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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는 부결됐지만 ‘책임의 격차’는 남았다…누적·소비 기준으로 본 배출 불평등

국제층서위원회 산하 제4기층서소위원회는 2024년 인류세를 지질시대의 공식 단위로 채택하는 안을 부결했다. 하지만 그 결정이 곧 인간의 지구 영향이 작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논쟁은 다른 질문을 남겼다. 지구 표면에 인간의 흔적이 늘고 있다면, 그 책임을 ‘인류 전체’라는 한 단어로 묶어도 되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바로 답을 주는 자료는 지질시대 표보다 배출 통계에 가깝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영토 기준 배출량과, 무역을 반영한 소비 기준 배출량, 그리고 장기간에 걸친 누적 배출량을 함께 보면 책임은 국가마다 크게 갈린다. 인류세 논쟁이 인간 활동의 흔적을 하나의 지질학적 신호로 다뤘다면, 기후정책의 책임 논의는 누가 언제 얼마나 배출했는지를 따로 따져야 한다는 뜻이다.


인류세 논쟁이 판단한 것은 ‘불평등’이 아니라 지질시대의 공식 명칭


인류세 작업반은 2023년 공식 제안서에서 인류세의 시작점을 1952년 전후의 플루토늄 증가 신호로 잡고, 캐나다 크로퍼드호 퇴적층을 기준 단면으로 제안했다. 이 안은 인류 활동이 남긴 신호가 지층에 뚜렷하다는 판단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심사 절차를 맡은 제4기층서소위원회는 2024년 3월 이 안이 가결 정족수인 60%를 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제층서위원회와 국제지질과학연맹도 같은 달 이 부결 결과를 승인했다. 즉 공식 지질시대 명칭으로서의 인류세는 채택되지 않았지만, 인간 활동이 지구 시스템에 강한 흔적을 남긴다는 논의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중요한 점은 여기서의 판단 기준이 공정성이나 정치적 책임 배분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질학은 지층 경계가 전 지구적으로 식별 가능한지, 장기적으로 보존될 신호인지, 기존 시간척도와 맞물리는지를 본다. 반대로 기후 책임 논의는 배출의 시점, 누적 규모, 소비 주체, 무역 구조를 따진다. 같은 ‘인간의 시대’라는 표현을 쓰더라도, 지질학적 판정과 배출 책임 평가는 다른 질문을 다루는 셈이다.


누적 배출로 보면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은 곧바로 성립하지 않는다


국가별 책임 격차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이다. 최근 갱신된 국제 탄소 예산 자료를 바탕으로 한 집계에서 2024년까지 화석연료와 산업 공정에서 나온 누적 이산화탄소의 세계 비중은 미국 23.52%, 유럽연합 27개국 16.27%, 중국 15.42%, 인도 3.57%로 나타난다. 고소득 국가 전체의 비중은 62.28%다.

이 수치는 지금 당장 연간 배출량이 가장 큰 나라와, 산업화 이후 오랫동안 대기 중 탄소를 쌓아 온 나라가 반드시 같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재 연간 배출량에서는 중국의 비중이 매우 크지만, 역사적 누적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몫이 여전히 더 크다. 반대로 인도나 아프리카 다수 국가는 오늘의 기후위기를 논할 때 자주 거론되더라도 역사적 누적 기여는 상대적으로 작다.

이 때문에 인류세를 두고 ‘인간이 지구를 바꿨다’고 말하는 것과, ‘모든 국가가 같은 정도로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주장이다. 전자는 지구 시스템의 변화에 관한 관측이고, 후자는 책임 배분에 관한 평가다. 누적 배출 자료는 최소한 국가 간 책임이 균등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소비 기준으로 바꾸면 수입국과 수출국의 책임 지도가 달라진다


다만 누적 배출량만으로 현재의 책임 구조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국제기후협약과 각국 인벤토리는 기본적으로 영토 안에서 실제로 배출된 양을 기준으로 잡는다. 이 방식은 국제 비교의 표준이지만, 한 나라가 소비한 상품을 다른 나라가 생산하면서 발생한 배출은 생산국 쪽에 먼저 기록된다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무역을 반영한 소비 기준 배출량이 따로 쓰인다. 소비 기준은 수입품 생산 과정의 배출을 더하고, 수출품 생산 과정의 배출을 뺀다. 같은 해의 배출이라도 소비 중심의 부유한 수입국은 영토 기준보다 높게, 제조업 수출 비중이 큰 국가는 영토 기준보다 낮게 나올 수 있다.

실제로 국제 탄소 예산의 국가 자료는 소비 기준 배출량과 무역에 내재한 배출 이전분을 별도로 제공한다. 다만 이 계열은 영토 기준 장기 시계열과 달리 현재 공개 범위가 1990년부터 2020년까지다. 따라서 19세기 중반부터 이어지는 역사적 누적 책임을 소비 기준만으로 완전히 다시 계산할 수는 없다. 소비 기준은 현재의 세계 공급망이 책임을 어떻게 재배분하는지 보여주지만, 산업화 초기부터의 장기 책임까지 대체하지는 못한다.

이 구분은 기사 제목의 질문, 즉 ‘모두 같은 책임인가’에 직접 연결된다. 누적 배출을 보면 역사적 책임은 집중돼 있고, 소비 기준을 보면 현재의 생활수준과 무역 구조도 책임 배분을 바꾼다. 어느 한 지표만으로 전체 책임을 단정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책임이 균등하다고 말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인류세 비판이 남긴 핵심은 이름보다 ‘분모’를 묻는 일


인류세 개념에 대한 비판 가운데 하나는 ‘인류’라는 단어가 내부의 격차를 지워 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종 전체가 동일한 힘으로 지구를 바꾼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 배출은 국가별로도, 소득집단별로도 고르게 분포하지 않는다. 지질학적 명칭으로 채택되느냐와 별개로, 기후정책에서는 어떤 분모로 책임을 나눌지 계속 따져야 하는 이유다.

정책적으로는 세 가지 구분이 특히 중요하다. 첫째, 역사적 책임을 볼 때는 누적 배출이 필요하다. 둘째, 현재의 국제 공급망과 생활양식을 반영하려면 소비 기준이 필요하다. 셋째, 국가 간 감축 의무를 공식 비교할 때는 여전히 영토 기준이 기본이다. 서로 다른 질문에 서로 다른 지표가 대응하는데, 이 구분이 빠지면 ‘중국이 가장 많이 배출한다’거나 ‘선진국이 더 책임이 크다’는 문장이 각기 다른 의미로 뒤섞이게 된다.

결국 인류세 논쟁이 남긴 사실 하나는 분명하다. 지구에 인간의 흔적이 늘었다는 관측과, 그 흔적의 책임을 어떻게 나눌지는 같은 문제가 아니다. 공식 지질시대 명칭은 부결됐지만, 누적 배출과 소비 기준 배출이 보여주는 국가별 격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인류 전체의 시대’라는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불평등이 기후정책의 실제 쟁점이라는 뜻이다.

자료: Subcommission on Quaternary Stratigraphy, Working Group on the Anthropocene 공식 페이지(2023·2024); International Commission on Stratigraphy, Joint statement by the IUGS and ICS on the vote by the ICS Subcommission on Quaternary Stratigraphy(2024년 3월); International Commission on Stratigraphy, Annual Report 2024 Appendix 1(2025); Pierre Friedlingstein 외, Global Carbon Budget 2024(2025); Our World in Data, Cumulative CO₂ emissions·Share of global cumulative CO₂ emissions·Territorial and consumption-based CO₂ emissions·Consumption-based CO₂ emissions 데이터 페이지(2026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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