상 확증시험이 필요한 이유다.
주사하지 않은 암까지 줄어들 수 있느냐가 핵심이었다
종양에 직접 주사를 놓는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주사한 부위만 줄어드는 것인지, 몸 다른 곳의 전이암에도 영향을 미치는지다.
종양 안에 세포독성 물질을 직접 넣으면 주사한 종양이 줄어드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전신에 퍼진 진행성 암에서 진정한 치료가 되려면 주사하지 않은 병변에도 면역반응이 전달돼야 한다.
IGNYTE의 이전 분석에서는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신호가 관찰됐다.
2025년 미국임상종양학회 자료에 따르면 당시 분석에서 반응한 환자 46명의 측정 가능한 병변 197개 가운데 78개는 직접 주사한 병변이었고 119개는 주사하지 않은 병변이었다. 주사하지 않은 병변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축소됐으며, 내장 전이 병변에서도 반응이 관찰됐다.
이 결과는 종양용해 바이러스가 국소 주사 효과만 내는 것이 아니라 면역계를 통해 전신적인 항암반응을 유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FDA 역시 종양 내 직접 투여 치료의 전신 효과를 평가하는 문제에는 오랫동안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2026년 자문위원회 자료에서도 종양 내 주사 치료에서 영상반응을 어떻게 해석할지에 아직 완전히 합의된 기준이 없다는 점이 논의됐다.
종양에 직접 여덟 번 주사한다
투드리퀘브는 일반적인 항암제처럼 정맥으로만 맞는 약이 아니다.
FDA에 따르면 치료제는 종양 내부에 2주 간격으로 총 8회 연속 주입하며, 투여량은 종양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첫 투여에는 낮은 농도를 사용하고 이후에는 높은 농도를 사용한다. 니볼루맙 정맥주사는 치료 3주차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실제 치료에는 종양의 위치가 중요하다.
피부나 피하조직, 림프절처럼 눈에 보이거나 만질 수 있는 병변뿐 아니라 영상 유도하에 접근 가능한 깊은 종양도 주사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전이 병변에 직접 주사를 놓는 것이 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이 치료가 전신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능력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사할 수 있는 몇 개의 대표 병변을 바이러스와 면역반응의 출발점으로 이용하고, 활성화된 면역세포가 주사하지 않은 다른 전이암까지 찾아가 공격하도록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종양용해 바이러스는 처음 나온 아이디어가 아니다
바이러스로 암을 치료한다는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일부 암 환자가 바이러스 감염 후 일시적으로 종양이 줄어드는 현상은 오래전부터 관찰됐고, 이를 이용해 바이러스를 항암제로 개발하려는 연구가 수십 년 동안 이어졌다.
미국에서는 이미 2015년 HSV-1 기반 종양용해 바이러스 ‘임리직(Imlygic·talimogene laherparepvec)’이 흑색종 치료제로 승인됐다. 임리직 역시 종양 내부에 직접 투여하는 유전자조작 HSV-1 치료제다.
다만 당시 FDA 허가범위는 수술 후 재발한 절제 불가능한 피부·피하·림프절 병변의 국소치료에 제한됐다.
FDA 제품정보에는 임리직이 전체생존기간을 개선하거나 내장 전이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입증되지 않았다고 명시돼 있다.
투드리퀘브가 주목받는 이유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려 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종양 파괴능력을 강화하고 PD-1 면역항암제와 결합해 국소주사를 전신적인 면역반응으로 연결하려는 전략이다.
기존 바이러스 치료보다 ‘면역항암제 재가동’에 초점을 맞췄다
1세대 종양용해 바이러스의 주요 목표가 암세포에 선택적으로 감염돼 종양을 파괴하는 데 있었다면, 최근 개발되는 치료제들은 면역미세환경을 바꾸는 기능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
암세포를 얼마나 많이 터뜨리느냐 못지않게, 그 과정이 얼마나 강한 면역학적 세포사멸을 일으키고 얼마나 많은 T세포를 종양 안으로 끌어들이느냐가 중요해진 것이다.
투드리퀘브가 GM-CSF와 융합 단백질을 함께 발현하도록 만들어진 것도 이런 방향이다.
이는 종양용해 바이러스 산업 전체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향후에는 바이러스가 암세포를 파괴하는 운반체이면서 동시에 면역조절 단백질이나 항체, 사이토카인을 종양 내부에서 직접 생산하는 ‘현장 치료공장’처럼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전신으로 투여하면 독성이 커질 수 있는 면역자극 물질을 바이러스가 종양 내부에서 집중적으로 만들게 하면 정상조직의 노출을 줄이면서 항암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개념이다.
바이러스 치료라고 해서 감염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를 조작한 바이러스라고 해도 실제 HSV-1을 기반으로 한 생물학적 제제이기 때문에 안전관리에는 일반 항암제와 다른 주의가 필요하다.
FDA는 투드리퀘브의 주요 위험 가운데 하나로 환자 또는 가까운 사람에게 헤르페스 감염이 전파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환자에게 기존 헤르페스 감염이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도 있다. 종양에 바늘을 직접 넣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술 관련 합병증도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주사 부위를 적절히 덮고 관리해야 하며, 분비물이나 사용한 붕대 등을 통해 바이러스가 주변 사람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는 종양용해 바이러스가 일반적인 항암 주사와 다른 지점이다.
약물이 몸 안에서 대사돼 사라지는 것만 관리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유전자조작 바이러스가 포함된 치료제이기 때문에 환자와 의료진, 보호자까지 감염관리 원칙을 이해해야 한다.
피로·발열·오한…독성은 ‘항암제+바이러스’ 양쪽에서 온다
FDA 임상자료에서 10% 이상 나타난 이상반응에는 피로와 발열, 감염, 오한, 근골격계 통증, 메스꺼움, 설사, 주사부위 반응, 두통, 기침, 독감 유사 증상, 발진, 구토, 가려움, 관절통, 변비, 식욕 감소, 어지럼증, 호흡곤란, 출혈, 부종, 복통 등이 포함됐다.
일부는 바이러스가 면역계를 자극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전신 염증반응과 관련될 수 있고, 일부는 니볼루맙 같은 면역항암제 또는 종양 내 주사 절차의 영향일 수 있다.
따라서 ‘바이러스니까 항암화학요법보다 안전하다’고 보는 것은 맞지 않는다.
치료기전이 다를 뿐 위험의 종류도 다르다.
특히 PD-1 억제제에는 정상조직을 면역계가 공격하는 면역관련 이상반응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 치료와 병용할 때는 양쪽의 독성을 함께 모니터링해야 한다.
가속승인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이유
이번 발표에서 ‘FDA 승인’만 보고 치료효과가 최종적으로 입증됐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투드리퀘브는 가속승인 제도를 통해 허가됐다.
가속승인은 중증질환에서 미충족 의료수요가 크고 초기 임상에서 의미 있는 효과가 확인될 경우, 전체생존기간처럼 확정적인 결과가 나오기 전에 객관적 반응률이나 반응 지속기간 같은 대리지표를 근거로 먼저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번 승인도 바로 객관적 반응률과 반응 지속기간을 기반으로 이뤄졌다.
따라서 ‘24% 반응’이 실제로 환자의 수명을 연장한다는 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FDA가 요구한 IGNYTE-3 3상에서는 약 400명을 1대1로 무작위 배정해 투드리퀘브·니볼루맙과 의사가 선택한 치료를 비교하며, 전체생존기간을 주요 평가변수로 본다. FDA가 설정한 사후 요구사항에 따르면 이 확증시험을 통해 임상적 이득을 최종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허가가 변경되거나 철회될 가능성도 원칙적으로 존재한다.
처음부터 순탄하게 허가된 약도 아니었다
투드리퀘브의 승인 과정은 상당히 까다로웠다.
개발명 RP1으로 알려졌던 이 치료제의 허가신청은 FDA와 추가 논의를 거친 뒤 다시 제출됐고, 2026년 7월 30일에는 세포·조직·유전자치료제 자문위원회까지 열렸다.
당시 핵심 쟁점은 비교군 없는 IGNYTE 단일군 시험만으로 치료효과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주사하지 않은 병변에서 나타난 반응을 바이러스에 의한 전신 면역효과로 볼 수 있는지였다.
자문위원회는 최종적으로 10대3으로 IGNYTE의 효능 결과가 평가 가능하며 임상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쪽에 표를 던졌다.
이 과정을 거쳐 FDA는 8월 6일 가속승인을 결정했다.
따라서 이번 허가는 종양용해 바이러스 분야가 완전히 검증됐다는 선언이라기보다, 충분히 유망한 신호가 확인됐으니 난치 환자에게 먼저 접근을 허용하되 확증시험으로 끝까지 검증하겠다는 판단에 가깝다.
왜 흑색종이 종양용해 바이러스의 시험장이 됐나
흑색종은 면역치료 연구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다.
피부 흑색종은 자외선 노출 등으로 많은 유전자 돌연변이를 갖는 경우가 많아 다른 암에 비해 면역계가 인식할 수 있는 종양 항원이 풍부한 편이다. 이 때문에 면역관문억제제가 가장 먼저 큰 성공을 거둔 암종 가운데 하나였다.
동시에 피부나 피하, 림프절에 병변이 나타나는 경우 종양에 직접 바늘을 넣기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점도 종양용해 바이러스 개발에 유리했다.
바이러스를 정확히 종양 내부에 주입하고 반복적으로 반응을 관찰하기 좋은 암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진행성 흑색종이 간이나 폐, 뇌 등으로 전이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접근 가능한 병변 몇 개에 주사한 뒤 다른 장기의 전이암까지 면역계가 공격하도록 만드는 것이 성공 여부를 가르는 핵심이 된다.
그래서 이번 치료의 임상적 의미는 주사한 혹이 줄었느냐보다 몸 전체의 암을 상대로 얼마나 지속적인 면역반응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 환자에게 당장 쓸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FDA 승인은 미국에서의 허가다.
국내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별도 허가가 필요하며, 이후 실제 사용이 시작되려면 공급 여부와 약가, 건강보험 적용, 투여 가능한 의료기관 등의 문제가 남는다.
특히 종양용해 바이러스는 약을 처방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치료가 아니다.
종양에 직접 주사할 수 있는 의료진과 영상유도 시술 환경, 생물학적 제제 취급시설, 바이러스 노출을 막기 위한 감염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경구항암제보다 실제 의료현장 도입 과정이 복잡할 수 있다.
또 국내 흑색종은 서구와 질환 특성이 완전히 같지 않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손바닥과 발바닥, 손발톱 주변에 발생하는 말단흑색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서구에서 흔한 자외선 연관 피부 흑색종과 유전적 특성이 다를 수 있다.
이번 FDA 적응증은 ‘피부 흑색종(cutaneous melanoma)’이기 때문에 향후 국내 도입 시 어떤 환자군에서 가장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별도 검토가 필요하다.
바이러스가 암을 없앤다는 표현에는 선을 그어야 한다
이번 승인 소식을 가장 쉽게 설명하면 ‘암세포를 바이러스로 터뜨리는 치료’다.
기전 자체는 맞지만 이것만으로 치료를 설명하면 중요한 절반을 놓치게 된다.
투드리퀘브는 암세포를 바이러스로 직접 파괴하는 효과와 면역계를 다시 작동시키는 효과를 동시에 노린다. 특히 PD-1 치료에 실패한 환자에게 니볼루맙을 다시 결합한 만큼 이번 치료 전략의 핵심은 암세포 파괴 자체보다 면역치료에 저항하던 종양환경을 바꾸는 데 있다.
그리고 임상결과 역시 모든 환자가 반응한 것은 아니다.
FDA 평가에서 객관적 반응률은 24%였다. 반대로 보면 약 4분의 3은 평가기준상 객관적 반응을 얻지 못했다.
어떤 환자가 반응하고 어떤 환자가 반응하지 않는지 예측할 바이오마커를 찾는 것도 앞으로 중요한 과제다.
종양 내부의 면역세포 밀도와 PD-L1 발현, 유전자 돌연변이, 이전 면역치료 종류, 전이 장기 등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암 치료의 다음 질문은 ‘면역항암제가 안 들을 때 어떻게 다시 듣게 할 것인가’
면역관문억제제는 지난 10여 년 동안 흑색종과 폐암, 신장암, 위암 등 여러 암의 치료를 크게 바꿨다.
하지만 성공이 커질수록 새로운 문제가 분명해졌다.
처음부터 반응하지 않는 환자와 한동안 치료가 듣다가 결국 내성이 생기는 환자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암 연구의 무게중심 가운데 하나는 이제 면역항암제를 새로 만드는 것뿐 아니라 기존 면역항암제가 듣지 않는 종양을 어떻게 다시 반응하게 만들 것인지로 이동하고 있다.
종양용해 바이러스는 그 후보 가운데 하나다.
암세포를 일부러 감염시키고 파괴해 암 항원을 노출시키며, 염증을 일으켜 면역세포를 불러들이고, 다시 PD-1 억제제로 면역반응의 브레이크를 풀어주는 방식이다.
투드리퀘브의 FDA 가속승인은 이 전략이 연구실을 넘어 실제 치료 단계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아직 최종 답은 아니다.
반응률 24%와 14.1개월의 반응 지속기간이 실제 생존 연장으로 이어지는지, 바이러스가 주사하지 않은 전이암에서도 지속적으로 전신 면역효과를 만들 수 있는지, 어떤 환자에서 가장 큰 이득이 나타나는지는 3상 연구가 밝혀야 한다.
이번 치료의 가치는 ‘바이러스로 암을 없앴다’는 데 있지 않다.
이미 면역항암제에 등을 돌린 암을 다시 면역계가 볼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임상현장에서 보여주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암세포를 직접 죽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암이 숨어버린 면역환경 자체를 흔드는 치료가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